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봉과 프랑? 사탕 이름이야? 감상

대상작품: 신의 사탕 (작가: HY, 작품정보)
리뷰어: 글포도, 18년 9월, 조회 90

어떤 이야기를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작가에게 앙큼하게 속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대단한 반전이건 소소한 반전이건 그게 어떤 거든 내가 생각지 못한 것, 내가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닫기를 바라는데 이 작품은 그런 작품 중에 하나였다. 나는 작가가 깔아둔 복선 같은 것도 그냥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전혀 결말과 연관 짓지 못했다.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이해해가는 주인공처럼 나 역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읽어나가고 있었던 거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믿게 만드는 설득력이 놀랍다는 얘기겠지만) 그래서 반전이 더 놀라웠고 그래서 더 이 소설이 달리 보인다.

 

작가프로젝트에 참가한다고 관심이 생겨서 이미 출판 예정작이라는 이 작품을 읽게 되었다. 얼마나 대단하면 출판이 될까? 부러움 반, 호기심 반으로 읽어나가다가 또 푹 빠져버렸다. 난 왜 맨날 빠지는 것이냐? 냉철한 눈! 냉청한 눈!을 외치지만 역시 안 된다.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나게 된 이상한 존재 봉봉과 프랑. 한 몸이면서 완전히 다른 그 존재는 정말 흥미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누군가의 뒤통수에서 불쑥 얼굴이 나타나고… 이건 그냥 주인공이 정신이 혼미해서 헛것을 보거나 상상력이 너무 풍부해서 음악시간에 한 상상인가 했으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존재를 반기는 반 아이들의 반응에서 이건 뭔가 색다른 이야기구나 예감했다. 오히려 뒤통수의 인면창을 거부하는 것 같은 아이는 바로 본인인 봉봉이고 더구나 더 놀라운 건 모두 프랑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봉봉을 못마땅해 한다는 거다.

 

이 신기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내내 학교 내 왕따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 이런 방식으로도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구나 우선 놀랐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 상상력에 또 한번 놀랐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폭력에 방조자가 돼 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또한 자신도 봉봉보단 프랑이 더 좋다는 고백을 하는 것에선 아휴, 한숨지었다가 결국 봉봉을 돕기로 하는 장면에선 어 저러다 주인공까지 왕따 당하면 어쩌지 조마조마했다가 계속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그런 주인공에게 계속 친절하기만 하고….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보고 들어 왔던 익숙함이 하나도 들어맞질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다는 느낌이 든다.

 

주인공도 한때 약한 몸 때문에 왕따 경험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더 봉봉에게 마음이 쓰이고 도와주려고 적극적이다.

‘그때 당한 괴로움을 머리와 몸이 기억한다. 누구라도 도와줬으면 하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괴롭히는 가해자보다 멍하니 바라보는 방관자들이 더 끔찍했다. 난 결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난 이 마음가짐에 큰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아이들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위화감, 무리가 주는 공포는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아니 어쩌면 어른들도 이미 어린 시절에 그런 것들을 다 경험했지만 모른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론 가해자 편이었고 가해자였다면 더더욱. 피해자였어도, 방관자였어도 역시 그 부끄러움이나 죄책감 때문에 나도 그랬어, 하고 선뜻 고백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할 테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역시 학교폭력에 방관자들임에는 분명하다. 양심이 콕콕 찔리는 가책을 느끼며 계속 읽다보면 만나게 되는 또 다른 현실.

 

이 소설의 압권은 역시 마지막의 반전이다. 아흑, 정말 이런 앙큼한 속임수를 …. 정말 이 소설을 사랑해버리고 말게 되잖아.

 

좌우 구분이 되는 욕실화를 며칠 동안 계속 바꿔 신고 있었던 난 문득 소름이 돋았으며 어디선가 문득 노랫소리가 들리면 화들짝 놀라버리며 어딘가 신의 사탕이 떨어져 있는 건가? 주변을 샅샅이 흘깃거리고 … 이런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의 진정한 페해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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