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복잡하고 잔인한 세상 속에서, 사랑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작가: 한켠, 작품정보)
리뷰어: stelo, 18년 4월, 조회 366

1. 카프

이 소설은 1930년대 카프를 모델로 한 소설이다.

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을 에스페란토어로 쓴 말이다. 한 마디로 빨간색으로 물든 공산주의 예술가들이다.

2. Esperanto

“나는 에스페란토를 공부하지요. 글자를 배우는 게 뭐가 부끄럽습니까.”

“에스페란토가 무어요?”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할 때에 어느 나라 말로 소통하여야 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자국어를 타국민에게 강요할 수 없으니, 모든 인류가 강압 없이 평화롭게 대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언어가 에스페란토입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핀란드에 사는 할아버지와 에스페란토어로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에스페란토는 서로 말이 달라 소통하지 못하고 전쟁이 일어난다고 믿었던 유대인 의사 자멘호프가 만든 세계 공용어다. 문법이 규칙적이고 단순해서 배우기 쉽다. 에스페란토 교재들을 보면 “Esperanto estas facila, Angla estas malfacila.”라는 예문이 자주 나온다. 번역하면 “에스페란토는 쉽다, 영어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인 김억이 신문에 에스페란토 강좌를 연재하며 보급했다. 에스페란토는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급진적이고 위험한 언어로서 일제에게 탄압받았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를 공용어로 만들려는 모든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에스페란토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채팅, 펜팔, 국제 모임, 여행등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3. 표현의 자유 : 윤동주

“변사가 있었을 땐 모호하게 찍어서 일단 검열을 통과한 다음에 순사 눈치보면서 극장에서 대사를 바꿀 수 있었는데, 요새는 변사가 없어져서 모든 극장에 동일하게 상영될 대본이 사전에 나와야 하니, 내가 생전에 검열을 통과할 대본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 1조를 봐도 알 수 있다.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의회는 종교를 만드는 일이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신문은 물론이고 활동 사진은 물론, ‘시’도 검열당했다. 어떤 시인들은 붓과 펜을 꺾었다. 어떤 이는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시를 써서 [친일 인명 사전]에 이름을 남겼다.

시인 윤동주,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히라누마 동주는 사촌 송몽규와 함께 사상범으로 몰려 감옥에 갇혔다. 그가 죽기 직전에 쓴 시들은 일제 경찰이 압수했다고 하는데, 남아있는 것이 없다. 윤동주는 정체불명의 인체실험을 받다가 옥사했다고 한다. 사망을 알리는 전보가 도착한지 10일 후 뒤늦게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큐슈제대(九州帝大)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

이라 적힌 편지가 가족에게 도착했다.

 

4. 표현의 자유 : 독립 이후, 독재

자본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한때 일제에 대항하여 연합하기도 했다. 하지만 8.15 독립 이후 소련은 북을, 미국은 남으로 진주했다. 독립운동가들은 남북 분단과 함께 적이 되었다. 이는 6.25 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 이후 자본주의 남한에서 공산주의는 탄압 받았다. 검게 먹을 칠해 내용을 검열한 신문이 팔렸다. 군대에서는 읽을 수 없게 금지된 책들이 있었다.

공산 세력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지하에서 ‘운동권’이라 불리며 근근히 살아남았다. 개중에는 진심으로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도 있었고, 선동가도 있었다.

당시 한국 운동권들 중에서는 정부가 말하는 ‘북한이나 소련의 진실’이 모두 거짓이며, 사실 북한과 소련은 천국이라 믿는 사람도 있었다. 이는 당시에 운동권들이 쓴 글이나 책을 보면 질리도록 알 수 있다.

 

5. 에스페란토와 소련 붕괴

소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냉전 속에서 소련은 자본주의 부르주아를 지지하는 모든 의견을 탄압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공산주의 사회 역시 경직되고 강압적이었다.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이 경고했듯이 계획은 실패했고 대기근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갔다.

하지만 한국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진실을 알았다. 소련의 에스페란티스토들이 국제 서신을 통해 진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쓰지 않는 비인기? 공용어는 암호문이 되었다.

한 소련의 에스페란티스토는 이렇게 썻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대한 당신의 좋은 생각들은 단지 아름다운 꿈이며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자유와 배부름은 단지 종이 위에 존재할 뿐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더 잔인하게 새로운 주인들로부터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잃을 것은 사슬 뿐이라 하였으나, 새로운 사슬에 묵였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는 암호?가 아니라 언어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의 내부 고발은 결국 들통났다. 소련에서 ‘반혁명분자’로 몰렸고 박해당했다고 한다.

 

결국 소련은 알아서 붕괴해버렸고, 진실이 드러났다.

6. 공산주의와 여성

“영국에 가서 여권운동자들 만나서 투표권 투쟁을 성공한 비결을 듣고,”

공산주의자들은 의외로 남녀 평등에 있어서는 진취적이었다. 마르크스의 경제적 후원자이자, 그 유명한 [자본론]을 편집했던 엥겔스는 [여성 억압의 기원]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호세이니의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보면 아프간이 소련 치하에 있었을 때, 여성들은 학교에 갈 수 있었고 권리를 존중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프간에서 소련이 물러가고 독립을 쟁취했을 때… 여성들은 다시 집에 가둬졌다.

중국은 공산주의 시절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적은 축에 속했었다.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현대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7. 운동권과 여성

한국 운동권에서 여성은 들러리였다. 당장 전태일이 투쟁했던 섬유 산업에 ‘여공’들이 있었음에도,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듯이 여자들은 지워졌다. 우리는 ‘전태일’을 비롯해서 남자들의 이름만을 기억한다.

