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뛰기를 한다는 것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걸 밋 보이 후 셀 애니띵 (작가: 반도,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8년 5월, 조회 82

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참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입니다. 여기서도 그렇고 현지에서도 그렇습니다. 그가 두 번이나 ‘아쿠타가와 상’의 후보에 올랐음에도 결국 수상하지 못한 것을 두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오에 겐자부로가 ‘이런 번역투 못봐주겠구만’ 같은 말을 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지요. 사실 저는 지난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가즈오 이시구로가 선정된 것을 두고 ‘일본 친구들 이제 하루키 추천 좀 그만 해라!’하고 스웨디시 아카데미에서 돌려까기 한 게 아닐까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아, 물론 저 개인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의 작품 몇 개는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군대에서 김훈의 저작들과 함께 제가 몇 번이나 읽은 작품이고, 그의 자전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면서 ‘작가의 마음가짐’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해변의 카프카>는 재미가 없어서 다 못 읽었는데, <다자키 쓰쿠루와…>는 재미가 없는데도 끝까지 읽어버렸습니다. 한 사람의 저작이 이렇게 일관되지 못하고 널을 뛴다는 건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다양한 이야기를 시도하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 안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입니다.

 

이야기가 멀리 돌아왔습니다. 이 작품 <걸 밋 보이 후 셀 애니띵>은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저는 읽으면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느꼈습니다. 그 찝찝함이라 함은 바로 ‘멀리뛰기를 한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제가 앞서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은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 문단 내에서 독보적으로 멀리뛰기를 잘 하는 작가이다

라고 누가 평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정확히 누가 정확히 어떤 표현으로 평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큰따옴표를 붙이지 않은 것은 그러한 까닭입니다). 여기서 멀리뛰기란 ‘작품의 전개 도중 A에서 B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컨데 이 작품에 대입해본다면 ‘주인공이 다 파는 소년을 만난’ 지점에서부터 ‘할머니 병문안’을 가는 지점으로의 이동일 것입니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본다면 ‘할머니 병문안’대신 ‘연애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영어 성적을 비관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출발선상은 그러했습니다. 무엇이든 다 파는 소년은 정말로 무엇이든 다 팔기 때문에 영어 성적까지도 팔고 있죠. 10점에 7만원이면 100점에 70만원입니다. 와, 제가 이 학교 학생이었으면 팅자팅자 놀다가 수능 점수만 홀랑 사버릴 거 같네요. 물론 이 작품은 구매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는 설정을 걸어놓고 있죠. 흠, 제가 수능 만점을 구입하려면 몇 십 억이 필요해질까요?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성적에서 시간을 지나 수명에 도달합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병환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지점부터 읽는 것이 껄끄러웠습니다. 우선 처음 보는 남자와 수상한 계약을 맺은 것까지는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이 성적을 사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게다가 후불제! 그렇지만 상대를 신뢰하기는 아직 멀었죠. 그런데 갑자기 주인공은 자신의 가정사를 풀어놓습니다. 저는 우선 이 작은 멀리뛰기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는 심정이 되었죠.

작은 멀리뛰기 이후로 다시 이야기는 궤도를 유지합니다. 사실 제 상식에서는 할머니에게 남자친구를 데려가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무슨 연애질이여 공부는 허지 않고!” 같은 소리를 들을 거 같습니다만, 모든 할머니가 제 할머니 같지는 않을 테니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근데 뜬금없이 결혼이라뇨?

그 이후로 진행되는 이야기도 좀 희안합니다. 이 지점을 저는 큰 멀리뛰기라고 봅니다. 서사의 대전환이죠. 그런데 전환이 너무 작위적이라 ??? 하게 됩니다. “오늘도 왔네”라는 표현에서 주인공이 거의 매일 같이 병문안을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남자애를 만난 바로 그 날 남자애와 함께 병문안을 간 것이겠죠. 큰 멀리뛰기는 병문안을 다녀온 직후의 이야기일 테고요.

오늘 처음 만난 남자애에게 영어 점수 10점 사고(아직 10점이 늘었는지 아닌지 모름), 할머니랑 병문안 다녀왔다가(얘가 뜬금포로 결혼할 사람이라고 구라침), 병원 앞 까페에서 갑자기 주인공이 “님 내 남자친구 함 안함?” 이라고 합니다. 금사빠도 이정도면 불치병 수준인데요.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서사의 전개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겁니다. 만약 영어 점수 10점을 파는 것이 “내가 님 과외 해드림”같은 거였다면, 주인공과 남자애가 함께할 시간이(그러니까 썸을 탈 시간이) 어느정도 충분하게 주어질 테죠. 과외 도중 쉬는 시간에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는 방법도 있을 테고요. 넉넉하게 다음 시험결과까지 서사를 전개한다면 남자애에 대한 주인공의 신뢰 같은 것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천천히 친분을 쌓고 썸도 타고 오예!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만남➠병문안➠연인 으로 가버립니다. 저는 이 숨막히는 속도를 따라갈 자신이 없어요

 

어쩌면 제가 잘생겨본 적이 없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얼굴만 잘생기면 썸이고 나발이고 “님 나랑 사귐 안 사귐?” 한 마디로 연애를 할 수 있는 걸까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결국 이 작품은 (젠장맞을) 외모지상주의를 돌려까는 작품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론 정말 서글퍼지겠지만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 작품의 서사는 그 구조가 대단히 잘못되어있습니다. 적어도 제 의견은 그러합니다.

 

 

멀리뛰기는 제자리 멀리뛰기와 달라서 어느정도 도움닫기를 할 수 있습니다. 100미터를 도움닫을지 10미터만 도움닫을지는 작가의 선택입니다. 10미터만 도움닫아도 300미터를 날아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0미터를 도움닫아도 2미터를 겨우 가는 저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충분히 도움닫고 가능한 멀리 날아가세요. 건필을 빕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