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 줄거리 요약.
주인공 정하경은 병원에 가던 길에 유클리드라는 이상한 회사의 브로커를 만납니다.
브로커는 하경에게 입사를 권합니다. 하경은 지원한 적도 없는데, 유클리드는 이미 하경의 병원 기록, 검색 기록, 자기 보고, 생활 패턴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하경은 처음엔 거부하지만, 브로커가 하는 말이 너무 정확합니다.
하경은 죽고 싶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살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삶을 버리고 싶은 건 아닌데, 계속 살아갈 힘도 없습니다. 유클리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데려가는 곳입니다.
유클리드의 핵심은 “고통을 없애준다”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고통을 느끼는 인간의 반응 자체를 줄여준다”에 가깝습니다.
회사에서 하경이 하는 일은 말도 안 되게 단순합니다.
모니터에 뜨는 문장.
오늘도 괜찮습니까?
그걸 보고 확인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하루 세 시간. 그게 전부입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만, 하경은 점점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갑니다. 회사는 월급도 주고, 집도 주고, 밥도 줍니다. 일은 쉽고, 책임도 적고, 괴로운 생각도 줄어듭니다. 얼핏 보면 좋은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이 점점 비어갑니다.
유클리드는 사람을 회복시키는 곳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저항과 의지를 빼는 곳입니다.
“괜찮습니까?”라고 묻지만, 사실 괜찮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반응입니다. 버튼을 누르는지, 시스템에 맞게 움직이는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안정되는지입니다.
그러다 하경은 유클리드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유클리드는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지구를 정리하는 장치입니다.
너무 많은 고통, 너무 많은 감정, 너무 많은 인간의 의지와 욕망을 줄이는 시스템입니다. 사람들에게 선택지를 주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지치고 무너진 사람들을 “편안한 소멸” 쪽으로 유도합니다.
하경은 시스템 안에서 특이한 존재로 분류됩니다.
그는 21일 동안 제대로 순응하지 않았고, “괜찮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유클리드는 하경에게 선택지를 줍니다.
아래로 가면 의지를 제거당하고, 고통도 질문도 거의 없는 존재가 됩니다.
돌아가면 계약은 끝나고, 돈도 집도 편안함도 사라집니다. 대신 다시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하경이 갑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여전히 확신이 없습니다. 여전히 삶이 대단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압니다.
나는 이렇게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하경은 말합니다.
살고 싶어요.
한 번쯤은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요.
이 말 때문에 유클리드의 시스템이 멈춥니다. 하경은 제거되지 않고, 계약을 해지하고 밖으로 나옵니다.
이후 하경의 삶이 극적으로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병원비도 있고, 방도 작고, 뉴스에는 재해가 나옵니다. 유클리드는 사라진 것처럼 검색도 잘 안 됩니다. 하지만 통장에는 월급이 남아 있고, 하경은 그 돈으로 병원비를 내고 방을 옮깁니다.
마지막에 하경은 남은 튀김을 먹습니다. 맵고 짜고 기름진 감각을 느낍니다.
2. 의미 (주관적)
짧은 단편이지만,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독자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락사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고, 우울증이나 청년실업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무기력에서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싶다는 메시지로 수렴할 수도 있고, 기계 부품처럼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의 권태나 삶의 의미 상실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결말 부분에서는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행복에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일상적 삶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소설의 핵심 기둥일 것입니다.
3. 좋았던 점 (개인적)
여기까지만 리뷰를 보면 좋은 소설입니다.
“평범하게요.”
삶이라는 테마에 포커싱한다면, 좋지만 평범한 소설입니다.
어떻게 보면 좀 식상한 메시지네, 라고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외계인이 세운 회사, ‘유클리드’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여러가지가 있지만,
우선 제가 유클리드를 보며 떠올린 것 부터 말해보겠습니다.
리들리스콧 감독의 에일리언 시리즈에서의 엔지니어.
오피셜이 아닌 팬들의 추정이지만, 제노모프(에일리언)을 만든 외계종족인 엔지니어는 인류를 만든 창조주인데, 인류를 멸종시키려 합니다.
왜?
여기에 사람들이 추정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다크 포레스트 이론.
SF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이고, 대표적으로 류츠신의 『삼체』에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우주는 어두운 숲이고, 각 문명은 숲속에 숨어 있는 사냥꾼이다.
상대가 선한지 악한지 알 수 없고, 기술 발전 속도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다른 문명을 발견하면, 나중에 위협이 되기 전에 먼저 제거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엔지니어가 인류를 만들었지만, 인류가 통제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거나 앞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창조주 입장에서는 인류를 “실패한 피조물”이 아니라 “미래의 위험 요소”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멸종시키려 한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걸 유클리드에 붙이면 더 재미있어집니다.
인간이 너무 시끄럽고,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저항하고, 너무 의미를 만들고, 너무 많이 번식하고, 너무 많이 파괴하기 때문에 “정리 대상”으로 보는 쪽에 가깝습니다.
유클리드와 다크 포레스트, 에일리언.
이건 이 소설을 가지고 연결지을 수 있는 한가지 예시 일 뿐입니다.
유클리드에 얽힌 수수께끼는 다른 가능성과도 연결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클리드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이 소설을 평범한 삶의 이야기에서 장르소설로 끌어올리는 핵심 장치라고 생각했습니다.
4. 좋았던 점2 (개인적)
잠깐 독자로서 푸념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소설에 관한건 아니고, 문학판 아니면 장르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길게는 말고, 압축해서 짧게요.
요즘 솔직히 제가 볼 소설이 없습니다.
왜 개인의 감정 같은 미시적인 이야기를 장르에서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가끔이면 신선한데, 매번 반복되니 힘듭니다.
매번 감정과 공감만을 요구받는 것도 피로하고,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제가 독자로서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느낌도 듭니다.
지금의 장르소설판에서 이야기 되는 담론이 보기 싫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현실과 현안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상상하고자 하는 전통적인 장르가 아니라,
왜 내가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에 장르라는 껍데기를 씌운 이야기들이 이렇게 많은지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정치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건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들의 매력을 부정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좀 더 넓은 상상력 속에서 거닐고 논 다음, 소설이 주는 메시지로 돌아올 수 있는 작품이 별로 없지 않냐는 것입니다.
제가 한참 책을 읽던 과거와 달리, 저 같은 성인남성은 지금의 시류에서 엄청나게 소외되고 있습니다.
결과는 웹소설로 전부 떠나게 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제가 뭘 이야기 하려는 지 아실겁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이 소설 정도면 “나도 읽을만 하다”라고요.
저는 『이 유클리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가 브릿G가 추구하는 ‘모범사례’로서 잘 쓰인 소설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공감하기 좋은 소재가 있습니다.
삶이 힘들다.
계속 버티는 게 어렵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건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감정을 그냥 현실적인 우울이나 무기력으로만 다루지 않고, 유클리드라는 이상한 회사, 외계인이 세운 시스템, 지구를 정리하려는 장치로 확장합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은 좀 더 이 공상과학 쪽이 부각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뭐… 그건 정말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니까요.)
작은 감정에서 시작하지만, 이야기는 작아지지 않습니다.
소소한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상상력은 훨씬 넓은 곳까지 갑니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에는 튀김 하나, 떡볶이 국물 하나, 맵고 짠 감각 하나로 돌아옵니다.
저는 이런 균형이 장르소설에서 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범사례. 모범소설.
이 소설이 가진 최고의 강점은 읽을 맛의 황금비율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유클리드의 황금비.
소설이 가진 장르소설로서의 황금비.
노리셨다면… 대단하다고 밖에 못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