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관의 문제
길에서 키스하고 있는 두 사람을 봤습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배경) 자유연애를 금지하는 굉장히 보수적인 국가
(인물) 외국물 먹은 부잣집 철부지들
->문제 생기면 부모가 돈으로 해결해 주겠죠. 신경 쓰지 말고 갈길 가면 됩니다.
(배경) 자유연애를 금지하는 굉장히 보수적인 국가
(인물) 반체제 혁명가들
->억압에 반대하는 정치적 퍼포먼스 겠군요…지지와 연대의 표현을 합니다.
(배경) 현대 서울의 예식장
(인물) 결혼식 중인 커플
->환호와 박수를 보냅니다.
판타지에서 세계관과 인물은 독자가 장면/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결정해 줍니다. 그런데 <신의 정원>에서는 세계관, 인물 설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인물들은 격한 행동을 하니까 독자는 이걸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해야 할 지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인물들이 갑자기 분위기 싸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첫 회에 신들의 신성수가 오염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신들이 격론을 벌이며 말다툼을 하는데…신성수가 오염되면 왜 안 되는지(신이 물 좀 못 마시면 어떻게 되나?), 신이라면서 왜 해결을 못 하는지, 신성수가 신들의 생활용수(?) 말고 다른 기능이 있는지(신력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등), 신성수의 대체재가 있는지, 그렇게 중요한 신성수면 매우 강력한 보초라도 세워두지 왜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했는지, 언제까지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지, 신계가 망가지면 인간계에도 어떤 영향이 있는 건지…신성수가 오염된 게 왜, 얼마나 큰 일인지에 대한 설명이 빈약한 상태에서 낯선 신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말싸움을 합니다. 신들 각자의 캐릭터와 입장이 또렷한 것도 아닙니다. 신들에 이입도 안 되고 상황도 판단이 안 되니 ‘남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마을의 사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마을에 약초 담당은 주인공 로난의 어머니 외에는 언급이 안 되는데, 로난의 어머니가 죽고 나서 마을 사람들의 의료는 누가 담당했는지, 후계자 격인 로난이 마을을 떠났을 때 마을 사람들이 왜 ‘그럼 우리 마을 약초는 이제 누가 책임지냐’고 당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로난네가 마을에서 배척 받는 처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로난이 몇 년 씩 (죽었다고 추정되는) 어머니를 간병하면서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는지(이 마을 사람들은 어린애 혼자 사는데 집안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나)…등등 마을공동체와 로난의 관계가 별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보니 로난이 마을 사람들에 서운해 할 때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마을 사람들 중에 로난과 가까워 보이는 바벨 아저씨도 로난에게 엄청나게 살뜰하진 않은데요. 이 세계에서 성년이 몇 살인지는 모르겠으나 로난이 떠날 때 미성년자였던 것 같은데…하루아침에 미성년자가 혼자 떠나도 마을 차원에서 걱정하는 기색이 없을 정도로 각박한(?) 동네인데요…도시에서 옆집과 별로 교류가 없으면 부모님 장례식에 옆집 사람이 조문오지 않았다고 서운해하지 않잖아요.
