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는 누구인가?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연출자X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도련, 18년 5월, 조회 103

* 저는 기본적으로 작품의 스포일러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먼저 밑의 링크로 가서 작품을 읽고 와 주세요. 저는 친절해지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저의 이 끝없는 노력을 무시하지 말아주시고, 부디.*

 

 

1.

액션!

 

2.

<연출자X>라는 제목을 보고, 저는 내용을 도무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작품을 다 읽고나니 반드시 리뷰를 쓸 때 “액션!”이라는 말로 글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3.

하민은 유치원 보조교사이자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남자입니다.

어느 날, 사랑하는 연인 김성미를 두근두근 기다리는 그의 앞에 최승현이라는 남자가 나타납니다.

한 손에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 김성미는 살인범이다! 그러니 증거를 가져오쇼, 내가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겠소!”라는 말을, 한 손에는 4천만 원 가량의 5 리비코인을 들고요.

하민은 일단 돈을 받았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성미는 살인범이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미는 이렇게 예쁘고, 마음씨 곱고, ‘하루’라는 이름의 유명 유튜버인 건 뭐 그렇다 쳐도 인터넷에 동요와 동화를 올리는 사람이고… 에에잇, 아무튼 성미는 살인범일 리 없어! 그럴 리 없다 천부당만부당!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요?

제가 태그에 ‘로맨스릴러’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4.

여기서부터는 제가 기본적으로 스포일러를 가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원래 작품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이거 정말 재미있었어! 꺄악꺄악!” 이러면서 리뷰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요약 정리할 수 있겠네요. 물론 그 반대도 있고, 아예 “내 머리가 나빠 잘 모르겠다만 이거 만든 사람이 나와 전생에 원수를 졌다는 사실은 매우 잘 알겠다. 남은 것은 사자와도 같은 분노의 함성!” 이러면서 리뷰 쓸 때도 많지만… 하나 확실한 사실은, ‘작품을 아예 읽지 않은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이 작품은 좋고 이 작품은 아니라고 두리뭉실 안내하기 위해서’ 리뷰를 쓴 적은 거의 없다는 게 아닐까요. 제 리뷰를 읽고 무슨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처음부터 저는 작품을 읽고 느낀 바를 수다떨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요.

애초에 리뷰 시작하기 전에 저의 친절함을 어필하기도 했겠다, 이 작품을 다 보셨으리라 믿고 스포일러를 전혀 가리지 않은 채로 나머지 글을 씁니다.

 

5.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아프리카에서 생방송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그걸 저에게 물으신다면 물론 대답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 왜 볼까요?”밖에 나오지 않겠죠.

저도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다음의 카테고리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1) 좋아하는 가수나 음악가, 밴드

2) 직업이나 취미 관련 (예: 포토샵 테크닉 강좌, 누드 크로키 강좌, 예전에 그리다 만 만화의 주인공이 메이크업 아티스트여서 구독해 놓았다가 삭제를 잊은 몇몇 뷰티 유튜버 등)

3) 잠을 제대로 못 자기 시작하면 병원에 가야 하는 지병 때문에 구독하기 시작한 ASMR

4) 애니메이션 채널이나 영화 예고편 채널

최근 생각많은 둘째언니 같은 분을 구독하기 시작한 게 그나마 큰 변화라고 해야 할까요.

유명 BJ에게 왜 사람들이 별풍선을 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죠. 제가 제일 열과 성을 다해 돌려보는 유튜버 영상이라고 해 보았자 고작해야 슬라임이나 얼린 알로에 자르는 영상이고 그것도 소리를 듣기 위해 돌리는 것인데, 돈가스를 앉은 자리에서 냠냠 몇십 접시 먹어치운다거나 앙기모띠 같은 이상한 유행어를 지껄인다거나… 왜 보는지 모르겠고 매우 피곤해요. 그저 필요한 정보를 얻고 싶을 뿐인데 쓸데없는 영상과 함께 잡담을 몇 분이고 들어야 한다니, 이상해요. 낯설어요.

그러나 이런 저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으니.

저 같은 사람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세상은 점점 영상으로 이동할 거예요. 그건 확실해요.

얼마 전에 사촌오빠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외국에는 자신의 집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침실 같은 곳은 유료로 풀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이 ‘아니… 남의 사생활을 굳이 볼 필요가 있을까요?’였지만, 사촌오빠가 그 웹사이트를 즐겨찾기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약간 궁금해졌어요.

자기 삶을 연출하고 파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요?

 

6.

성미가 ‘하루’라는 이름의 유튜버인 것은 우연이 아니에요.

사실 이 작품에서 연출자가 아닌 사람은 불쌍하게도 주인공인 하민밖에 없지요.

나머지는 각자 제 나름대로 성실하게 삶을 연출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최승현은 온갖 가짜 신분증으로 자신의 삶을 위조해가며 성미의 삶을 차곡차곡 스토킹했죠.

탐정 양시만은 추리대결이니 뭐니 웃기는 소리를 하며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의 삶을 극적으로 꾸미고자 했고요.

성미의 인생을 망가뜨렸다면 망가뜨렸을 ‘연출자X’인 인질범은 대놓고 연출자입니다.

