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지 않으려하고 빼앗기지 않으려 하던 것이 언제 바뀌었을까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잿빛 하늘의 검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키르난, 18년 7월, 조회 145

『잿빛 하늘의 검』은 작품 소개에서부터 여성 중심 로맨스 판타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성 등장인물이 많습니다. 체감만은 아닐 것이고, 여성 등장인물의 지위도 매우 다양합니다. 아직은 남자가 더 권력을 쥐고 있는 세계지만 천천히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변화하고 있음은 읽으면서 매번 확인하게 됩니다.

 

아마 트위터 계정을 통해 들어왔다가, 조아라와 동시 연재중이고 여성 중심 로판인데다 의붓누나와 의붓동생이라는 점에 슬며시 홀려서 보았을 겁니다.

 

1부 서장이라는 프롤로그는 매우 강렬합니다. 아마도 산악지대, 그 꼭대기에서 여자가 말합니다.

“전부 너의 것이다.”

그러자 남자는 요동치는 여러 감정을 그대로 담아 대답합니다

“나의 것은 곧 누님의 것이라.”

소개글에도 나와 있는 그 대사입니다. 프롤로그가 강렬하다보니 다음편 넘어가기도 쉬운데, 현재 30화까지 올라와 있고 저 프롤로그는 본편보다 훨씬 뒤의 일입니다. 나머지 29화에서 겪은 것을 보면 프롤로그의 대화는 얼마 머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아직은 먼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제쯤 나올지는 한참 더 두고봐야 할 듯합니다. 그도 그런게,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저 남녀는 2화, 그러니까 실질적인 첫 이야기에서 매우 사이가 안 좋습니다. 견원지간에 가깝더군요.

 

바레타 탈콘은 탈콘 자작의 사망과 함께, 적통인 에르도안 탈콘이 성인이 될 때까지, 딱 5년간 시한부 자작을 맡습니다. 탈콘은 용병의 딸이었던 바레타를 데리고 와서 양녀로 키웠으며 바레타 탈콘이 자작의 친자인지의 이야기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용병인 어머니가 매우 유능했으나 병으로 사망했고, 바레타 자작이 데리고 와서 적통인 에르도안의 대타로서 교육을 받았답니다. 그리고 그 교육이 매우 지독했다는 것도 여러 번 언급됩니다. 하지만 이러 저러한 상황을 보면 바레타는 양녀일뿐이고 혈연 관계는 없는 걸로 보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능력 있는 자를 양자로 삼아 물려 주는 것도 이 세계에서는 종종 있는가 봅니다.

탈콘은 자작가이기는 하나, 자작령임에도 군사적 요충지에 위치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서쪽. 황량하고 소출도 적지만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는 그 자부심만은 다른 영지에 뒤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 위세가 줄었고, 게다가 탈콘 자작이 오랫동안 누워있었던 데다 그 후계자는 또 나이가 어려 입지는 많이 좁습니다. 이름은 남아 있고 그 아래 가신들과 영지민들이 똘똘 뭉쳐 있는 모양새지요.

그리고 그 척박한 땅을 맡은 바레타는 성인이 된지 그리 오래지 않은 여성입니다.

 

