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계약서를 연장하는 방법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되지 않는다 (작가: 리러하, 작품정보)
리뷰어: 키르난, 18년 5월, 조회 168

14화까지 단숨에 읽고, 리뷰 쓰기를 위해 다시 한 번 14화를 열어 놓고 보면서 제목을 읽으니, “네, 만기되지 않습니다.”라는 답변이 튀어 나옵니다. 그리하여 저 역시 소설 제목에 맞춰 리뷰 제목을 달아봅니다. 악마의 계약서를 연장하는 방법. 정확히는 재계약 방법이지만 실현 가능한지는 본인이 소설 주인공이냐 아니냐에 따라 갈릴 겁니다. 소설 중니공이 아니라면 포기하세요. 이 소설에 등장한 다른 조연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악마의 계약서라고 하여 뭔가 좋지 않은 것을 떠올리실 분들이 있겠지만, 아닙니다. 이건 그런 종류의 계약서가 아닙니다. 초기의 계약서는 대한민국의 적법한 절차를 밟아 작성된 임대차 계약서였습니다. 과거형으로 쓰는 것은 그 뒷 이야기가 내용 폭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짧게 줄이지요.

 

14화까지 각 편마다 부제가 달려 있고 그 부제들은 각 편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합니다. 그렇다고 소설의 내용 폭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굴곡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하되, 그 굴곡은 읽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각 편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그 안에서도 제목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완결소설을 두루 역주행하다가 슬쩍 잡아본 것이 이 소설입니다. 작품 소개를 보면 로맨스와 추리/스릴러, 거기에 태그에 로맨스릴러가 들어갑니다. 생각해보면 로맨스릴러도 그렇지만 어반판타지에도 부합합니다. 서울의 어느 달동네쯤,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오래된 집에 악마가 세입자로 들어온다는 내용이니까요. 정확히는 소개글에 나온 것처럼 ‘지옥 리모델링기간동안 신세’를 지는 겁니다. 지옥을 수리하려다보니 공간이 부족해서 잠시 잘 안나가는 집에 세를 들어온 거라니까요.

 

세입자인 악마는 머리의 뿔만 제외하면 잘생긴 청년입니다. 키도 크고 호감형이며 잘생겼습니다. 그럼에도 악마라는 점과, 집 여기저기에 열린 지옥문을 관리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꼬리를 말고 어딘가 숨고 싶습니다. 없는 꼬리도 말게 만드는 그런 인물인 겁니다.

주인공인 ‘나’는 학교를 휴학하고 닭갈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법니다. 나와 관련된 주변 상황들은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차츰차츰 밝혀지지만 1화와 소설 초반의 모습을 보면 세입자가 들어오려 하지 않는 매우 낡은 저택 같은 주택에서 할머니와 둘이 삽니다. 그 외의 가족은 없으며 아르바이트를 다녀오면 시간이 매우 늦고 할머니께 야단 맞는 장면이 몇 번 등장합니다.

할머니는 연세도 있고 하여 최근 건망증이나 기억력 감퇴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할머니의 건강과 할머니의 아들, 그리고 저녁 장사를 하는 닭갈비집의 여러 상황은 일상을 담당한다면 거기에 악마의 이야기는 비일상을 담당합니다. 내가 악마와 겪는 여러 일들, 특히 미숫가루 사건 같은 건 일상적일 수 있지만 내가 겪었던 적은 없던 일이라는 점에서 주인공에게는 비일상이거든요. 사소한 일들의 상당수는 할머니와 살면서 꽤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일들이기에 더욱 비일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호의도 악마이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고통과 눈물을 달게 받아 들이는 악마를, 과연 연애 대상으로 볼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스릴러이기도 한 겁니다.

 

이야기가 스릴러가 되는 또 다른 축은 내 주변에서 얼쩡 거리는 낯선 남자입니다. 정체는 짐작하고 있고 그 뒤에 협박도 받아 보았고, 왜 그러는지도 압니다. 하지만 그러한 협박만으로 이 사람을 잡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공권력을 요청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요. 그러한 위기감은 소설 끝무렵에서 폭발합니다.

제목의 이유는 14화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던 사실.

어.. 『너의 이름은』도 아닌데 왜 이름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거죠. 그 장면을 읽고서야 두 사람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뭐, 어찌되었든 스릴러는 끝났고 로맨스가 시작되었으니 좋습니다. 물론 악마때문에라도 또 다른 스릴러가 계속될 위험은 남아 있지만, 원래 삶은 그런 스릴도 양념처럼 있어야 하니까요. 게다가 악마 때문에 온 스릴러는 결국 악마가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란 무책임한 믿음도 있습니다. 14화의 첫머리, “이 집은 텅 비어버렸다.”의 뒤에는 아마도 내 마음도 공허해졌다는 이야기가 숨어 있겠지만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맨 마지막에 오고, 또 그 중요한 것은 잘 얻어냈으니까요. 그리고 악마의 계약서 연장 방법도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마지막의 그 장면 때문에 더더욱 달달한 소설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소설 후반에 검은 정장을 입고 찾아 온 악마와, 이 마지막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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