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라는 현자의 돌이 정제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 감상

대상작품: 암흑색맹 (작가: 창궁,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1시간 전, 조회 13

내 소설 [어둠의 신은 소란스럽다]가 dark is light를 말하려 했다면, 이 소설 [암흑색맹]은 dark(space) is dark… very very much를 말하는 소설이다. [어둠의 신은 소란스럽다]가 일상적이고, 따뜻한, 판타지라면 [암흑색맹]은 우주라는 특수한 배경에서의, 차가운, SF호러다. 같은 ‘어둠’을 소재로 하면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대조가 되기 때문에 리뷰를 써 본다.

그것도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연금술이란, 수많은 개별자라는 재료를 모아 현자의 돌이라는 보편자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수행하는 연금술의 재료는 무엇인가. 베넷, 마우스, 주드, 파우스트, 카르멘— 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취미를 가지고, 말투를 가지고 존재했던 이 ‘개별자’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남는 것은 박제다. 형태만 남고 온기가 빠져나간, 말 그대로 속이 텅 빈 무언가. [암흑색맹]은 바로 그 박제들을 재료 삼아, 독자가 끝까지 이름조차 붙이지 못할 어떤 보편적인 공포라는 ‘현자의 돌’을 빚어내는 소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목격한 유일한 생존자 V가 이미 그 다음 재료로 선택되었음을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조용히 확인하게 된다.

 

[V-목격자라는 위치]

V는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자다. 그는 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막지도 못하며, 다만 곁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다. 베넷이 에어록에서 사라질 때도, 비상통로의 박제를 발견할 때도, 카르멘이 어둠 속으로 팔을 집어넣을 때도 V는 현장에 있되 중심에 있지 않다.
이 목격자의 위치는 처음엔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시점의 선택으로서의 단순한 서사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될수록 이 위치가 단순히 관찰자시점 서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게 드러난다. V가 목격하면 할수록, 그는 어둠과 더 많이 접촉한다. 어둠을 보고, 어둠을 감각하고, 어둠의 냄새를 맡는다. 목격이 곧 오염의 경로였던 것이다.

 

[어둠은 배경이 아니라 사건이다]

이 소설에서 어둠은 단순한 분위기 장치가 아니다. 어둠은 원인이고 과정이며 결과다. “우주는 지독하게 어둡다”는 첫 문장은 단순한 설정 소개처럼 보이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명제로 기능한다.

어둠은 단계적으로 물질화된다. 처음에는 헬멧 너머 보이지 않는 얼굴로, 그다음에는 비상통로를 막아선 새카만 벽으로, 마침내는 빌라 전체를 삼켜버리는 공동(空洞)으로 확장된다.

어둠은 처음부터 공격적이지 않다. 그것은 조용히 스며들어, 빛줄기를 타고 되레 가까워지고, 사람의 눈이 적응할 틈을 주지 않으면서도 폭력적이지 않게 잠식한다.

이 소설이 표현하는 공포는 내 세계관에서의 공포와 상당히 유사하다. 갑작스러운 충격이 아니라 서서히 확인되는 사실, 그리고 접점을 이룰수도 없고, 이루어서도 안되며, 이룰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 침식되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땐 이미 손쓸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는 것.

[어둠의 신-]에서의 에레시레는, 새벽과의 접점만을 만들고 서로를 바꾸지도 침식시키지도 않고 사라진다. 때문에 따뜻한 판타지로 끝날 수 있었지만, 이 소설은 그렇기에 완전히 대척점에 설 수 밖에 없다.

 

[어둠이 재료를 고르는 방식, 또는 어둠을 소환하는 주문]

“파우스트 씨가 어둠과 관련된 말을 꺼낸 적이 있었습니까?”

이 소설에서 어둠에 흡수되는 이들에게는 공통된 전조가 있다. 그들은 모두 “우주가 어둡다”는 말을 입에 올린다. 베넷의 마지막 통신은 “우주는 참 어둡군요……. 너무 어두워요”였고, 파우스트는 V와 헤어지고 퇴근하는 길에 “우주는 생각보다 더 어두웠다”고 말했다. 카르멘은 그 말을 흘려들었다가, 뒤늦게 떠올리며 이를 악문다.

이 말들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어둠을 언어로 call(호출, 소환)하는 행위이자, 어둠이 그들을 인식했다는 신호다. 어둠은 자신을 알아본 자를 데려간다. 마치 이름을 부르면 응답하는 것처럼, 어둠의 깊이를 알아차린 자에게 어둠은 아주 조용히 손을 내민다. 그리고 그 손은 거부할 수도 막을수도 없다. 베넷도, 파우스트도, 그 말을 꺼낸 직후 이 세계에서 사라졌으니까.

이 논리는 V의 결말을 예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V는 소설 내내 어둠을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인물이다. 그는 어둠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자제하면서도, 어둠의 본질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한다.

“우주는 당신들 생각보다 어둡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V가 콜로니 관계자들에게 던지는 이 말은, 그가 오래 참아온 어둠에 대한 발화다. V는 마침내 어둠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면서도. 그리고 이제 우리도 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염의 증거-고통 속으로 스며든 것]

V가 어둠에 이미 침식되었음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장면은 소설의 마지막에 위치한다. 계단에서 구른 통증이 올라올 때, V는 “고통 사이로 남몰래 스며든 차가운 어둠의 감각을 느꼈다”고 진술한다.

