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의 리뷰도 좋지만, 역시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깊게 박히는 건 100자평이라고 생각한다. 시구 몇 줄 기억하고 다니는 사람은 있어도 장문의 글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보기 어렵지 않은가. 어쨌든 내가 내 리뷰를 다시 읽어도 장문 보다는 단문이 편하다.
실제로 100자 안쪽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딱 떠오르는 만큼만 써본다. 나중에 장문의 리뷰로 발전할 수도 있고.
베렛 작가는 브릿g에서 알게 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베렛 작가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딱 하나를 꼽자면 역시 ‘글의 호흡’이다. 혹은 ‘글의 간결함’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뻔한 이야기라도 기분 좋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글의 호흡, 리듬. 미니멀리즘. 호시 신이치가 떠오르는, 단문이면서도 풍부한 문장. 각 작품마다 편차치는 있지만, 딱 필요한 만큼만 효과적으로 이야기하고 끝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보고나서 손해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나 더 꼽자면 꾸준히 호러, 스릴러 계열의 글만 쓴다는 점이다. 이 장르 저 장르 이런 스타일 저런 스타일 다 쓰는 작가보다는 수십 작품을 쓰면서도 한 가지 계열의 장르만을 꾸준히 파고들며 한 장르의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들을 볼 때 개인적으로 선망하는 감정이 샘솟는다.
서문이 길었다. 아래는, 재밌게 봤던 순서대로 각 작품에 대한 단평이다.
1.지우개 패러독스-호시 신이치 풍 클라인의 항아리. 베렛 작가는 SF소재에 미스터리를 섞는 게 가장 상성에 잘 맞는 듯하다. 소재 자체의 기발함과 호러, 스릴러에 대한 기본기가 시너지를 일으킨다.
2.한 밤중에 전화벨이 울리고-컨피던스 트릭으로 입문했지만 작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이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이 한 편에 작가의 재능과 실력이 거의 다 집약되어 있다.
3.컨피던스 트릭-다른 작품들은 거의 다 끝이 예상되는 데에 반해 이 작품은 전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작가의 작품 중 처음으로 읽어서 그런가?
4.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강아지-위의 한 밤중에…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작품. 여기서 처음으로 작가가 SF도 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술발전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에 충실한 작품.
5.생지옥-어떻게 끝날지 알고 하는 게임. 딱 이 시대에 나올 수 있는 미래시대를 겨냥한 괴담. 한 가지 의문이었던 점은 범인의 목적은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인데, 분량이 더 늘어나지 않으면서 그 의문점에 대한 설명까지 해냈다면 더 좋았을 듯. 나와 그녀의…와 같이 기술발전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에 충실한 작품.
6.원숭이 사물함-주인공이 욕망에 충실하기만 해도 이렇게나 몰입하기 좋다.
7.현관문이 열려 있다-현관문이 열려있다는 소재는 정말 잘 잡았다. 소재를 캐치하는 것에서부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호흡까지 예술이다. 근데 다 좋은데 결말에서 좀 더 예상 밖의 전개를 바라게 된다. 순위를 더 올리고 싶은데, 초반에 기대하게 만들었던 것에 비해 후반부의 낙차가 커서 낮게 선정했다.
8.증인석에 선 개-음, 결말이 아쉽다. 이왕 스릴러 노선을 택하지 않을 거였으면 좀 더 소재의 다양성을 살리는 방향이 좋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개가 사람 나이로 치면 100살 가까운 노인이라 어른 노릇하려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뭐가 됐건 후반부는 더 써야할 듯. 미완성작 느낌.
9.봉사 페티시-굳이 봉사 페티시라는 소재가 아니었어도 가능한, 많이 봤던 패턴의 이야기라 아쉽다. 컨피던스 트릭 쪽으로 노선을 잡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타주의는 이기주의의 한 갈래라는 말이 있는데, 소재로 삼아보고 싶었던 거라서 이 작품이 더 잘 해줬으면 참고가 됐을 듯. 아쉽다.
10.토킹 어바웃-가장 분량이 긴 작품인데 가장 아쉬웠다.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