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어떤 명칭이 있는 지는 잘 기억 안 나는데, 편의상 이름 지어보자면 ‘마조히즘물’, ‘마조물’이라 부를 수 있는 계열의 작품들이 있다. 약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주인공을 괴롭히는 데에 지면을 소비하는 장르다. 대표작을 꼽자면 ‘가축인 야프’가 있다. 먼 미래를 배경으로, 백인 여성이 최상위 지배층이고 황인 남성이 최하층 가축인(간단히 말하자면 노예)인 시대를 그린 SF소설이다. 충격적인 건 이 소설은 황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평등을 실천하자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황인들은 교육도 받고 있고 나름대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잘 생기고 아이큐도 180이 넘는 높은 지성의 황인 남성을 골라 팔다리를 자르고 거세를 하는 등의 인체개조와 인성개조를 통해 가구나 도구, 애완동물 따위로 만들고, 황인 여성은 대리 출산 기술을 통해 백인 여성의 임신노예가 되는데 모두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소설은 야프가 어떤 식으로 생산되는 지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묘사를 할 뿐이다.
오로지 가학성에만 중점을 뒀다는 것 외에는 디스토피아 문학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쟈마찐의 ‘우리들’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느낌은 가축인 야프가 전하는 느낌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은가?
#Me Too도 의식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범주를 나눠보자면 그런 마조히즘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다. [외계 생물의 침공으로 세상 모든 남자들의 성욕과 성취욕이 사라져 버린 시대.]지만 외계 생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 세계에서 가학성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것은 인간대 인간이며, 어떠한 구원도 없다. 이야기는 그저 조금의 반발심을 가졌던 주인공이 그 반발심마저 꺾여버리는, 순응의 과정이다. 취향에 안 맞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떤 승리도 극복도 존재하지 않는 작품이니까. 소위 ‘갑질물’이나 ‘사이다물’이라 불리는 경향의 전개가 유행하는 시대다보니 인기를 끌기는 힘들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점이 좀 아쉽달까, 안타깝달까. 사실 이런 장르가 주류였던 적은 없으니까 별 수 없는 일이다. 작품 내용적으로는 주인공에게 압박을 가하는 대상으로 1984 등 기존의 디스토피아물처럼 ‘사회의 시스템’이 아니라, 주로 부장과 부인을 중심으로 한 ‘개인’에 집중한 면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장르가 추리, 스릴러이니 당연한 포지션이긴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둘은 상성이 안 맞는 다는 걸 이 작품을 보면서 깨달았다. 1984 등을 의식해서 일부러 반대 포지션으로 써본 거라면 의미있는 실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