이 한 문장은 결정적이다. 어둠은 이미 V의 몸 안에 있다. 다른 연금술재료 사람들처럼 외부에서 덮쳐오는 것이 아니라, 부상이라는 균열을 타고 이미, 소리도 없이, 티도 나지 않게 내부로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이 이 어둠의 방식이다. 박제가 되기 전 어둠은 이렇게 침식한다. 의식이 온전한 채로, 자신이 오염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상태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오염의 흔적은 일찍부터 나타나 있었다. 빌라에서 V는 열리지도 않은 문 너머를 꿰뚫어 보는 환각을 경험한다. 박제가 걸린 전경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정확하게 그려낸다. 카르멘이 “그걸 V 씨가 어떻게 압니까”라고 물었을 때, V는 대답하지 못한다. 어쩌면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설명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둠은 이미 V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재료가 되기 전, 어둠은 먼저 속삭인다. 다음은 네 차례라고. 자신을 부르기만 한다면.

 

[‘개별자’들이 사라지는 방식]

소설은 실종이라는 사건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 반복은 단조롭지 않다. 각각의 실종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주인공 V의 인식을 갱신한다. 베넷의 실종은 충격이었고, 마우스의 박제는 현실 확인이었으며, 파우스트와 카르멘의 소멸은 V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된다.

특히 카르멘의 마지막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치밀하게 표현된, 무력하고 맹목적인, 인간이 ‘어둠’에 끌려드는 과정 자체를 설계했다고 봤다. 카르멘은 파우스트를 찾아 어둠 속으로 팔을 집어넣는다. 이성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감정이 그를 움직인다.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 있다는 확신 하나가, 어둠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미 체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카르멘을 끌어당긴다.

그 순간 카르멘은 어둠이라는 현자의 돌을 만드는 연금술의 재료가 되기를 자청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별자로서의 카르멘은 사라지지만, 그 행위는 독자에게 어떤 보편적인 감각— 상실이라는 어둠 앞에서의 인간적 무력함, 혹은 맹목(盲目-‘보지 못하는’ 눈이라는 뜻이니까)적 사랑이라는 어둠의 형태 —을 보여준다.

 

[현자의 돌이 정제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자]

V의 비극은 그가 이 모든 과정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어둠이 어떻게 사람을 고르는지, 어떻게 스며드는지,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끝나는지를 V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한다. 그렇기에 그는 가설을 세우고, 패턴을 읽고, “콜로니에 내려진 하나의 선고”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해는 면제를 주지 않는다. 연금술의 재료는 자신이 재료라는 사실을 알아도 녹는다. V가 구조를 꿰뚫어 보는 능력은, 자신이 그 구조의 다음 단계임을 미리 아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것이 목격자라는 위치의 잔혹함이다. 자신이 어떻게 될지를 너무나 상세하게 이해하고 예상하게 된다. 현자의 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고 나면, 그 자리에 남은 사람이 다음 재료가 된다.

 

[조만간 그 재료가 되길 기다리는 자의 심정]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어디에? 알 수 없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표면적으로 이 문장은 베넷이 어디로 갔는지를 향한 물음과 대답이다. 하지만 그 구조를 다시 읽으면 이 소설이 열린 결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베넷이 어디 있는지를 “곧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은, V 자신도 곧 그곳에 가게 된다는 뜻이다. 직접적인 서술 없이, 담담하게, 그러나 너무나 선명하고 공포스럽게.

V는 이 결말을 두려움으로 맞이하지 않는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수용에 가깝다. 어둠에 이미 오염되었고, 그 감각이 고통 사이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면서, V는 그래도 베넷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붙든다. 두려움보다는 기묘한 안도, 혹은 기묘한 기대.
어둠이 소멸이 아니라 전이라면, 사라진 것들이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니라면, 그곳은 어쩌면 ‘꽉 들어찬 공허’일지도 모른다. 벽처럼 느껴지던 어둠과 같이.

이것이 현자의 돌이 정제되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본 자가 마침내 재료가 되기 직전에 갖는 심정이다. 공포보다 먼저 오는 이해. 이해보다 늦게 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각. 어둠은 지독하게 어둡지만, 이미 그 어둠의 일부가 된 몸으로는 그 어둠이 낯설지 않다. 낯설지 않다는 것이 구원일지 저주일지 V는 모른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가장 어두운 형태의 연금술]

연금술은 가장 어두운 형태일 때 가장 순수해진다는 역설이 있다. 이 소설이 수행하는 연금술이 바로 그러하다. 이 소설은 개별자들의 소멸을 재료로 삼되, 그 소멸을 낭만화하거나 의미화하지 않는다. 사라진 것들은 그냥 사라진다.

그러나 그 냉혹한 소멸들이 쌓이고 쌓여, 독자 안에는 어느새 어떤 보편적인 감각이 침전된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둡다는 것. 그 어둠 앞에서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생존 본능도, 과학적 이성도 아니라, 오직 관계와 기억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조차 어둠이라는 거대한 무언가 앞에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암흑색맹]은 이 가장 어두운 재료들을 통해,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현자의 돌처럼 단단하게 빚어낸다. 그 돌은 빛나지 않는다. 하지만 손에 쥐면 무겁고, 차갑고, 오래 남는다. 아니 어쩌면 우리도 어느틈엔가 침식되어 끌려들어갈지도 모른다.

콜로니는 어둠을 ‘신병기 실험’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덮어버리려 한다. V는 그 시도가 터무니없음을 알면서도 서명한다. 거대한 공포를 목격한 인간이 사회로 복귀할 때 치르는 대가가 침묵이라는 어둠으로 찾아온다. 그가 살아남아 각서에 서명하고 대기발령을 받는 장면은, 어쩌면 어둠보다도 더 어두울지 모르는 시스템의 작동을 드러내는 듯 하다.

 

[“우주는 당신들 생각보다 어둡습니다.”]

V의 마지막 말은 경고이자 유언이며, 어둠을 소환하는 주문이고, 이 소설 전체의 요약이다.

우주는 당신들 생각보다 어둡다.

 

그리고 그 어둠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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