내가 수첩에 “혁명가 정신”이라 적고 다니던 시절에 운동권 출신인 학자, 정치인들이 쓴 책들을 읽었다. 그 책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역사는 흐르고 어느새 2018년이다. 서점에 여성주의가 물결을 이룬다고들 하지만, 아직 남자들은 여성의 권리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게 당연하다고 말하고,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남자들조차 믿기 어렵다는 걸 안다.

내가 직접 보고 겪었으니까.

 

8. 복잡한 세상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래 나는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지지하지 않는다. 슬프고 아픈 ‘사실’들을 냉정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는 걸 안다. 자본가/노동자 혹은 여자/남자 같은 단순한 범주로 나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물론 객관적인 사실은 없으며, 진정한 중립도 없다는 걸 안다. 세상은 흑과 백이 아니며, 회색도 아니다. 흑과 백 사이 무지개처럼 다채롭다.

 

9. 동양인에게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를 배우다보면 영어나 유럽 언어랑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다. 영어로 “I love you” 프랑스어로는 “Je t’aime”를 에스페란토로 쓰면 “Mi amas vin.”이 된다. 프랑스어 aime와 에스페란토 amas는 둘 다 라틴어로 사랑을 뜻하는 어근 ‘amo’에서 파생된 말이다. 자멘호프는 라틴어를 참고해서 에스페란토를 만들었다. 역시 라틴어에서 파생된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같은 유럽어들과 비슷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동양계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유럽인보다 에스페란토를 배우는 속도가 2배 느리다고 한다. 물론 영어보다는 훨씬 쉽다. 내가 배워봐서 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가 정말 ‘특정 국가의 언어가 아닌 평등한 공용어’인지는 의문이다.

 

10. 초혼

작가의 말에도 나오지만 이 소설의 제목은 진달래꽃을 쓴 시인, 김소월이 쓴 시 [초혼]의 한 구절이다.

초혼은 사람이 죽으면 지붕이나 뒷산에 올라, 그 사람이 살았을 때 입었던 옷을 들고 흔들며,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는 의식이다. 북쪽을 보고 “고 ㅇㅇㅇ 복복복!” 하고 외치는데, 그래서 고복皐復이라고도 한다. 언덕 고皐에 돌아올 복復자다. “부대로 귀復歸하다”라고 말할 때 쓰는 그 복이다.

초혼의 전문을 옮겨 본다. 복사 붙여넣기가 아니라, 손으로 하나하나 쳐서 적었다.

 

이 시는 사랑에 대한 노래로도, 독립에 대한 노래로도 읽힌다. 사랑과 투쟁을 유비하는 건 일제 강점기 조선 시인들이 자주 쓰는 기법이었다. 스님이었던 한용운이 쓴 [님의 침묵]에 실려 있는 시 [당신을 보았습니다]도 떠오른다.

결론 : 죽은 카프의 혼을 부르다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는 되살아난 카프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나는 이 소설이 마음에 든다. 잔인한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 역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있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는 아픈 시대였다. 이 소설이 하나하나 짚어가듯 힘겨운 세상이었다. 당시 카프의 공산주의자들은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적어도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작은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다.

화자는 주체적인 여성이지만 놀랍진 않다. 앞서 말했듯 공산주의는 남녀 평등에 적극적이었다. 카프 문학에는 여성을 화자로 한 시나 소설이 간간히 등장한다. 현대화라기 보다는 카프의 적절한 고증이 아닐까 싶다. 카프는 시대를 앞서갔다.

나는 감옥에 간 오라버니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여동생이 화자로 나오는 카프 시를 읽은 적 있다. 여담이지만 그 작가는 남자였다. 나는 작가님이 여성이신지는 모른다. 나는 남자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그저 남아 있는 그 시대의 진실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인텔리인 남자와 까막눈인 여자라던가.

이 소설 역시 당시 카프 문학이 그렇듯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만 단순하고 이상적이다. 두 남녀 사이에 갈등은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 ‘자본주의에 맞서는 동지’로 그려진다. 이상은 좌절되고 노동 쟁의는 실패하지만, 홍염은 사랑을 말하며 다시 투쟁을 결의한다.

 

잊혀졌을 뿐 실제 역사에서는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이 똑같이 다짐했을 것이다. 이는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가 아니라 진실이다. 작가는 고증과 이야기를 통해 카프를, 그 당시의 고통과 사랑을 되살렸다. 관에 못박힌 카프의 혼을 불렀다고 할까. 말 그대로 초혼이다.

그 어떤 고통도 사랑도 무의미하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세상은 복잡하다고 믿으면서도 이 단순한 이야기가 진실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Do mi kredas ,ke la mondo kompleksas. Sed mi pensas ,ke la simpla rakonto vere belas.

 

에스페란토를 공부할 때 사람들이 그걸 배워서 어디에 쓰냐고 하던 게 기억난다. 이렇게 글 마지막에 멋진 문장을 남길 때 쓴다.

후기 : 군인에게 정치적 중립. 자유 민주주의

이 글은 고양이가 아니라 내가 썼다. 나는 이 글에서 특정 정당이나 견해를 지지하지 않았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도 없다. 특정 정치인을 비하하지도 않았다. 브릿G는 정치적 사이트도 아니다.

무엇보다 카프는 이제 지나간 역사다. 그 동안 소비에트 연방은 러시아와 독립국들로 해체되었고, 북한은 3대를 세습했으며,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렸고, 남북은 정상회담을 한다고 한다. 역사는 역사로서 돌이켜 보면 되지 않을까.

기무부대 분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나는 진지하게 복무신조에 나오듯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내 의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니까. 다들 알듯이 우리는 힘들게 그 자유를 손에 넣었다. 북한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 없다. 위성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그곳은 암흑에 덮여 있다.

 

그러니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고 생명을 지키며,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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