마법사 네휴레–영주 가문–마을 사람들의 권력관계/친분관계도 서술이 되어야 합니다. 네휴레가 푸취풀 때문에 난동을 부릴 때 사람들의 반응으로는 ‘원래 저런 분이 아닌데’ 정도만 나오고 바로 영주의 딸인 어린 소녀에게 성인인 마법사를 혼자(!)진정시켜 달라고 합니다. 영주의 딸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요청을 받아들이는데요. 네휴레는 심각한데 다른 사람들은 ‘저 네휴레 양반 또 저래’ 정도의 난동이었을까요? 어린 소녀일지라도 마법사를 제압해버릴 수 있는 강한 권력을 가졌다…라면 영주의 딸이 직접 출동할 필요가 없습니다.누군가가 ‘영주 가문의 명을 받들어’ 마법사를 복종시켜 버리면 되죠. 영주가 마법사보다 강력하다면 로난은 마을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주에게 어머니의 죽음이 수상하다고 호소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님 마을 사람들이 영주에게 스스럼없이(?) 민원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일까요(영주=구청장 급)? 영주–네휴레–마을 사람들의 권력관계를 잘 모르겠으니 네휴레가 난동 부린 게 하극상인지, 어린 소녀가 나선 게 용감한 건지 책임감 있는 건지 무모한 건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네휴레가 로난 어머니의 사망진단을 내리자 마을 사람들은 의심 없이 믿어버리는데요.(그렇게 된 이유가 나중에 나오긴 합니다만)네휴레는 평소에 마을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존재였을까요? 그럼 네휴레가 난동 부릴 때 마을 사람들이 더 놀라는 반응을 보였어야 합니다. 네휴레의 마법이 강력해서 마을사람들을 더 강하게 조종할 수 있거나 마을 사람들이 네휴레를 전적으로 신뢰했다면 네휴레는 로난을 더 일찍 마을 밖으로 쫓아낼 수도 있었을 거고요. 기껏 뮤아를 사망시켜놓고(?) 눈엣가시인 로난을 몇 년 씩이나 마을에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었다면 네휴레의 마법은 애매한 수준이었을까요? 영주 가문의 어린 소녀는 처음으로 네휴레를 의심하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인물인데요. 그런 것 치고 네휴레와 대립하거나 뭔가 더 파헤쳐 보려고 하거나…하지를 않습니다…네휴레–영주–마을 사람들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강한 첫 등장에 비해 활용은…전형적인 ‘말괄량이 공주님’이라서 아쉽습니다. 네휴레–영주–마을 사람들/영주–로난–영주의 따님–로난의 어머니–영주의 아내/영주–로난 어머니–네휴레 등등 서로의 은원과 권력관계에 따라 흥미로운 조합이 나올 수 있을 텐데…아깝습니다…그물처럼 엮으면 재미있을 관계들이 있는데 꿰지 않은 구슬처럼 따로 놀아요…
이 작품에서 세계관과 인물 설명을 아끼는 이유는 결말 부분에 가면 알 수 있습니다. 작가님은 계속 꽁꽁 숨겨 두다가“짜잔!”하고 결말에서 이 인물이 사실 누구이며 왜 그랬는지 다 설명하시는데요…독자들은 작가의 생각보다 인내심이 없더라고요…ㅠ’마지막에 다 나오겠지’ 하면서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결말에 나올 내용을 ‘떡밥’으로 조금씩 흘려 주세요…독자도 뭔가 주워먹을 콩고물 같은 게 있어야(?) 끝까지 가지 않겠습니까ㅎㅎ
2. 생략과 함축
<신의 정원>은 원고지 1천 매가 넘는 분량입니다. 현 분량에서 회당 1/3~1/2를 지우시고 몇몇 회차를 들어내다시피해서 전체 분량에서 1/2 정도를 삭제하시면 늘어지는 부분이 없어 보일 듯 합니다. 보통 대화문이 나오면 전개가 스피디하다는 느낌이 있는데, 이 작품에선 대화문을 많이 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일상적인 인사말을 굳이 따옴표에 넣어서 보여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신들의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들의 숫자를 더 줄여서 인물관계를 단순화시키시고 이들의 논지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시면 어떨까요? 하르덴처럼 별다른 역할이 없는 인물도 빼셔도 될 겁니다.
애인이 “늦어서 미안해. 뭐 하면서 기다렸어?” 할 때 “코도 후비고 머리도 긁고 물도 마시고 냅킨도 접고 이 인간 왜 또 늦나. 오다가 사고라도 당했나. 이런 생각도 했어.”라고 대답할 필요는 없지요. 다 빼고 “널 생각했어.”라고만 대답하면 됩니다.로난이 괴물과 싸우기 전에 곰과 싸우는 장면은 굳이 없어도 되고, 더 짤막하게 나와도 됩니다. 주적은 괴물입니다. 유니란이 공짜로 배 타려고 사공과 얘기하는 장면도 분량에 비해 너무 쉽게 해결됩니다. 그럴 거면 그 장면에 그렇게 분량을 할애하여 공을 들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들인 것에 비해 갈등/위기가 너무 쉽게 해결되면 허탈해져서요…힘을 줘야 할 부분에 힘을 주시고 힘을 빼셔야할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시면 어떨까요.
3. 인물과 구성/전개
다른 리뷰에서 <신의 정원>을 군상극이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건 로난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입니다. 그렇다면 로난에 집중하고, 로난을 중심으로 소재와 인물들을 유기적으로 활용하여 더 쫀쫀하고 압축적인 작품이 되어야 합니다.
