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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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백 : 반려동물무협을 쓸 생각이야.

진산 : 뭐?

좌백 : ‘개와 함께 다니는 무사’라거나 ‘고양이 협객의 복수’라거나 그런 식으로 반려동물과 관련된 무협소설을 단편으로 쓴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 이를테면 이런 거야. 뉴스에서 봤는데 브라질에서 있었던 일이라는군. 한 노숙자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서 죽었어. 근데 그 노숙자에게는 같이 노숙하며 기르던 개가 있었거든. 개도 응급실로 따라갔지. 하지만 주인이 죽은 건 모르는 거야. 알려준다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다는 거야. 응급실 앞에서. 사람들이 데려가서 밥도 주고 새 집을 마련해줘도 개는 다시 응급실 앞에 와 있는다는 거지. 눈물 나지 않소.

진산 : 감동적이지만 그게 무협이랑 어떻게 연결돼?

좌백 : 그건 말이지…

* * *

들개이빨

떠돌이 무사가 있었다.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떠돌이 무사가 흔히 그렇듯이 마음 내키는 대로 떠돌다가 칼솜씨를 팔아 돈을 벌곤 했는데, 그런 일 중에는 나쁜 일들이 많았고, 그는 그런 일을 거절하지 않았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에게는 친구도 없었다. 당연히 가족도 없었다. 하지만 그를 따라다니는 개 한 마리는 있었다. 어쩌다가 그 개가 떠돌이 무사를 따라다니게 된 건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평범한 개였다. 비루먹은 데다 갈비뼈는 앙상해 버림받은 개의 모습 그대로였다. 떠돌이 무사와 버림받은 개는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었다. 무사는 생각나면 가끔 먹을 것을 던져주었고, 개는 주면 먹고 안 줄 때는 그저 굶거나 쥐, 혹은 벌레 같은 것을 잡아먹었다. 간혹 돈을 번 무사가 주루에서 좋은 술과 안주로 배를 채울 때 개는 길가의 시궁창에서 흙탕물을 마시며 기다리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진 무사가 차가운 길거리에 누워 잠이 들면 그 품에 파고들어 온기를 나눠주는 건 그래도 개 밖에 없었다.

개는 개이기 때문에 돌을 맞는다. 길거리를 걷다보면 단지 재미로 돌을 던지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쪽으로 인상 한 번만 써주면 그런 일이 없을 텐데도 무사는 그러지 않았다. 날아오는 돌과 쏟아지는 비난은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는 기묘한 고집이 그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발로 걷어차거나 몽둥이로 때리려 하면 그는 참지 않았다. 누군가가 진짜로 개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생기면 그도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 상대가 아무리 강하고, 수가 많아도 그랬다. 장난삼아, 아니면 정말로 배가 고파서 그의 개를 빼앗아 잡아먹으려 했던 기련산의 산적 떼가 오히려 그에게 몰살당한 사건은 강호의 여러 호사가들을 즐겁게 하는 이야깃거리이기도 했다.

개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개 한 마리 대신 여러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개는 그의 개지 모르는 개가 아니었다. 목숨을 걸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무사는 말했다. 이쪽에서 목숨을 걸면 상대도 목숨을 거는 건 무림의 법도다. 그가 저지르고 다닌 다른 일들에 대해서는 몰라도 적어도 이 일에 대해서는 그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확신한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일에 대해서 말이지만, 그는 점점 더 나쁜 일을 했고, 그런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일 같은 게 대표적이었다. 자연히 그의 악명은 높아졌고, 개와 다니기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날 즈음에는 강호에서도 꽤나 유명한 악당, 마두가 되었다.

그러다가 죽었다. 나쁜 일을 하러 갈 때 으레 그랬듯이 길가의 나무 아래에 개를 기다리게 하고 그는 혼자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돈을 받고 대신 결투를 하러 갔다가 이번에는 상대를 죽이지 못하고 자신이 죽는 쪽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혹은 그와 비슷하게 나쁜 자들과 도당을 이루어 부호의 집을 털러 들어갔다가 운이 나빠 함정에 발이 걸렸고, 결국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또 혹은 의협심 넘치는 강호협객과 조우해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목이 날아갔을 수도 있었다. 협객에게 있어서 악당의 악명이란 곧 살인허가와 같아서 확인하자마자 목을 쳐도 괜찮은 것이니까. 굳이 관가에 끌고 가 고발하고 재판을 기다려 처형까지 확인할 이유 같은 건 없었으니까.

개는 기다렸다. 무사가 며칠째, 몇 달째 돌아오지 않았지만 내내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평소보다 돌아오는 게 늦어진다고 생각은 했겠지만 개는 계속 기다렸다. 쥐와 벌레를 잡고 길가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시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굶주리며 그냥 기다렸다. 해가 뜨고, 또 다시 지고,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개는 기다렸다. 무사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보다는 무사가 돌아와 다시 만나면 얼마나 반갑고 기쁠까 하는 생각만으로, 그 생각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개는 마냥 기다렸다. 그러다가…….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