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그 아픈 것 감상

대상작품: 그 여름, 바다 – 1 (작가: 김노랑, 작품정보)
리뷰어: 글포도, 18년 8월, 조회 58

*2편을 함께 리뷰했습니다.

 

7월의 끝자락, 햇빛에 익은 바람이 불었다. 파란색 마을버스가 바닷가 외진 길에 섰다.

 

이 첫문장이 참 좋다.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아우르면서 독자를 어느새 바닷가 외진 길 위에 서 있게 만든다. 햇빛에 익은 바람 냄새는 잘 마른 빨래에서 맡아진다. 뭔가 따스하고 건조하면서도 푸근한 느낌이 좋아서 자주 그 빨래에 얼굴을 묻곤 했었던 추억도 떠오르게 한다. 그 느낌과 이제 막 고향에 돌아온 연하의 느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햇빛에 익은 바람이 고향으로 돌아온 연하를 포근히 안아주는 것만 같다.

 

연하는 10년 전에 떠났던 고향에 돌아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열 일곱의 자신을 떠올린다. 세월의 변화가 느껴지도록 변해버린 풍경 속을 걸으며 또한 아스라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 기억 속에는 선우가 있다. 자신의 가방을 들어주던 남자아이.

 

그 아이가 말을 건다.

“니, 연하 가?”

사투리를 쓰는 남자아이, 아니 이제 키가 훌쩍 큰 어른 선우는 여전히 고향에 그렇게 있었다. 10년 동안 떠나 있었던 여자와 10년 동안 남아 있었던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국수를 해주면서 “왜 왔는데?” 물어보는 선우. 그냥 단순한 고향 친군가? 할 때쯤 다시 떠날 거라는 연하의 말에 흘러내리는 선우의 눈물. 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남자의 순정이 있는 이야기구나 알게 된다. 남자의 순정. 글쎄, 살아보니 그리 흔하게 눈에 띄진 않더라. 그래서 더 귀하고 그래서 더 관심이 간다.

서울말을 쓰는 여자와 사투리를 쓰는 남자의 대화 속에서 열두살 그들이 처음 만나던 날로부터 그들이 헤어지고 난 다음의 일들까지 조용히 추억속을 거닐듯이 이야기가 흘러간다. 현재와 추억이 씨실과 날실처럼 넘나들며 한폭의 그림처럼 수놓아진다. 그렇지만 그것이 꽉찬 현실로 느껴지는 건 디테일의 힘이다. 여자가 아름답게만 그려지거나 남자가 멋지게만 그려지면 식상할 텐데 선우 동생 태우가 놀려 먹던 ‘뚱돼지’에서 연상되는 연하의 이미지나 ‘말라비틀어진’ 선우의 이미지 그리고 방파제의 추억 장면에서 보이는 반전 같은 것이 색다른 그림으로 상상된다. 성인이 돼서 만났을 때는 선우가 키가 훌쩍 크다지만 그는 먼저 눈물을 쏟는다. 연하는 깡마르고 지쳐 보인다지만 담담하다. 10년 세월은 풍경도 마을도 그들의 몸집도 변화시켰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건 선우의 마음 뿐인듯하다. 그래서 이 남자의 순정이 도드라진다.

 

겨우 손 한번 잡아본 사이, 겨우 몸이 살짝 닿아본 스킨십이 다인 사이에 연락도 안 되고 돌아오지도 않는 여자를 10년 동안이나 꿋꿋이 그리워하는 저 마음은 대체 어떻게 가능할까? 그런 끈질긴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또한 해본적 없는 나로서는 이해는 어렵고 그저 연하가 부러울 따름이다.

 

그림이 가득 그려진 돌멩이들. 그 무게만큼 커져 있는 사랑.

 

이 소설은 저 남자의 순정 때문에 달달한 첫사랑의 추억이 없는 사람마저도 눈물짓게 만드는 면이 있다. 뭔가 따스한 안개가 감싸주는 것 같은 느낌은 고향 그곳에 햇빛에 익은 바람이 머물러 있어서 그런 것일 뿐일까? 아니다. 선우가 있기에 가능하다.

포근하고 아련하고 조금 슬픈 이야기다.

 

고양된 감정으로 2편을 자연스레 열어보았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음, 사실 첫 부분은 좀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분위기가 확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아련하고 따스하던 안개 같은 것이 확 걷힌 느낌이랄까? 갑자기 시점이 1인칭으로 바뀌어서만은 아닌 것 같은데 잠깐 어리둥절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연하의 시점이다. 연하가 고향을 떠나 도시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참이었다.

물론 시간차를 두고 1편과 2편을 따로 따로 읽었다면 이런 괴리감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연이어 보는 사람한테는 좀 전편의 분위기를 확 깨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최대 단점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또 도시생활의 팍팍함을 표현하기에는 이 문체가 나은 것은 확실하다. 고향과도 같은 푸근함이 없다는 걸 문체만으로도 극명하게 대비되게 하다니.

2편은 2편 나름대로 또 색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식당에서 살아가는 혹은 일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자린고비 같은 할머니와 생선을 훔쳐 먹는 식당일하는 숙희 아줌마, 떠나온 바다를 생각하며 식당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나(연하)의 이야기다. 열 일곱에 서울로 올라온 소녀의 팍팍한 삶, 그리고 마침내 마주치게 되는 진실, 여성 3대의 갈등의 이유가 밝혀진다.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

이제 연하에게 환하게 웃어주는 선우의 저 얼굴을 어쩌면 좋을까! 벌써부터 가슴이 아파온다. 대개가 그렇듯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개인간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들보다는 더 많이 다른 이유들이 방해하고 나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슬픈 이야기다.

그러니 그 돌멩이들을, 그 선우의 심장을…. 그러지 말라고는 못하게 만들어 버린 작가님의 솜씨를 탓해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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