물론 그 중 진정한 연출가는 성미이지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참 멍했습니다. 아마도 결말의 하민과 비슷한 기분이었을 거예요.

아니, 그것보다 이 사람들은 대체 자기 삶을 연출하는 데 어느 정도까지 집착하는 거야?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결말을 보고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성미 씨.

아니, ‘하루’ 언니라고 불러야 할까요?

굳이 공들여 이야기를 꾸며내고 연출을 생각해낼 정도로, 어린 시절 단 한 번 봤을 뿐인 하민이가 그렇게 좋았어요?

그 감정의 어디부터 진심이고, 어디부터 연출인가요?

 

7.

사람은 누구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싶어한다고 생각해요.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겠죠.

“사람은 누구나 관종이야.”

관심을 받으려면,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보다 실력이 매우 특출나면 자연히 가능하겠죠. 그렇지만 거기에 약간의 연출이 들어가면 더 쉬울 거예요.

무엇이든 좋아요. 원래부터 타고난 그 모습 그대로 반짝반짝 주목받는,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자신의 실제 모습과 다른 모습을 조금씩 연기할 거예요. 각종 SNS가 활발해지고 어떤 식으로든 연출이 필수인 이 시대에 완전히 안 겪었을 리는 없으니, 제가 매우 싫어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떠오르는 모습이 몇몇 있네요. 아마 저도 인생을 살아가며 제 인생을 연출하고 있겠죠.

약간의 과장, 허풍, 거짓말, 농담, 자기연민, 자기애……

중요한 것은 역시 본모습을 얼마나 완벽히 감추고 다른 사람을 속이느냐, 이것이 아닐까요.

얼마 전 학원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왜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올라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대충 이런 대답이 돌아왔어요.

“저 그거 삭제했어요. 다른 사람이 잘나가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자존심 상하고 나는 여기서 뭐하나 싶더라고요.”

아니…… 다른 사람과 비교할 거면 SNS를 왜 해?

그것보다, SNS 보고 그럴 정도면 기본적인 사고방식 자체에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게 깔려있다는 이야기인데, 그거 너무 피곤하지 않니?

이게 제 솔직한 심정이었고요.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중요할 수도 있겠죠. 그러니 더 사적인 공간에서 더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성미는 과연 하민을 사랑하기는 할까요?

흠, 저는 역시 모르겠어요.

장르가 일단 로맨스릴러니까 하민을 사랑할지도 모르지만, 주인공은 하민이고 성미는 하민의 눈에나 마음씨 곱고 예쁜 여자이지 저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속을 알 수 없는 존재였는 걸요. 아마 스스로는 하민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고, 적어도 그렇게 스스로를 연출하고 있겠죠. 하지만 누가 알겠어요?

 

8.

웃기게도, 저는 처음부터 성미를 믿지 않았어요. 너무 수상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니까요.

저는 치즈 인 더 트랩도 중도포기하고 다 읽지 않은 몸이에요. 하필이면 남자 주인공인 유정 선배가 제 눈에는 더없이 이상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거든요. 아무리 얼굴이 잘생기고 겉으로는 멀끔해도 그렇지! 홍설이 담배 꽁초를 주워 피는데 그것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부터 저는 “도망쳐, 홍설! 이 만화의 주인공에서 벗어나!”라고 외친 뒤 벌벌 떨면서 유정 선배가 무서워서 치인트 못 본다는 말을 주위에 연사하고 다녔는 걸요.

게다가 저는 원래 로맨스 독자도 아닙니다.

관심이 없는 장르가 있고 혐오하는 장르가 있다 친다면 저는 로맨스를 혐오하는 사람이에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으니까요. 제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건 우습게도 다 호러였어요. 어머니가 여자애들이 보는 거라고 할리퀸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던져주셨을 때 의무감으로 그것을 읽으면서 얼마나 싫어했는지 몰라요.

일본 소죠 망가나 레이디스 코믹이나 한국 순정 만화를 읽을 때도, 남들은 눈을 부릅뜨고 보는 로맨스 장면에서 저는 팔랑팔랑 실눈을 뜨며 책장을 빨리 넘겼어요. 좀 웃기지요. 다른 사람은 실눈을 뜨고 넘기는 호러 만화를 저는 눈을 부릅뜨고 샅샅이 살피며 읽었으니까요. 드라마에서 사랑 이야기가 나올 때도 으 싫어… 가 기본 자세였어요. 심지어 그 유명한 가을동화조차도 주인공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안타깝고 아름다운 사랑 뭐 이런 것이 아니라 원빈이 스타가 되어가는 과정과 함께 ‘예쁜 여자가 희귀병에 걸려 죽어가는’ 그 부분만 신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으, 정말 사람이 못되먹었어요!

이런 사람은 언젠가 장르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작품을 만나지 못했네요!

그러니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이 이야기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로맨스릴러 태그를 달고 올라오는 모든 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겠죠.

다만, ‘연출자X’라는 제목과, 끝까지 자신의 삶을 연출해나가는 등장인물의 면모에서 여러 가지를 느꼈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깁니다.

 

그럼 저는 이만 총총.

 

9.

마지막으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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