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뭘까요?
애완동물을 귀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도, 친구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도, 연인과 가족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도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고 부르지요. 너무 많은 감정이 사랑이기에,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의내리기 위해서 필요한 기준 역시 다양하며 거기에 모두 충족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입 꼬리를 슬그머니 끌어올리며 웃게 되는 것이 사랑이잖아요. 모두의 정의는 달라도 아무도 부정할 수는 없는 감정이 아닐까요.
때때로 사랑은 스며들 듯이 찾아오지만, 가끔 번개처럼 내리꽂히고, 어떨 때는 끝난 뒤에서야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하잖아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건 꽤 자연스러워 보이고, 그것이 의사소통하며 얼굴을 마주하는 유일한 대상이기까지 하다면 더더욱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마리 멜리에스. 여자의 이름이자 유진의 모든 것이었던, 그러나 다시는 볼 수 없는 이가 잠들어버린 계곡. 많은 것이 함축되었다고 느꼈어요. 기억 속에 존재하지도 않는데 자기 안에 남아있는 상대에 관한 감정에 괴로워하는 마리와 떠나간 이를 생각하며 현재의 타인에게 그를 갚고 싶어 하는 유진. 처음부터 엇나갈 수밖에 없어요. 마리는 유진과의 관계를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변화하면서 성장하니까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경험 속에서 배운 것이라면서요.
그러나 그 관계의 시작이 어긋나 있고, 그 감정의 뿌리가 타인의 것이었고, 더욱이 유진이 느끼는 심적 부채는 세상을 떠나간 그의 부인에게 느끼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마리가 느끼는 배신감과 절망, 좌절은 얼마나 컸을까요.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워서 글을 읽는 동안 문장을 끝까지 다 읽었는데도 다음 문장을 쫓아가기 어려웠답니다. 아내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마리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서 유진이 얻게 되는 것이 자기만족 외에 무엇이 있을까. 마리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닌가.
어차피 마리의 안에 남은 것은 메아리 뿐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을 엿보며 복잡한 심경을 느꼈답니다. 타인에게서 촉발된 감정.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키워갔으니 마리의 사랑이라고 말해도 될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의 한 형태겠지만, 과연 그 감정에 몸을 싣는 것이 맞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에 꽁꽁 묶이게 되더라고요.
분명 마리는 유진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그것을 응원하기 좋은 사랑의 형태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어요. 유진이 아주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최선을 다할 시간은 너무도 짧은 법이죠. 돌아서서 후회하며 노력하는 것이야 자유겠지만, 아무튼 서월은 유진에게 사랑을 잃고 죽어가지 않았을까 싶어서 입맛이 쓰기도 했습니다.
마리 멜리에스는 지나간 뒤에야 후회하는 형태의 사랑 이야기라고 느꼈어요. 유진과 마리 사이에도 분명 사랑이 있지요. 그러나 유진이 그리워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서월일테고, 마리가 아무리 서월에 가까워진다 한들 그 사람 본인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리하여 궤도장을 치른 마리조차 유진에게는 결국 서월이 아닐까 생각했답니다. 서월이 없이는 시작되지 않았을 마음이고, 실험이고, 애정이기 때문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어긋나기만 한 애정임에도 애틋하고 마음 아픈 이유는 그것이 그래도 사랑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달처럼 고요하고 기묘한 집착과 끝나버린 사랑을 붙잡고 늘어진 유진의 이야기. 끝났으나 결국 끝내지 못했고, 그의 마음은 늘 우주 저편을 빛나며 맴돌겠지요. 그러나 그가 서월에게 준 상처만큼 큰 고통은 아닐 것이며, 그가 구원받지 않아도 좋다고 느꼈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끝끝내 한 번도 직접적으로는 등장하지 않은 서월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녀로 하여금 유지되고 진행되며 존재할 수 있었던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라고 느꼈거든요.
작가님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이야기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