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감상

대상작품: 대화 (작가: 끼앵끼앵풀, 작품정보)
리뷰어: 무강이, 8시간전, 조회 10

가끔 작가들은 작품이 작가와 독자의 대화라는 측면을 망각하고는 합니다. 굳이 직접적인 메시지의 주고받음이 아니더라도요. 덧글창에서 덧글로 한마디 남기기도 하고, 리뷰로 장문 감상을 남기기도 합니다. 작가 – 작가 간의 관계라면, 작품으로써 대화하기도 하겠죠.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이전에는 일방통행적이었을겁니다. 1900년대만 하더라도 러브크래프트와 위어드 테일스 작가진들 간에 ‘서신’으로 대화가 이루어졌고, 그 이전에 에밀리 디킨슨과 같은 시인은 방 안에서만 시를 쓰다가 죽고 나서야 남편이 그 많은 시들을 추려내 공개가 된 시인입니다.

 

이 작품에서 언급하는 <대화>와는 다른 이야기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상한 말을 하는 건, 최근에 고민하던 주제기도 하고 – 그냥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갑자기 나오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리뷰어로 써야 할 리뷰가 밀리긴 했는데, 사실 그냥 4주 남은 거 쓰지 말고 보상도 포기할까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작가님이 작성한 큐레이션에 선정되어서요.

소설이건 리뷰건 뭘 쓰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뭘 쓰라고 요구받지도 않는 상황에서 퍼진 채로, 사랑니 뺀 후유증으로 널브러져 있다가 별안간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대화>라는 작품 자체를 줄거리로 요약한다면, 별 내용 없을 겁니다. 안드로이드와 소년의 여행과 교감, 그리고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로 끝나버리는 작품입니다. ‘서사’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님이 더 잘 아시겠지요.) 장편 소설의 서사보다는 뮤직비디오의 서사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러나 불러일으키는 감정만큼은 확실합니다. 소통불가능한 두 존재의 소통 시도. 저는 <윌-E>를 본 적 없지만, 마치 무성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드는 게 저 영화 생각도 나네요. 서사적인 역동감보다는 정적인 서정성을 강하게 드러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레이 브래드버리 느낌도 나는 작품이었습니다. 가끔 시처럼 소설을 쓰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요즘은 폄하되는 기법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고 드러내기’는 한때 소설의 기본 기법이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이를 ‘빙산 기법’으로 불렀다죠. 첫 문장을 쓰고, 부연적인 묘사를 한 다음에, 첫 문장을 지워버립니다. 어떤 면에서는 영국식 농담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소설에서는요. 영상에서는 그래도 살아있습니다. 예를 들어 <존 윅> 보는데 존 윅이 일일이 기술명을 외치면서 액션을 취한다면 폼이 다 떨어질 겁니다.

물론 만화적 측면을 살리기 위해서 거꾸로 이 방향을 취할 수는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방향성 자체가 다른 거니까요.

아니다, 사실 영상에서도 그다지 살아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매체는 갈수록 숏폼을 내세우고, 아마 <존 윅>을 극장이 아니라 스마트폰 크기의 모바일 화면으로 본다면 <무한도전> 자막 정도는 띄워줘야 볼 수 있을 겁니다.

웹 연재 소설은 그 여파가 제일 심하죠. 사실상 소설이라는 매체가 절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나서 부활한 셈인데, 웹소설이 출판소설의 문법과 같을 리가 없습니다. 그냥, 당장 말하는 게 좋습니다. 묘사는 커녕 설명조차 귀찮습니다.

사실 그 점에서 무협은 서술전략이 효율적이죠. 한자어니까.

 

그럼 그렇게 해야 돈이 벌리고 독자를 얻을 수 있으니까 모든 작가가 그렇게 써야 하느냐구요.

사실 그 점에서 제가 한동안 방에 틀어박혔던 것 같습니다. 제가 쓴 <청춘 환상 검무곡>이 첫 작품 치고 썩 나쁘지 않았다고는 주변에 말하고 다닙니다만, 그래도 모자람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뭔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더라구요. 정작 취직은 커녕 아르바이트도 아직 못 구했는데, 관성은 이미 당겨진 채라 갑자기 멈춰서니 굴러떨어지는 게 많이 아팠습니다.

제일 괴로웠던 건 옆사람에 대한 질투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근처 사람들은 이미 작가로서든 학자로서든 데뷔해서 잘 나가고 있는데, 하다 못해 일자리라도 있는데 저만 멈춰 서 있다고, 그러니까 멈추지 말고 계속 글이라도 써야 한다는 괴로움이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 써야 한다’고 하는 말들을 듣는 게 제일 기가 꺾이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네. ‘말하지 않고 드러내기’는 바쁜 세태에 맞지 않는, 비효율적이고 고리타분한 방식일지 모릅니다. 그래서요?

요즘은 수많은 컨텐츠를 쳐내는 시대입니다. 쳐낸다는 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복합되어 있습니다.

  1. 쳐 많이 쏟아내다
  2. 쳐 많이 읽어내다
  3. 쳐 많이 튕겨내다

사실 이거 아니었는데 전에 써놓은 게 있었는데 지워졌어요. 아무튼 간에 이런 세태에 글이나 쓴다는 건 그 쏟아지는 컨텐츠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컨텐츠를 보고나면 그래서요. TV에 나오는 모 유튜버 누군지 모른다고 가족한테 말했더니 ‘넌 평범한 사람들과 스몰 토크 거리가 없니?’하고 갈구더라구요.

컨텐츠 보는 것조차 노동이 되어버린 시대에 ‘돈도 안 되는’ 창작을 한다는 건 한가로운 일입니다. 그래서요. 그 한가한 순간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었던가요. 그 한가한 순간을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대화’하기 위해 창작을 하는 게 아니었던가요.

 

적다 보니 <대화> 자체랑은 상관 없는 글이 되어버렸네요. 쉬다가 갑자기 글을 쓰면 또 이렇게 됩니다. 큐레이션에 <대화> 말고도 다른 작품도 읽었는데, 유쾌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도 부담 없이 다시 글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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