반신 뉴아르가 있는 신들의 세계는 로난이 있는 세계와 따로 굴러갑니다. 로난이 신들의 세계에 개입(당)한다면, 최소한 마을사람들이나 로난이 신을 믿는 종교적인 인물이고 그런 세계가 되었어야 합닏. 반신인 뉴아르가 받는 차별이 로난의 개입에 영향 받으려면 로난–뉴아르가 친분/대립 관계가 있거나‘인간 뉴아르=로난/신계의 로난=뉴아르’의 비유가 나오면 어땠을까요? 뉴아르는 반신이고, 로난은 이방인 아버지를 둔‘반쪽짜리 마을사람’이고, 이로 인해 뉴아르가 신계에서 애매한 위치이듯 로난이 마을 사람들과 뜨뜬미지근한 관계일 수 밖에 없고…이런 식으로 세계가 연결되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면 로난이 신계에 개입하는/개입되는 동기도 설명되었을 거고요.
로난이 마을을 떠나는 동기는 어머니이고, 자기의 무지로 인해 약초를 잘못 써서 어머니가 죽었다는 죄책감도 가진 인물입니다. 그러면 로난의 ‘아이템’은 어머니와 연관 있는 약초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 괴물을 뜬금없이 검으로 잡을까요…힐러캐인 줄 알았는데 전사캐였…(법사인 줄 알았는데 전사였던 <반지의 제왕>간달프도 있지만 그건 톨킨이니까요…)여행의 동기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면 로난의 동기는 어머니로 설명되어야 합니다. 신계를 구하는 이유도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요. 동굴에 들어가는 이유도 죽은 어머니와 재회하거나 부활시키기 위해, 유니란을 저버리는 이유도 어머니, 왕이 되는 이유도 어머니가 되어야지요. 로난의 여정에 나오는 시련도 로난의 여행의 목적과 관련있어야 합니다. 로난이 이 여행을 끝내면 어머니의 죽음에 ‘속죄’를 한다거나 어머니를 죽인 네휴레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지킨다거나 ‘약초 장인’이 된다거나…그런데 로난이 괴물을 퇴치해서 얻거나/변화하는 게 뭐지요? 로난이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설정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로난의 여행목적과 여행과정의 시련이 관련이 없다 보니 여행 부분이 늘어집니다. 독실한 신자나 운명론자도 아닌데 신들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니까 로난이 왜 이 여행을 시작했는지가 희미해져 버립니다. 마지막에 어머니의 죽음의 원흉(?)인 네휴레의 정체도 로난이 밝혀야지요. 주인공은 로난입니다. 시작을 로난이 했으면 해결도 로난이 해야지요.
유니란은 로난을 짝사랑하는 역할입니다. 그런데…얘가 왜 이렇게까지 로난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로난은 얘를 맨날 밀어내기만 하는데요. 로난이 원하지도 않는데 따라다니고 희생하고 마지막에 다시 찾아오기까지 하니까 미저리 같습니다…로난이 밀어내도 희생할 수 밖에 없는 애절한 이유 같은 게 있던 걸까요. 로난은 기억 못 하지만 유니란은 로난이나 로난 어머니에게서 받은 도움이나 갚을 은혜가 있었을까요…유니란이 로난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다면 로난 어머니의 죽음이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챈다거나 하는 등 로난에게 마을사람들과는 다른 1人이 되었어야 합니다. 유니란은 로난을 따라갈 땐 언제고 로난이 돌아가라니까 순순히 발길 돌려서 돌아옵니다. 시작은 스토킹(?)이었더라도 로난의 동행이 되어서 서서히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신녀가 유니란에게 미션을 줘서 로난과 동행을 시켰어야 했는데요…로난이 여행 간 동안 마을에서 나름의 서사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유니란에게는 개인의 욕망도 서사도 없어요. 인형 같은 인물은 매력적이기 어렵습니다. 로난은 유니란을 별로 사랑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동굴에서 유니란을 사지에 밀어 넣고 지 혼자 나오네요…그 전까지 로난이‘나쁜 남자’였다면 이 순간 ‘못된 남자’가 되어 버립니다…그리고 유니란을 ‘음지에 두고’ 자기는 왕이 되어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살고 있어요…뭐죠…로난이 유니란 이용해 먹은 건가요…유니란 캐릭터만 잘 잡아도 로난의 캐릭터를 보완하면서 이야기를 힘차게 잘 굴릴 수 있었는데요…
작가가 즐기면서 쓴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신나서 쓰신 것 같아요. 첫 작품은, 특히 장편은 누구에게나 애틋한 아픈 손가락일 겁니다. 작가로서는 로난과 유니란과 다른 인물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잘 할 수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의 장래를 정하고 키워드를 지정하지 않아도 인물들의 캐릭터를 세밀하고 확실하게 잡으면 생동할 겁니다. 인물들을 믿고 맡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