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는 공간, 그 어두운 생태계에 대한 비바체 비평

대상작품: 서울과 서울 사이 (작가: 노 랑, 작품정보)
리뷰어: 은이은, 18년 8월, 조회 87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어떤 도시 같아요?”

<서울과 서울 사이>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내달린다. 작품속에 여러 번 등장하는 상황처럼 독자가 멈칫 할 때 잠깐 기다려주는 듯 하다가 다시 달리고 또 달린다. 음악의 빠르기로 치면 경쾌한 ‘비바체’랄까?

서울은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몹쓸 병 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폐쇄된, 갇힌 공간이다.  그리고 그 서식지 안에서 칼이 든 뒷주머니를 연신 확인하며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를 거꾸러뜨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쓰러지게 될 것인가? 그 어두운 생태계에 발을 붙인 존재들이 맞닥드려야 하는 ‘내부규정’이자 ‘제 1의 원칙’이다. 소셜미디어 생방송을 통해 영혼의 그림자들을 파는 사람들 또한 목적은 단 하나, 생존이다.

작가는 묻고 또 묻는다. 그 갇힌 어두운 생태계에서 ‘순수함’이란 도대체 어떤 쓰임이 있는 단어인가? 그 순수함이 ‘가식’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매우 ‘불온한 무엇’이 아니란 말인가?  자기 여자친구를 죽게 만들고 소설 속 주인공 또한 위험에 빠뜨린 순수. 결국 스스로를 죽음으로 이끈 절망적인 질병.

좀비물인데, 전염병이 돌았던 이유도 전염병의 실체도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서울에는 인구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라는 증명되지 않은 혹자의 음모론이 등장했을 뿐이다. 온 몸으로 살인의 희열을 느꼈던, 그리고 증세의 일부를 갖고 있다고 추정됐던 주인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복구된 서울의 거리를 활보한다.

달라진 서울, 새롭게 복구된 서울은 그 ‘순수남’이 만들어놓았던 설계도를 따라 건축되었다. 참으로 부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시의 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작가는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그렸었거나 그림을 그리려 했던 사람이라고 나는 추정한다. 짧은 문장들을 이어 그려낸 세계의 디테일이 잡힐 듯 하다.

소설은 주인공들의 개인사를 들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비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에 현실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 얼개와 템포가 종종 헐거워진다는 점은 약점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약점은 ‘작가의 말’에 나와있는 대로 조금만 손을 본다면 해결될 일이다.  ( 반면 참담하게도 ‘비공개’로 돌려놓은 <푸른그림자>라는 내 장편은 과연 고치면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손을 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

노 랑 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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