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간과한 것들에 대해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수화기 너머의 너에게 (작가: 에린,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18년 5월, 조회 69

이사 갈 예정인 집에 전화를 거니 미래의 내가 받았다. 화자의 입장에서는, 전화가 걸려 와서 받아보니 과거의 내가 건 전화다. 재밌는 설정이다.

개인적으로 ‘현실의 비틀림’을 다룬 소설도, 따뜻한 소설도 둘 다 좋아한다. 당장 생각나는 작가로는 오츠 이치가 이 분야에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컸다.

우선 스토리가 낡았다. 그러나 읽을수록 이 점보다 더 큰 문제점들이 이어졌다.

이 작품은 분명 감성으로 읽어야 할 작품이겠지만, 무감정하다는 말을 들을 걸 감수하고서 작품의 문제점을 꼽아본다.

우선 밝혀두자면, 나는 작품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 편이다. 그저 대체로 가끔씩 한 가지 질문을 던질 뿐이다. 타당한가, 아닌가.

읽으면서 급하게 쓴 건가 생각할 정도로 이 작품은 근본적으로 이상하다.

 

우선 첫 째로, 비트코인을 2017년에 사라고 한 부분이다. 비트코인을 사려면 더 일찍 사야 한다. 진짜로 돈 벌 생각이 있다면 부모님을 설득해서라도 비트코인에 투자를 해야 한다. 2017년이 아니라 몇 년 앞서 몇 만원만 꽂아둬도 되는 걸 2017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부모님 돈이 아니라 자기가 번 돈을 쓰고 싶다고 해도 시간대가 맞지 않다. 전화 받을 당시 화자가 스물 둘이고, 2005년에는 9살이므로 현재 시간대는 2018년이다. 나이를 만으로 따진 건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늦어도 2016년에는 성인이 된다. 단순히 나이를 잘못 계산한 걸까? 주인공의 나이를 21살로 고치면 해결될까? 2017년에 스무 살이고, 2017년부터 비트코인 투자를 위한 알바를 시작한다고 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2017년 6월까지 일을 해 자금을 모아두었다 쳐도, 2017년은 비트코인 끝물이다. 주인공이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지 않으면 언제 들어가야 할지, 언제 빠져야 할지 과거의 나는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알바로 번 돈을 다 쏟아붓더라도 단타 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큰돈을 벌 수 있을까? 비트코인으로 푼돈이나 벌라고 얘기를 꺼낸 건 아닐 테니 2017년을 꼽은 건 비합리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소설의 배경은 평행세계로, 비트코인 시장이 2017년 6월쯤에 시작해서 2017년 말에 폭락한다는 설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설정은 너무 거추장스런 설정이다.

 

두 번째는 타임 패러독스 문제다.

이 작품에서는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주인공은 타임 패러독스에 대해 걱정하지도 않는다.

‘워낙 영화를 좋아하는’ 의진이라면, 게다가 ‘유명하지도 않은 영화까지도 전부 섭렵’하는 사람이라면 타임 패러독스에 대해, 적어도 나를 포함한 이 작품의 독자들만큼의 지식은 있어야 한다.

타임리프물을 몇 편 본 독자들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타임리프물은 반은 희극이고 반은 비극이다. ‘과거를 바꾸고 잘 살았습니다.’와 ‘비틀린 세계선에 휘말린 존재의 소멸.’이 모두 다뤄지는 장르다. 이 작품에서 예를 들자면,

1.비트코인을 사지 않은 주인공.

2.전화를 받아 비트코인을 산 주인공.

이 둘로 나뉘게 된다고 치자. 그럼 확률적으로 이런 가정도 가능하다. ‘비트코인으로 큰돈을 번 주인공은 독립해서 다른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 이렇게 된다면 9살 주인공은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 수가 없게 된다. 전화를 걸 수 없기 때문에 조언도 받을 수 없다. 조언을 받지 못하면 비트코인을 사게 되는 인과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트코인을 사지 않게 된다. 두 번째 이사도 가지 않는다. 전화를 받는다. 비트코인을 산다…….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과거를 바꾼다는 것은 수많은 픽션에서 다뤄졌듯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이를테면 비트코인으로 큰돈을 번 주인공이 스포츠카를 사서 운전하다 22살에 죽는다. 이런 상황도 가능하다.

주인공은 왜 타임 패러독스가 일어날 걸 걱정하지 않고 조언을 해준 걸까? 물론 별다른 위험 없이 모든 게 좋게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다. 주인공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에 시달려, 어차피 자살할 생각이기라도 했던가? 그렇다면 이런 목숨을 건 도박을 해볼 만하다. 그러나 주인공의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

 

정리하자면,

개연성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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