가신들이 바레타를 고깝게 보고 밀어 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일단 어린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진짜 주군이 될 에르도안 탈콘과 사이가 좋지 않으며 에르도안 탈콘의 적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작위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이와 성별, 그리고 교육 문제는 가신들의 뇌리에서 사라집니다. 바레타는 내내 자작위를 손아귀에 확 틀어쥐기 위해서는 에르도안을 제거할 필요가 있으나 그것이 지금은 아니며, 성인이 되기 전에 제거하면 되기 때문에 가능한 뒤로 미루고 그 사이에 자작으로서 탄탄히 자리를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척박한 영지에, 산적이 들끓고, 자작의 병 때문에 영지의 여러 일들이 밀려 있습니다. 관리가 덜 되었지요. 바레타는 일단 영지를 단속하고, 산적을 퇴치하며 영지내 여러 일들을 보살핍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에르도안 역시 자신의 눈 안에 둡니다. 일단 영지 내에서 자신이 어렵게 생각하는 안살림을 맡깁니다. 바레타는 비밀리에 교육을 받았기에 사교 영역은 거의 모릅니다. 그러니 그런 일은 에르도안에게 맡기고, 에르도안 역시 투덜거리면서도 일을 곧잘 해냅니다. 거기에 모종의 사태로 에르도안이 반발했을 때 한 번 콧대를 꺾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음. 탈콘이라는 이름은 무력 아래 대동단결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강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이러한 여러 과정들을 거쳐 바레타와 에르도안은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이전에는 형제가 아니라 철천지 원수로 보이더니 이제는 제법 업무 파트너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에르도안은 점차 누님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생각하지만, 바레타는 여전히 에르도안을 죽일 그 날을 고대하고 있으니 1부 서장의 그 장면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특히 단검에 얽힌 이야기는 바레타의 설명을 읽으면서 희한하다 싶었는데, 그 자체가 함정이었습니다. 댓글로는 내용폭로가 될까봐 넘겼지만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줄거리는 이렇고, 세부를 들여다보면 또 재미있습니다. 여성 중심 로판이라 직업활동하는 여성들이 매우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남성이 더 권력을 잡은 걸로 보이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도 꽤 많습니다. 물론 탈콘이 척박한 땅이라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사단에도 여성이 여럿 있습니다. 대놓고, 탈콘 기사단의 상위 셋은 다 여성입니다. 그리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여성 용병도 있고요. 바레타 자신도 상당한 실력자입니다. 자신을 얕보던 기사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정도로요. 물론 피는 좀 봤지만 그래서 기사단의 마음을 손헤 넣는 것이 가능했을 겁니다.

또한 바레타는 본인이 여성이기 때문에 더 편하다며 자신의 비서 등도 여성으로 들입니다. 성 안에서 잡일을 하던 사람들을 눈여겨 보았다가, 그 중 일을 맡겨도 잘 할 것 같은 이들을 바로바로 끌어 올립니다. 사람 보는 눈도 리더의 요건이지요. 그런 점에서 바레타의 눈은 매우 좋습니다. 용병에게 재갈 혹은 족쇄를 채웠다지만 일단은 마음은 얻었고, 그 실력도 얻은 셈입니다. 눈썰미가 좋고 기억력과 관찰력이 좋은 이를 추천 받아서는 써보고, 그리고 중요한 작전에 투입시킵니다. 그리고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한 그 사람은 또한 특채가 됩니다. 이렇게 바레타 한 사람을 통해서 여성들은 차츰 위로 올라갑니다. 먼저 올라간 바레타가 줄사다리를 걸어 놓았다고 해도 틀리진 않을 겁니다. 그 사다리를 잡고, 여성들이 조금씩 올라오는, 그래서 그 능력을 인정 받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지켜보고 있다고 한 그 할머니의 말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을지라도 그 모습을 보는 이들에게는 희열을, 그리고 기대감을 주니까요.

이제 1부 2장이니 아직 갈 길은 멀어보입니다. 영지가 조금 안정되었다 싶으니 외부에서 또 사단이 나네요. 그 걸 넘었더니 다음은 사교 행사가 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잘 헤쳐나갈 것이라 믿고, 다음편 기다립니다.:)

 

덧붙임.

바레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다보니 에르도안을 놓쳤습니다. 몇 번 입에서 굴려보고 뭔가 익숙하다 했더니 저 멀리 형제국가의 철권통치 독재자의 이름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보면 에르도안이 참 귀엽습니다. 2장 들어와서 보이는 그 귀여움은 하늘을 뚫을 귀여움이라, 거꾸로 TV에서 그 에르도안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귀엽다.”고 할까 두렵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그런 소리하면 안되겠지요. 입단속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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