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권 판타지 소설의 단점 공모(비평)

대상작품: 석양을 지는 자 (작가: 강령술사, 작품정보)
리뷰어: 비마커, 18년 6월, 조회 293

석양을 지는 자

-완결 작품이다. 총 매수는 200자 원고지 1185매. 책으로 나오면 350쪽 정도일까.

 

나는 기본적으로 단권이나 2권 내외로 끝나는 한국 판타지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판타지 소설들은 소수의 뛰어난 작품을 제외하면 보통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1.외국 판타지 소설 같거나, 2.소위 말하는 양판소스러운, 그러나 짧게 끝나는 작품.

1의 경우는 작가가 글을 잘 쓰냐 못 쓰냐에 따라 다르지만, 굳이 단권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재밌는 글은 찾기 힘들다. 게다가 한국은 단권 판타지 시장이 크지 않다.

2의 경우는 양판소 특유의 긴 분량에서 오는 재미를 못 살리기 때문에 꺼리는 편이다.

요컨대 단권 판타지 소설은,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대부분 장점이 없는 작품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아직 단권 판타지 시장이 작고 역사가 짧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이다. 단권 판타지라는 형식에 대해 아직 많은 논의가 되지 않았으니, 특출한 수작이나 큰 감흥 없는 범작 외에는 나오기 힘든 구조가 되어버렸다.

 

클리셰란 무엇인가? 얼마 전부터 드문드문 그런 의문을 품어왔었다. 클리셰란 것이 무엇인지 감은 잡았지만, 그 성질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 많다.

이를테면 무엇이 좋은 클리셰이고, 무엇이 나쁜 클리셰인가?

이 작품의 5화에 보면, 패트리아스가 육포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왕녀인 패트리아스는, 육포를 맛있게 먹고 나서 이런 고기 맛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고기가 쥐의 고기라는 얘기를 듣고 토한다는 장면이다.

5화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 전에 패트리아스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도 꼽아야 한다. 자신이 속옷차림인 걸 안 후 쉐파호트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나, 옷을 입을 때 쉐파호트에게 눈을 돌리라고 요구하는 장면도 클리셰이다. 그런데 과연 이 두 클리셰는 좋은 클리셰일까?

하나하나 꼽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에는 위의 예시처럼 개그 클리셰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것들이 전혀 웃기지 않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구장창 봐온 시추에이션이니까 웃기도 힘들다. 20년 전부터 봐온 것 같다. 고전영화들을 볼 때도 가끔 비슷한 시추에이션이 나온다.

전혀 웃기지 않는 개그는 좋은 개그일까?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진부함을 피해야 하지만, 때론 독자의 예상과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할 때도 있다. 모순이지만 좋은 글은 대체로 그렇다. 그렇기에 좋은 클리셰와 나쁜 클리셰를 구분하기란 어렵다. 아니, 오히려 좋은 클리셰와 나쁜 클리셰를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지, 본질적으로 클리셰 자체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고 할까.

 

 

시점을 자주 바꾸는 건 이 작품에선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군상극이라고 하긴 애매한 구성이면서 메인 스토리라 할 수 있는 쉐파호트-패트리아스 파트가 너무 단조로워진다. 라면으로 치면 라면사리와 스프를 다른 접시에 담아놓고 하나씩 먹고 있는 느낌이다. 라면 좀 먹다가 싱겁고 기름 때문에 메스껍다 싶으면 시점 바꿔서 스프를 조금 떠먹는 파트 넣어주고, 스프를 먹다가 짜다고 느낄 때 스프 안 넣은 국물 떠먹는 느낌.

같은 이유로 결말부에서 쉐파호트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비중이 큰 점도 아쉽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그래서 쉐파호트 비중이 큰 초중반부보다 결말부가 재밌긴 했지만 결과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주객전도인 감이 있다. 시점을 나누지 않고도 쉐파호트-패트리아스 시점에서 다른 시점에서 나오는 모든 고조감을 다 때려 넣을 수 있으면 더 재밌었을 거라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폴라리스 랩소디나 눈물을 마시는 새에 영향을 받았다고 느껴진다. 같은 이유로 90년대 작품들이 생각난다. 그 시절 작품들을 좋아한다면 취향에 맞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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