맨날 자신이 침략자나 피에 굶주린 전쟁광으로 묘사되는 것에 신물이 난 외계인이 직접 그 사실을 따지러 지구까지 찾아왔다. 사실 ‘기술적으로나 자원적으로나 훨씬 앞선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해서 이득볼 것이 없다.’라는 딴지는 외계침략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수십개씩 작성되곤 하는 포스팅거리이긴 하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딴지를 이용해 SF영화의 클리셰를 비튼 작품이다.
작품의 메인 소재가 클리셰 비틀기인 만큼 대중문화에서 유명한 SF설정들도 작품 안에 많이 보이는 편이다. 맨인블랙 요원의 뉴럴라이져라던지, 톰크루즈 주연의 영화 우주전쟁에서의 외계인세균사망설이라던지, 이러한 요소들은 그 원작을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은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작중에 등장하는 외계종족 ‘후라이족’의 기술은 실로 놀라울 만큼 발전한 상태여서 더 새로운 것을 발견할게 없어 기술적 한계에 도달한 문명한계상태이다. 그러던 차에 여태까지 지금껏 접해본 적 없는 ‘지구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알게 되어 주인공 세영을 비롯한 지구 문학가들은 외계인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게 된다. 물론 원작자 본인들의 동의도 없이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무단복제품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하고자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SF클리셰 비틀기? 난 이 대목에서 자신의 불법다운로드 게임 사용을 당당하게 밝혔던 모 인터넷BJ가 떠올랐다.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긴 했지만 내 방송으로 인해 이 게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었으니 오히려 더 좋은게 아니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물론 외계인이니 저작권 같은 지구의 규율을 몰랐겠지만, 아무런 허락도 없이 남의 글을 퍼트러놓고 벌써 수억명이 만족하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떠드는 후라이족을 보며 문득 그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