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비평

대상작품: 주황색 (작가: Xx, 작품정보)
리뷰어: 나르디즐라, 55분 전, 조회 13

※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뤄진다.

 

제목이 낯익죠? 이소라 가수님이 부르신 바람이 분다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바람이 분다는 이별을 마주한 순간을 포착하여 섬세하게 그려낸 곡입니다. 그리고 Xx 작가님의 주황색에 대입하면 어울리는 부분이 있어 차용해 보았습니다.

소설 주황색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주황색이 강렬해지기 시작하며 일상 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이야기로 서두를 뗍니다. 화자인 선민은 안과에도 가보지만,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습니다. 그래서 추측하는 것이 정신적인 경위로 발생한 증상일 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선민은 정신과 진료 보기를 두려워합니다. 이 지점에서 특정한 색에 의해 불편함이 초래되는 건 무슨 의미를 갖는 걸까요.

우리는 시각을 통해 형태를 인지합니다. 그리고 대개의 시야는 다채로운 색을 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정한 색이 지나치게 강조된다면, 그 색으로 하여금 무언가 사고(事故)와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자가 정신과 진료를 거부하고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신과 진료가 무언가를 함의 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것은 소설의 내용 상 사고의 상흔이자, 상실의 증거입니다. 과거에 있던 사고가 특정한 색채로 가시화되며 암시한다는 것이죠.

소설의 구조는 그 암시하고 있는 사건을 추적해가는 과정입니다. 소설의 내용 자체는 주황색에 의한 불편함을 인지한 후, 정신병동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단순한 구조를 취합니다. 다만 한 가지 장치를 추가하는데, 주인공이 선우의 성장과정을 적은 일기를 이야기의 마디마다 제시하는 것과, 선우의 존재를 선명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단란한 형제의 기록은 비일상(非日常)으로 침식되어가는 화자의 불안감과 대조 됩니다. 즉, 그 흐름의 분절은 곧 비극을 암시하는 복선이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환시이자 환청으로 설명되는 선우의 존재는 누나인 선영에 의해 폭로되고 맙니다. 사실 선우가 죽은 지 26년째라고요. 그리고 구조 상 존재 자체가 주인공에 의해 조형된 거짓이라는 사실은 소설의 반전을 만듭니다. 자신이 언제나 필요하도록, 그래서 서로의 관계가 혼자서만 유지되는 척 할 수 있게, 수첩이 점점 얇아질 수록 사라져버릴 것 같은 회한을 담은 형체. 그것은 이별을 부정하기 싶은 망상에 해당됩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왜 주황색이라는 것에 이토록 괴로워하는 것일까요. 그 원인은 결말에서 드러납니다. 알고보니 주인공의 실수로 화재 사고가 있었고, 동생인 선우는 그것에 휘말려 사망한 것이죠. 그런 상황 속에서 주인공의 주황색 강박증(본인 말로는 오렌지 증후군)은 일종의 PTSD라고 볼 수 있습니다.

Xx작가님의 소설 주황색은 그럼 어느 지점에서 호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러프하고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공포 소설은 독자에게 무서움을 불러 일으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주인공에게 무언가 영향을 미쳐야 하며, 그 영향이 공포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공포를 정의하는 문장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그 중 이 소설에 어울리는 정의는 마크 피셔의 이야기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마크 피셔의 저서 중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서 이 둘의 공통점은 낯선 무엇에 대한 집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소설은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중 무엇에 해당할까요. 저는 기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이한 것의 특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기이한 것은 평범한 현실에서 탈피하는 스토리를 가집니다. 즉, 그럼으로써 외부 세계의 무엇이 이 세계에 침입했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라캉식 주이상스, 다시말해 쾌락과 고통의 불가분성이 수반되는 즐거움을 가집니다. 셋 일상적으로경험하는 것과 신비한 것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선민은 환각이라고 할 수 있는 선우의 존재에 집착합니다. 그 지점에서 선우는 실제이길 바라는 화자의 소망과 환각 사이에서 유영합니다. 그래서 환각으로 인한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며, 평범한 현실에서 탈피하는 스토리가 됩니다. 그리고 외부 세계에서 현실로 침략한 ‘그것’은 유령처럼 살아있지도, 존재하지도 않은 존재로 그려집니다.  둘째로 소설은 지속적으로 선우가 있던 존재라는 착각을 조성 후 그 것을 깨뜨립니다. 이 지점에서 주인공인 선민을 제 3자의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어떨까요. 누나인 선영은 주인공이 아픈 것 같다며 119를 부를 것을 권유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거부하고요. 이 모습은 독자에겐 일종의 광증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큽니다. 때문에 거짓의 사실화 속에서 독자들은 역설적인 주이상스를 느낍니다. 주인공이 정서적으로 망가져가는 고통 속에서, 그 고통이 사실 스스로 조형한 거짓에 기인하여 반전을 이룩하는 쾌락, 더 정확히는 감정의 공유 속에 불가분성이 성립합니다. 그리하여 소설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혼자 살아남았다는 현실)과 신비한 것(유령처럼 떠도는 거짓된 존재인 선우) 사이에 진동하며 서 있습니다.

