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하고 심오하고 철학적이고도 재미있는 이야기.
파라미터 O, 이 제목부터 나의 무지함을 일깨우기 때문에 사실 섣불리 읽게 되질 않았건만 안 읽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
처음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은 대체 ‘파라미터 O’가 뭐지? 저 동그라미는 알파벳 오인가 숫자 0인가 (이것이 무엇인가는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나의 경우 모르고 읽었던 게 오히려 더 큰 감흥을 준 것 같다. 사전 검색해서 알게 되는 것보다 소설을 통해 알게 되는 게 더 좋았다. 혹시 모르는 독자분도 꾹 참고 읽어나가시다 보면 아! 할 때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가볍게 넘어간다.)
게다가 이 소설의 프롤로그는 먼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묻는다. 아니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건드리다니…. 어쩌려고 시작부터 이렇게 거창한 것일까?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미한 소설들을 많이 보기 때문에 괜히 겁부터 먹었다가 점점 계속 커지고 새로워지는 이야기들에 놀라워하며 읽어나갔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의 문제를 넘어서서 계속되는 이야기, 과연 이 끝은 어떻게 될까? 계속 읽어나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에 닿았다.
침묵. ….. 와…… ! 또 침묵….. 그리고 리뷰쓰기 (근데 참 리뷰쓰기가 어려운 작품이다.)
처음 소녀가 쇠파이프로 문을 부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식으로 거대한 이야기가 진행 될 거란 생각조차 못했다. 다 읽고 보니 저 프롤로그는 상징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깨부수고 나가야만, 구멍 밖으로 나가야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세상. 죽음을 각오한 생명의 탄생과도 같은 과정이 펼쳐질 거라는 암시.
종말을 다룬 소설들이 주는 독특하고 낯선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작가의 문체가 독특하다면 그 느낌을 잘만 살려준다면 주인공 한 사람만 등장하거나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소설이라도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는 법인데 이 소설은 멋진 문체에 더해 생생한 인물들과 흥미를 돋우는 기계종들이 어우러져 끝날 때까지 사건들이 계속 벌어진다. 소소한 갈등들로부터 거대한 갈등까지 계속 확장되어가며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이 소설은 꽤 낯설면서도 독특하다. 어떤 종말에 대한 이야기지만 시작에 대한 이야기이며 절망보다는 희망을 느끼게 되고 우울감보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에다 반전까지 있다.
우리마저 죽고 나면, 이 태양계는 관객 없는 공허한 연극이 될 거다. 난 멸종 그 자체보다 그 사실이 더 두려워. 우주에 비하면 티끌 같다고는 하지만, 내 생각엔 우리 종족의 중요성은 크기로만 따질 수 있는 게 아니었어.
(….)
관찰하는 사람 없이는, 그 어떤 웅장한 광경도 아무것도 아니야.
안과 밖, 관찰당하고 관찰하고 창조주의 피조물이면서 창조주일 수 있는 위치, 그 존재가 겪는 이야기.
인류의 끝 불임의 시대, 30여명 남짓 살아남은 자들의 유일한 안식처인 시설의 엔지니어 ‘나’(조슈)에게 감정이입 되어 조슈가 느끼는 궁금증, 호기심, 분노, 권능, 불안, 죄책감, 진실과의 조우, 깨달음을 함께 느끼면서 끝에 다다를 때까지 따라가기만 해도 된다. 거기서 무엇을 얻어 가질 것인가는 독자들의 몫이다.
나는 멸망 이후에 최후의 인류가 사는 모습은 어떨까 궁금해서 읽다가 느닷없이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막 한보따리씩 쏟아져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 다양한 가치관들의 대립 – 인간에게 쾌락이란 무엇인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은?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은? 범죄란 무엇? 올바른 선택과 결정은? 그 밖의 종교적인 물음 등등. 덤으로 성교육까지.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 이 소설은 세 번 탈바꿈을 한다. 시설 내부의 환경과 엔지니어로서의 삶, 이브와의 만남 이후 기계종들의 이야기, 감옥과 그 이후의 혈투 각각 색다른 분위기가 나지만 하나로 연결 돼 있는 감정이 점진적으로 확장되고 극적으로 변화되는 게 자연스러워서 잘 조화가 되는 것 같다.
삶의 목적, 삶의 의미가 뭘까 이런 것들에 밤잠을 설쳐본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아무래도 낯선 환경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그 낯선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도 있는데다 뚜렷하고 다양한 인물들의 대립을 통한 갈등이 자연스레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지기 때문에 읽는 내내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고민하고 생각하고 가차판단을 하게 되긴 하지만 절대 강요하는 느낌도 아니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즐겁게 소설을 읽으며 이런 저런 사색과 철학적인 난제들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이다. 대부분 지루해져서 소설을 떠나거나 혹은 오히려 더 혼란만 가중되는 법인데 이 소설에선 그렇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아주 특이한 창조신화이다. ‘이브’는 아담과 이브에서 따온 이름이고 이야기를 읽다 보면 특정 종교가 떠오르게 된다. 소설 속의 목사와 결말 부분에 의해 종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내가 종교적 이해가 좀 더 깊었다면 이 소설의 리뷰는 또 달라졌을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제목에서 느꼈던 것과 같이 이 또한 무지를 고백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보니 리뷰쓰기가 더 힘들다. 그럼에도 난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리뷰어의 무지는 무지이고 소설을 읽고 각자 뭔가를 얻어 가시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브 너무 귀여운데 어쩌지? 없던 모성애도 생겨나게 만드는 저 귀여움. 나였어도 조슈처럼 하게 되었으리라. 소설을 읽고 나서도 가장 잊히지 않는 존재는 이브다.
* 여태까지의 제 리뷰중에 댓글이 가장 많은 작품이 되었네요. 댓글이 궁금하신 분은 더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