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세계를 헤매는 복제인간 앨리스 공모(비평)

대상작품: 우리들은 언제나 섬에 살았다 (작가: 샤유, 작품정보)
리뷰어: 비마커, 18년 5월, 조회 42

작품 소개는 이렇다.

[나노머신으로 인해 특이점이 온 세계,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시연에게 그녀의 복제인간이 찾아온다.]

‘나노머신’, ‘특이점이 온 세계’ 이 두 가지 키워드에 전부터 관심이 있어 읽게 되었다.

 

읽으며 우선, 도입부를 주인공의 ‘일상~비일상과의 조우’로 놓고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지 과거 이야기를 서술하는 전개를 차용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방식은 굉장히 잘 쓸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을 설명하다가 잠시 끊고 과거 얘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이미 조롱거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최악의 소설 도입부 모음’이라는 글에서 볼 수 있다. 정확히는 3번 항목. 릭앤모티 ‘Look Who’s Purging Now’ 에피소드에서도 나온 걸 보면 한국 양판소만의 문제는 아닌 듯).

사람들은 왜 이런 도입부를 최악의 도입부 중 하나로 꼽을까?

 

보통 이에 대한 답은 독자는 다음 내용을 보고 싶어 하지, 과거 설명을 듣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개의 작법서에서 말하는 ‘재밌는 글의 법칙’에 반하는 전개이다.

 

1.이야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시간 순서를 꼬아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면 안 된다.

 

이에 따르자면 사실 과거 설명(이 작품으로 치자면 보험과 나노머신)은 소설의 가장 앞부분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작법서를 들먹일 것도 없이 아주 지당한 법칙이 있다.

 

2.도입부부터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사로잡으면 좋다).

 

이에 근거해 판단하자면, ‘현재이야기->과거이야기’ 구조는 굳이 과거이야기를 뒤로 미룰 만큼 현재이야기가 더 독자를 사로잡기 좋은(단적으로 말해 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렇듯 논리적인 이유로 저런 구성이 되었지만, 결론적으로 현재->과거 전개는 악수다.

결론은,

현재->과거 = 재밌는 이야기->재미없는 이야기.

이기 때문이고, 독자는 ‘재미있는 도입부를 본 후의 기대감을 안은 채’ 다음 내용을 보고 싶어 하지, ‘재미없어서 뒤로 미룬’ 과거 설명은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런 논지에 입각해서 처음부터 큰 실수를 저지르고 간 셈이다. 게다가 이 작품의 과거 얘기는 ‘사소한 과거 에피소드’가 아니라 ‘작품의 배경 설정’이다. 재밌게 들려줄 수도 있었던 설정을 최악의 방법 중 세 번째 방법으로 독자에게 공개했다.

 

***

 

세계관 설명을 끝낸 이후로는 한동안 단조로운 전개가 이어진다.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야기가 단조로우면 나는 이 작품의 초점이 현실에 맞춰져있는 게 아닌지부터 의심한다. 많이 당해봤기 때문이다.

이 스토리의 골자는 간단하다. 이름 붙이자면 ‘정체된 사회와 이방인’ 스토리다.

이를테면 이 작품은 그냥 스토리를 적힌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에 무감각해져있는 사회를 비유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나노머신 시술이 ‘사회가 원하는 여성성을 터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접근이 좀 더 확실시 되는 구절은 이 부분이다.

 

“…전, 우주에 가고 싶었어요.” -444번째 문단

 

시아는 미래에는 자신도 우주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현 인류(시아의 입장에선 미래의 인류)는 우주에 갈 수 없는 게 아니다. 단지 우주로 가지 않는 방향으로 걸어왔을 뿐이다. 즉, 우주란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다. 여성혐오도 그렇다. 합심하기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없앨 수 있다.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보수정권으로 놓고, 시아를 진보주의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찌됐건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의를 궁리하는 방향으로 읽도록 쓴 작품인 듯 하다.

사족. 제목이 ‘우리들은 언제나 섬에 살았다’인데, 우주를 바다로 비유해 지구가 우주라는 바다의 섬이라는 의미로 지은 듯하다.

 

정리하자면,

단조롭고 심심하다. 그러나 사실 이것이 정체라는 것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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