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짧고 예쁜 본 소설을 읽고 와 주세요!
1. 무엇이든지 파는 남학생
주인공은 저걸 왜 믿지 – 라고 생각하면서 삐딱하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글 중간에 몰래카메라!를 외치며 친구들이 튀어나왔어도 놀라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지 파는 남학생”의 존재가 그만큼 재밌는 아이디어인 동시에 개연성있게 납득시키기에는 힘든 이미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의 도입부에는 화자도 독자와 함께 남학생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었어서, 이 애가 꽤나 절박하고 나만큼 비뚤어지게 현실적이지는 않구나, 정도의 생각으로 따라갈 수 있었지만 화자와 함께 남학생을 믿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면 그만’이라는 반신반의의 마음은 사라지고 왜인지 난 이 애가 성적을 파는 게 가능하다는 말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솔직히, 이 애의 은근하게 설득하는 말솜씨엔 넘어가지 않는 게 더욱 힘들 것이다.
남학생이 화자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 수는 있고 그 자체로는 개연성도 충분하지만, 독자는 그 ‘말솜씨’도 확인하지 못했고 판매의 결과를 확인하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아직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확실치 않는 처음 만난 남학생에게 주인공이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함께 할머니를 찾아가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독자가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두 사람의 솔직하고 유쾌한 대화 뿐입니다. 조금 말이 안 될지 몰라도 누구나 학창시절에 꿈꿔본 성적과 공부할 시간을 구매하는 것. 마찬가지로 찾기 힘들지만 흔히 원해본 적 있을 달달한 직진 썸. 남학생이 정말로 무엇이든지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님은 확실히 독자들의 로망을 건네주시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빈 교실과 병원
글은 주인공과 남학생이 병원에 찾아가면서 분위기가 전환됩니다. ‘빈 교실, 방과 후’의 고요하고 신비로운 공간에서, 간호사와 할머니를 만나고 꽤 왁자지껄한 대화를 하게 되는 외부 공간으로의 이동입니다. 주인공과 남학생의 관계가 변하는 지점이기도 하고, 좀 거칠게 나누자면 판타지가 로맨스로 바뀌는 지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스토리상 전환은 매끄러웠습니다. 강한울 쟤 저거 유정이를 너무 들었다 놨다 하네 얘네 좀 봐라 하면서 몰입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로맨스 스토리였습니다. 하지만 판타지로 시작한 이상, 그 요소가 좀 더 이어져갔으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친구 자격, 애인 자격을 사고 파는 것에 대해 대화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무엇이든지 파는 남학생’이라는 소재에 대한 탐구라기보다는 만담이니까요. 첨부된 영수증을 봐도, 영어점수 10점을 제외하면 두 사람은 결국 초현실적인 거래는 더 이상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글의 도입부와 전반부에 공을 들여 구성하고 독자에게 설명한 힘을 생각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즐겁게 읽은 단편이었습니다. 한울이와 유정이의 이야기로 시트콤처럼 짤막하고 유쾌한 – 슬픈 결말은 예정되어 있지만 – 옴니버스로 ‘무엇이든지 파는 남학생’이라는 소재를 계속 만나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주저리) 전 사실 아직 한울이가 유정이에게 작업을 걸려고 판을 크게 벌린 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오랜 짝사랑! 성적표는 조작! 소꿉친구 매수! 유정이가 진실을 밝혀낼 쯤에는 이미 폴 인 러브! 죄송해요.
주저리2) 한울이가 파는 것의 가격은 본인이 정할 수 있는 모양이니 자신의 수명을 할머니에게 무료로 팔 수 도 있었겠지요. 걱정과 다르게 할머니께서 유정이가 대학에 합격하는 것 까지 보고 돌아가신 건, 한울이가 무언가 손을 썼기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