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은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감상

대상작품: 배니싱 트윈 (Vanishing Twin) (작가: 김민주, 작품정보)
리뷰어: JIMOO, 1시간 전, 조회 6

오래전의 일이다. 지인이 죽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한 달 전까지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았는데 말기암 판정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굉장히 성실하고 열심히 살던 그 사람은 계속해서 통증이 있었음에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남보다 통증을 잘 참는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었고 그러다 큰일 난다고 병원에 가보라는 사람들의 말에도 괜찮다는 말을 해오다가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응급실에 실려갔더니 시한부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뉴스에서 떠들어 대는 기간은 섬뜩하게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으며 전세계가 바다에 잠기게 될 것이라는 경고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간 핵무기로 인해 기후 위기 속도보다 더 빠르게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이젠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할 지경이다. 지진과 홍수와 가뭄, 해마다 최고 기온을 갱신해 가는 최악의 폭염으로 전세계가 고통 받고 있으며, 계절의 경계와 추운 나라와 더운 나라라는 국가 간의 기후 경계도 무너져 가고 있다. 온갖 재난과 사건 사고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고, 세계는 여전히 멀쩡하게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말론자가 아닌 사람들도 자꾸만 미래에 대해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래서 인지 <배니싱 트윈>에서 무력감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습관적으로 평범하게 종말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공감이 갔다. <배니싱 트윈>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와닿는 지점들이 많았다. 이야기의 전후 관계를 보면, 전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미스터리한 선박 사고와 인류의 멸망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현서 가족들의 사건이 마치 전조 증상을 보이면서 지옥의 입구가 열려가는 것처럼 의미가 연결되어 간다.

이 모든 시작점은 ‘배니싱 트윈’으로부터였다. 배니싱 트윈은 쌍둥이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흡수하여 산모의 일부가 되거나, 다른 쌍둥이의 일부가 되는 현상이다. 어쩌면 쌍둥이가 둘 다 사라져야 하는 위기에서, ‘햇님’이 사라짐으로, 현서를 지켜낸 것일 수도 있겠다. 현서는 자신의 형제가 사라진 사건을 함께 경험한 당사자임에도 태아였기 때문에 인식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존재를 모르고 살아왔더라도 현서와 하나가 된 ‘햇님’의 존재는 영향을 미쳐왔을 것이다. 쌍둥이가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길 기대해 왔던 부모의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사건이며,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었겠지만, 수많은 죽음과 생명이 교차되고 있는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지나갈 지극히 사소하고 작은 비극이었다.

<배니싱 트윈>의 첫장면에서 외할머니의 죽음은 -1이 되고, 사촌 언니가 낳은 아기는 +1이 되어 세상의 균형이 0이 되는 현상을 의식하게 되면서 현서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와 -가 정확하게 균형을 이룬 것처럼 여겨지는 사건은 우연이었을 뿐이다. 극중 현서가 받아들였던 것과 달리 세상은 그렇게 균형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걸 독자들은 실제 경험을 통해 쉽사리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라져간 죽음들 만큼 생명이 태어날 수는 없다. 누군가의 죽음을 다른 누군가가 태어났다고 해서 충분하게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세상의 균형이란 대체 무엇이고 어떤 형태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은 불균형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일정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면 멸종된 종들이 죽어간 수만큼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종들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무너진 피라미드를 온전하게 유지 시킬 수 있다. 그러나 무너진 자리를 채우려고 하는 성질도 균형을 잡아가는 일이라 할 수 있지만, 밑바닥부터 무너졌기 때문에 그 위에 단단히 쌓아왔던 것들도 다 같이 무너진다면 그것 역시 어떤 의미로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하게 존재해야 하고, 영원히 그럴 것만 같던 세상의 규칙들이 무서운 속도로 무너져 가고 있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에 배니싱 트윈은 아무것도 아닌 ‘작은 사라짐’이다. 개인과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은 세상에 더 큰 형태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일들은 다시 개인적인 형태가 되어 사람을 무너뜨린다. 현서의 가정에 ‘배니싱 트윈’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살아왔듯이, 다른 사람들이 각각의 ‘배니싱 트윈’과 같은 비극을 겪었다 해도 현서는 몰랐을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죽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작은 세계들이 무너지다 보면 결국은 촘촘하게 연결되어서 이루어져 있던 큰 세계도 다 같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배니싱 트윈>은 인류 멸망으로 가는 사건을 현서라는 개인의 관점으로 시작해서, 다시 가족 단위에서 개인의 시점으로 결말을 맺는다. 우리가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은, 재난과 전쟁에 휘말려 죽은 사람들보다 더 나은 존재여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현서는 사라질 수 있거나 태어날 수 있는 두 세계 중 하나였다. 그건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운이 좋아 잠시 비켜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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