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30분. 그런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만큼 짜증나는 것도 또 없을 겁니다. 스팸이라면 정말 최악의 영업 방식이죠. 돌아오는 게 상품에 대한 호감은 커녕 찰진 욕밖에 없을테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수신자 부담 전화라면, 불길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에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걸만큼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다급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해서 말이죠. 왜 호러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살인마에게 납치, 감금당한 피해자가 운좋게 탈출하여 도움을 청하기 위해 수중에 핸드폰과 잔돈이 없으니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거는 일이 종종 나오잖아요. 그런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죠. 이런, 제가 장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일까요?
어쨌든 소설의 주인공인 20대 여성 수빈이 그런 전화를 받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지친 몸이었기에 전화에 대한 첫 반응은 짜증이었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잘 작정이었습니다만 끈질지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참지 못하고 받고 맙니다. “여보세요?”하자마자 들려오는 건 “끊지 마세요. 끊으면 후회할 거예요!”하는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 신종 보이스 피싱으로 의심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목소리가 하도 절박해서 수빈은 계속 듣고 있기로 합니다. 그런데 뒤이은 남자의 말은 더 충격적입니다.
“곧 있으면 누군가가 당신의 문을 두드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절대 열면 안 돼요. 절대로. 그 사람이 당신을 죽일 수도 있어요.”
처음엔 장난 전화구나 하고 여겼지만 뒤이어 닥쳐온 상황이 결국 그녀를 공포로 젖게 만듭니다. 전화가 경고한 그대로 누군가 그녀의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기 때문이죠.
집에 혼자 사는 여성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대한민국에서 수빈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겁니다. 두드리는 사람에게 누구냐고 물으니 경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화는 살인자가 경찰로 위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지? 전화 속 목소리인가 아니면 현관을 두드리는 사람인가?
피곤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그녀는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로 인해 삽시간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왜냐면 바로 그 선택이 자신의 목숨을 결정할테니까요.
소나타 형식처럼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포인트를 세 단계에 걸쳐 둬서 독자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끝까지 내처 읽게 만듭니다. 세 번째 단계는 ‘반전’이라는 한 방인데, 독자가 이것을 제대로 납득할 수 있도록 앞부분에 설정을 잘 했더군요.
세 가지를 느꼈습니다.
하나는 전화는 아직도 스릴러 도구로써 꽤 유용하다는 사실. 특히 이 소설처럼 무엇이 진실이 모른다는 상황 자체가 공포를 만드는 경우에 더욱 그러해 보입니다. 이런 전화의 역할을 간파한 대표작은 역시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영화 ‘스크림’이겠죠. 최근엔 메일이나 채팅, 혹은 온라인 속 아바타 등으로 진화하고 있는 추세입니다만.
둘은 이제는 언론인을 기레기라고 부르는 게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짜 뉴스가 판을 치게 된 세상 속의 우리가 과연 소설 속 수빈과 얼마나 다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수빈의 모습은 허위와 왜곡으로 점철된 가짜 뉴스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진실을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그들의 뜻대로 거짓을 진실로 여기게 되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셋은 대한민국에서 집에 혼자 사는 여성은 얼마나 위험한가 입니다. 얼마전에 들은 말인데, 음식을 배달하는 남자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혼자 사는 여성 집의 위치를 공유하는 일도 더러 있다더군요. 여성이 노출된 위험의 범주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 말이라서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수빈의 상황 역시 순전히 허구라고 국한할 수 없다는 거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남자보다 몇 배나 더 큰 위험과 직면하여 살아야 한다는 건 정말 불합리한 일입니다. 혼자 살아도 얼마든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얼른 찾아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