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위에 올라올 자격은 누가 부여하나요? 공모

대상작품: 까라! (작가: 한켠,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18년 9월, 조회 193

고래로부터 스포츠는 대리전이며 모의전이었습니다. 고대 올림픽과 근대 올림픽에 잘 드러나 있죠. 마라톤이 승전보를 전달하는 전령을 기리는 스포츠고, 근대 5종이 사격으로 추격자를 따돌리고 산을 넘고 말을 달려 편지를 전하는 스포츠이니 이를 보며 각국은 모의전을 치르는 것이며, 이렇게 치러진 전쟁의 승패를 매달의 수로 줄을 세우니 대리전이죠.

전쟁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조약이 있고 국제법이 있죠. 그러니 스포츠에도 당연히 규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규칙은 최소한의 ‘공정함’을 보증합니다.

스포츠가 정말로 공정할까요? 심판 차원에서의 단순한 실수, 홈 어드벤티지의 적용. 운영국에서 몸싸움에 관대한 심판을 거친 몸싸움이 주특기인 팀의 승부에 배치하는 것. 협회 차원에서 흥행을 위해 규칙 자체를 수정하는 것 등 스포츠의 순수성을 해치는 것은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포츠가 공정하다 믿습니다. 규칙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됩니다. 관중들이 그것을 믿기에 대리전의 감시자로 참여합니다. 홈 어드벤티지란 어쩌면 이 감시자들을 많이 보유한 팀의 이점일 수도 있겠죠. 그건 오프사이드다! 방금 그 태클은 명백히 공이 아니라 정강이를 노린 것이 아니냐! 이런 의문들을 관중들이 기세로 내뿜으면 심판의 실수임을 인정하거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위축되기 마련이죠.

그러니 대리전은 공정하며 누구나 참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필드 위에서 뛸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왜 아무나 축구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22명만이 필드 위에서 뛰고 나머지는 그 주변을 둘러싸고 고함만 치는 걸까요? 이것은 자본으로 켜켜이 나눠진 계급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부를 물려받아 축구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과 생계를 영위하기 위해 계속해서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면서 축구 실력까지 키워야 하는 사람은 같은 재능으로 출발해도, 아니 후자가 더 월등히 나은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전자가 유리하기 마련이죠.

아니면 이런 건 어떨까요? ‘까라!’니까 배경을 기점으로 말한다면 내지인과 외지인이 나뉘어 있습니다. 축구와 같은 고급 문화생활이나 대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내지인뿐이고, 외지인은 그런 내지인의 영광을 후원 하기 위한 자리만 마련돼 있다면요. 그렇다면 이 또한 의지의 문제는 아니겠죠.

모두에게 최소소득이 보장돼 자본으로 켜켜이 나눠진 계급이 평탄해지고, 민족해방이 이뤄져 내지인과 외지인의 차별이 없어진다면, 그렇다면 드디어 ‘공정한’ 스포츠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필드 위에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력이 안되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그 문을 두들길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요. 바로 여성들이죠. 규칙적으로 혼성은 지원하지 않고, 여성부 리그가 따로 없기 때문에 여성은 결코 축구를 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일본에 스모대회에서 ‘신성한’ 스모판에 어떻게 여자가 올라올 수 있냐며 응급처치를 위해 선의로 올라온 여성에게 엄중한 경고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고시엔에서 단순히 성별을 이유로 퇴장당한 매니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까라!’를 읽었습니다.

천부인권을 배웠지만, 정작 이런것에 있어서 원래부터 금녀의 구역이다. 아니 응원을 할 수 있는데 왜 뛰기까지 하려고 하냐? 이런 비아냥을 너무 많이 들어왔죠. 대체 원래라는 것은 어디서 온 걸까요? 우리는 인간이고 너희는 여성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같은 교과과정을 거친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이제는 여성부 리그가 있습니다. 생활 축구도 보급되어 있고요. 그러나 축구만으론 부족한 게 너무 많고 지금도 수없이 많은 필드는 독점되어 있으며 두들기는 여성들에게 원래는 해선 안 되는 걸 아량을 베푸는 양 병아리 눈곱만큼 양보하고 생색내는 사람이 너무 많죠. 그것마저 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고요.

그러니 가슴을 펴고 당당히 요구해야겠지요. 필요하다면 고함과 괴성을 지르면서요.

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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