물론 이 지점에서 이런 생각이 들 수는 있습니다. 기이한 것에 해당하는 작품이 완벽하게 공포 소설로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다는 것을요. 오히려 이러한 맥락은 츠베탕 토도로프의 환상에 더 가깝기도 합니다. 이상한 것(궁극 적으로는 자연적인 방식으로 해결되는 이야기)와 신기한 것(초자연적으로 해결되는 것)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감에 의한 환상이요. 그렇지만 환상과 공포는 표리일체라고 생각합니다. 공포는 독자에게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만, 환상은 그 것을 갈등으로 포장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안배 되는 차이 뿐이라는 거죠. 그래서 Xx작가님의 소설 주황색은, 객관적인 현실 위에 세워진 거짓됨으로 기이한 경이로써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말에 이르러, 진짜인지 거짓인지 혼란한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선우의 비명이 들리며 그날처럼, 불비와 매연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선우를 구하기 위해 그 속으로 뛰어들며, 작열통과 매캐함을 견디고 나아갑니다. 그 과정 속에서 누군가가 말합니다. 비를 맞으며 뭐하고 계시냐고. 그 말을 무시하며 나아간 최후에 이르러 나는 선우와 재회하며 말합니다. 너를 찾아서 너무 늦게 왔다고. 다시는 떠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주황색이 쏟아지며 이야기는 마무리 지어집니다.

이런 맥락속에서 이소라 가수님의 바람이 분다를 읽어보면 묘하게 이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슬픔이라는 감정을 보통의 세계로 확장하여 표현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요. 바람이 분다의 핵심적인 정서는 너는 떠났지만, 나는 홀로 남아있는 슬픔에 관해서 입니다. 세상은 선우를 잃어버린 어제와 똑같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선우가 있다고 믿으며 살아온 것이겠죠.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다만 혼자서 달라져 있는 채 로요. 선우를 살려 달라는 허무한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갑니다. 선우의 뒷모습은 싸늘하게만 느껴지 더 이상 볼 수 없는데, 함께 있던 날들이 너무 소중했지만, 선우의 존재로는 사라진 지금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게 주인공의 사랑(형제애)는 비극이었으며 선우의 존재는 선우가 아닙니다. 다만 선우가 살아있기를 바래서 만든 수첩과 추억은 다르게 적힐 뿐입니다. 그래서 선민의 이별은 잘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뤄집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환상과 재회의 순간 주인공은 더이상 떠나지 않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그 약속은 이뤄진 걸까요. 형용할 수 없는 아픔과 안타까움, 그리고 그 간절했던 소망이 뒤섞이며 주인공의 현실은 환상통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아온 게 너무 늦었다는 타박 아닌 타박에 선민은 눈물이 흐를 뿐입니다.

사방에 불(火)천지인 아이러니컬한 희극 속에서 비극은 선연해집니다. 현실일 수 없는 사실 기반 위에 사상누각으로 지어진 감정들은 곧 무너지기 마렵니다. 그렇기에 독자인 우리들은 두 형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슴 아린 감정을 공감하게 됩니다. 무너져야할 세계에 감정이 싹트고 이 곳에 공감하게 된 것, 해당 소설이 공포 장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은 이 부분에 기인한다고 개인적으로 봅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부분을 바라보면 방백으로 이뤄진 선민의 절규가 기이하게 느껴지며, 공포 소설로써의 축을 붙잡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Xx 작가님의 주황색은 하나의 세계를 조형하면서 현실 과 환상 둘로 구분 해 그 경계를 깨부수는 구조를 취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애와 상실을 다루며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다만 현실과 환상 그 간극을 통해 공포 소설로의 기이함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긴 환시의 고통 끝에 동생과 만나며 감정을 갈무리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조차도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배회하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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