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게 이 소설이 어떤 이야기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신의 이름을 빌린 작가의 위로
라고요.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을 위로하려고 썼던 문구로부터 어둠의 신이 소환되는 바람에 겪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둠의 신과 헤어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이는 원상태로의 복귀가 아닙니다. 어둠의 신을 겪음으로써 성장한 내면의 인격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중에서 다뤄지는 에레시레는 어둠의 신입니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소란스럽고, 밉상에, 가벼워 보입니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어둠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들을 떠올리면 꽤 상반된 듯합니다. 하지만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에레시레의 모습은 이유가 있고, 그 역시 ‘어둠’의 속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에레시레는 골자가 신이기에 비록 인간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보이지만, 그것에 악의는 없으며 오히려 순수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에레시레는 모두의 발밑에서 조용히 품어주는 존재로서, 새벽이 힘들 때마다 찾아오는 존재로서, 인간과 동떨어진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에 대한 호의를 품고 있는 존재로서 새벽을 위로합니다. 그 존재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위로하고, 실없는 소리로 위로하고, 때로는 권능으로 위로하죠.
그러한 위로를 보여주는 방식은 철저한 ‘말하기’입니다. 본 작품은 ‘보여주기’와 ‘말하기’ 중에선 ‘말하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제한적 작가 시점으로 새벽의 심리를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그리고 독자가 굳이 추론하고 파악할 것 없이 직접 얘기합니다. 신이 짊어진 무게와 그 결단을 말하고, 에레시레의 위로는 물론이고 새벽이 매 순간 겪는 감정과 생각을 끈질기게 다룹니다.
이러한 말하기 기법은 자칫하면 지루해지고 지나치게 교조적인(독자에게 강요하는) 태도를 지닐 수 있겠지만…… 본 작품은 그러한 위험을 두 가지 측면에서 회피합니다. 첫째는 새벽의 심리와 생각을 집요하게 다뤄 ‘작가가’ 얘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새벽의 것’이라는 사실을 오해 없이 전달하는 점이고, 둘째는 새벽이 ‘위로’를 받는 시점과 그를 인지하는 시점에 차이를 두어서 독자가 새벽의 인지적 지연을 쫓을 여유를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작가는 어둠의 속성을 파고든 만큼 이러한 위로를 보편화시키는 작업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작중에서 새벽이 받은 위로는 에레시레를 통한 깨달음이지만, 에레시레가 직접 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실없는 질답을 주고받고, 같이 무언갈 먹어주고, 곤란한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줬다는 점이죠. 이게 어떻게 보편적인 위로로 확장이 되느냐고 물으신다면, 에레시레가 곧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그림자는 에레시레처럼 실없는 질답을 주고받지 않고, 같이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어주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나에게 닥친 곤란한 일을 멋드러지게 해결해줄 수도 없죠. 하지만 새벽이 깨달은 진짜 위로는 그런 일의 기계적인 수행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것. 그리고 사실 가장 힘들 때가 아니어도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게 어둠의 본질적 속성이며, 본 작품은 그것을 ‘위로’의 형태로 독자에게 주지시키는 것입니다.
다만 에레시레의 위로가 전달되는 방식이 ‘에레시레가 부재했어도 성립되는 위로’였다면 조금 더 보편적인 확장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건 에레시레를 실체를 가진 인격신으로 등장시킨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이러한 실체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면, 에레시레를 어둠이 아닌 ‘가장 힘들 때 내 곁에 있어주는 친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작품이 독자에게 위로를 직접적으로 전달해주기보다는, ‘가장 힘들 때 내 곁에 있어주는 친구’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단편이 되겠죠.(그리고 이렇게 해석하면 결말부의 에레시레의 상실을 설명하기 곤란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다소 직설적인 단편입니다. 판타지스러운 설정이 나오지만, 판타지로 이해하기보다는 판타지를 통한 위로의 은유로 읽게 됩니다. 서술 방향이 워낙 일방향으로 고정돼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고요.
감성이 맞지 않으면 어색하게 느끼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작품이 고려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러니 조용히 위로에 귀 기울여보시는 걸 권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