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의 의미를 찾아가는 소설… 감상

대상작품: 들개이빨 (작가: 좌백, 작품정보)
리뷰어: 후더닛, 18년 4월, 조회 50

‘들개이빨’은 두 가지 작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하나는 제목 때문인데, 똑같은 제목을 가졌던 허영만의 만화를. 또 하나는 일본의 만화가 코이케 카즈오의 만화인 ‘아들을 동반한 검객’을 말이죠. 두 작품 다 어느 정도 이 작품과 통하더군요. 이 이야기는 초반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무사가 나오고 후반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구체적으로 말은 못 하겠지만, 젋은 협객에게 죽은 무사에 대한 복수가 나오는데, 그렇게 초반은 설정이 비슷했던 ‘아들을 동반한 검객’을 떠올리게 하고, 후반은 같이 복수의 이야기였던 ‘들개이빨’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저는 무협 소설이라곤 김용의 ‘소오강호’와 ‘사조영웅전’밖에 읽은 적이 없어서 거의 문외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제가 읽어도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작품이더군요. 그만큼 장르에 친숙하지 않은 일반 독자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소설이라 하겟습니다. 특히 후반의 혈투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합을 겨루는 것을 보는 게 무협에서 빠질 수 없는 재미인데, 그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을 벗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소설엔 프롤로그가 있고 거기서 이 소설이 브라질에서 실제 있었던 일에 영감을 얻어 쓰게 된 ‘반려동물무협’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다 읽어보면 이 역시 단순하게 어떻게 이 소설을 썼는지 밝히는 것만 목적이 아니라 실은 이것 자체가 후반에 등장할 반전을 위해 미리 설치해 놓은 장치라는 걸 알 수 있더군요. 그러니까 독자를 현혹시키기 위해 던진 미끼라는 걸 말이죠.

어쨌든 이 소설은 ‘반려’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품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기에 할애되어 있지요. 그래서 아마도 인물의 설정이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무사는 그리 공감을 얻을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코이게 카즈오의 ‘아들을 동반한 검객’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그 검객도 누구보다 잔인무도하고 또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었지만 동반한 아들에 대해서만큼은 극진했었죠.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무사는 그조차도 없습니다. 어른들이 개에게 던지거나 발로 차지 않으면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돌로 처맞든, 며칠이고 굶주리든 나 몰라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는 충성을 바치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주인의 목숨을 빼앗은 자에게 복수할만큼.

이러한 복수는 얼른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유가 소설에 나오긴 합니다. 물론 그것을 밝혔다간 반전까지 밝히는 것이 되기에 말할 수는 없지만요. 여하튼 그런 무사이기에 후반의 개의 복수와 결부하여 독자는 ‘반려’라는 의미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함께’라는 것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고 말이죠. 그 질문에 답을 찾는다면,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개가 어째서 멀리서 들려오는 동료의 울음소리를 듣고 웃음을 짓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반려’는 단순히 함께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반려’는 신뢰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 소설이 영감을 받았던 브라질의 그 개도 주인에 대한 믿음으로 병상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신뢰는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들개이빨’은 여기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줍니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을. 상대가 행동을 통해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것, 그런 경험의 축적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악당이라 말해도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줄 신뢰를 만든다는 것을 말이죠.

어쩌면 마지막의 그 웃음도 신뢰의 확인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짧지만, 예외적인 인물의 설정과 주인공의 행동 때문에 왠지 모르게 많은 의문을 스스로 가지며 풀어보게 되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로 나는 어떤 ‘반려자’인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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