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불망이라는 고루한 단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는 기다림이었습니다. 감에 대한 우스갯소리에 정말 웃기만 할 수 있게 될 만큼 오랜 시간이었죠. 이제 10편 올라온 글에 리뷰를 쓸 수는 없지만, 꼭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글을 적어봅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아래, 98년도에 대한 글이 있네요. 이런. 저는 천리안 이용자였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연재분을 읽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98년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네요.
굳이 꼽자면 그 해 출시된 어떤 게임의 공략집에서, ‘이루릴 같은 엘프는 아니더라도…’ 뭐 그런 표현을 읽기는 했네요. 그때는 ‘이루릴이 누구야?’ 하고 넘어갔지요. 이 사람은 얼마 후 학교 도서관에서 드래곤라자를 2권으로 처음 접합니다(1권은 줄곧 대여 중이었거든요). 그때 뒤표지에 적힌 내용을 보고 ‘와, 주인공 일행에 온갖 종족이 섞여 있나 봐!’ 하고 이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펼치자마자 후치가 샌슨더러 오거라며 바락바락 대들고(?) 있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 오해의 역사는 오버 더 시리즈의 ‘야채 뱀파이어’가 별명이 아니라 진짜 종족 이름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엊그제까지 이어지는군요…
사설이 길었습니다. 98년으로부터 10년 후, 그러니까 마지막 장편 소설이 출간되었던 2008년에 각별한 추억이 있어요. 그 무렵 저는 작가님의 팬카페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회원이었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추억도 잔뜩 쌓을 수 있던 좋은 모임이었어요. 가끔 서로의 매니악함을 겨루기 위해서 퀴즈를 내기도 했는데요. 말 그대로 너무 매니악해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소설 도중 단 한 줄 언급되었던 포문의 개수 같은 걸 묻고, 심지어 그걸 누군가 맞추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그 시절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취향 하나로 뭉친 사람들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때 다녔던 종로의 홍차 전문점은 이제 없습니다. 지금 그 팬카페에 저도, 그들도 모두 없듯이요. 저마다의 사정으로 흩어진 것으로 압니다. 그들 모두 꼭 행복하시길, 행복해 주시길 바라봅니다.
또 10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요.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요.
이제 10편 올라온 글에 리뷰를 쓸 수 없듯, 정말 이번 작품에 그것을 담으려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자꾸만 2014년이 떠오릅니다.
티르가 우리 주위에 가득했던 해였지요. 지상으로 끌어올린 서니의 시체에 차마 쓸 수 없는 표현을 말한 티르 스트라이크 말이에요. 슬픔을 정리해야 했던 티르, 당장 앞에 닥친 일을 그럼에도 해내야 했던 티르, 그러다 보니 빨래를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티르가 잔뜩 잔뜩 있었어요.
그 해를 기점으로 많은 게 바뀌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슬퍼했고, 본격적으로 비난했고, 본격적으로 싸웠고, 본격적으로 무너졌어요. 와, 저는 그렇게 본격적인 일이 많았던 시기가 처음이었어요. 저는 문학을 공부했어요. 그중에서도 장르문학을 사랑했어요. 문학에 장르적 특징을 도입하는 게 특징이던 시기라 더욱 좋았죠. 자주 듣는 조언 중 하나가 그거였어요. ‘현실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cm만 띄워 서술하라.’ 너무 허황하지도 않게, 너무 현실적이지도 않게. 그게 문학에 장르적 특징을 도입하는 일반론이었죠. 그러니 대학에서 연구할 텍스트로 공산당선언을 읽든, 노동해방의 노래를 배우든, 이성으로만 대할 수 있었죠. 제가 좋아하는 문학과 현실 사이에는 반드시 2cm의 간격이 있으리라 믿었으니까요. 그 2cm가 본격적으로 달라붙었어요.
작가는 대개 자신이 속한 세대의 문제만을 쓰게 된다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에 동의합니다. 지금 나오는 사극은 조선 시대에 우리 세대를 투영한 결과이고, 미래를 다루는 SF에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경외감이 담겨 있죠. 다른 세대의 작가가 자신들의 문제의식으로 소재와 배경을 다루었듯, 지금 세대의 작가 역시 지금의 문제의식을 담아 소설을 쓸 것입니다.
한편 장르문학은(그걸 굳이 구분해두면) 문제의식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죠. 작가님이 다루어 온 인간에 대한 주제의식 역시, 반드시 지금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 훨씬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것이 작가님의 장기였다고 저는 생각했거든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줄 알고 손을 저었더니, 구름에 뼈가 있는 느낌이었어요.
<오버 더 초이스>의 도입을 읽고 당황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민트 없이는 고기를 먹지 않는 드래곤이나 시체를 끌고 사막을 횡단한 사람이 등장하지도 않고, 단 한 사람에 의한 사전 정의를 살피거나 악기가 살해당하지도 않은 채, 당장 현실에서 겪었던 것만 같은 사건으로 시작했으니까요.
그만큼 오랜 기간,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오셨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보다 더 오래 걸렸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하하, 물론 이 글은 <오버 더 초이스>의 연재가 끝날 무렵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얼굴 빨개진 채 쑥스럽게 ‘그땐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하며 리뷰로 바꿔 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직 이야기의 결말은 작가님과 편집부 말고는 아무도 모를 테니, 이렇게 말해보렵니다.
우리네 인간에 대한 본격적인 소설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이만 하루하루 숨죽여 연재분을 (코인 충전하고) 기다리는 독자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여기 모두에게 기억에 남을 봄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