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도의 여름을 기억한다.
프로골퍼 박세리는 워터 해저드 직전의 공을 살리기 위해 신발도 양말도 벗어던지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고된 훈련에 까맣게 탄 종아리와 대비대는 하얀 발을 기억한다. 그 발을 기억하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그 해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했고, 그 외에도 굵직한 세 개의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후로 이어지는 수많은 우승을 여기에 나열하는 것은 손가락 고문이고 데이터 낭비일 것이다. 이러한 박세리의 활약을 보고서 골프를 시작한 프로들을 ‘박세리 키즈’라고들 부른다.
그해 여름에는 박세리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을 시작하였고, 붉은 머리의 강백호가 SBS에서 방영되었으며, 남자애들은 농구에 미쳐버렸다. 슬램덩크 뿐 아니라 그때까지 해적판으로만 돌던 만화책들이 정식으로 계약을 거치며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박찬호는 그해 여름 LA다져스에서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훗날 투머치토커로서의 이야깃거리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해 드래곤 라자를 받아보았다. 당시에는 PC 통신을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웹소설(이라는 명칭은 없었겠지만)이 있었고, 그 중에는 인기에 힘입어 정식 출간된 작품도 있었다. 드래곤 라자도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 그런데 드래곤 라자는 당시 출판된 그 어떤 소설보다도 더 오래 기억되고 있다. 내 주변에도 ‘드래곤 라자를 읽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람이 여럿 있다. 나는 그들 몰래 ‘이영도 키즈’ 같은 호칭으로 그들을 묶어부르고 있다. 드래곤 라자 이후로 많은 작품이 빛을 보았다. 자주 장편이었고 때로 단편이었다. 작가 이영도의 작품은 계속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하였고, 직접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도록 독려하였다.
마지막 장편 이후로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타자 이영도의 작품을 기억한다. 나 역시도 그의 작품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장편은 (다른 사람들이 피마새 눈마새 드래곤라자 등을 외칠 때) 폴라리스 랩소디이고, 그래서 폴라리스 랩소디 전권을 양장으로 소장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남겨준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새로운 작품을 기대했다.
타자 이영도의 신작이 브릿G에서 연재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던 그날 밤을 기억한다. 그날 밤 그 발표를 하면서 얼굴 가득 미소 지으시던 편집주간님의 모습을 기억한다. 편집주간님의 발언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던 그들과 나의 모습도 기억한다. 신작 소식에 기뻐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도 충격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는 기억은 여전하다. 그만큼 기다려온 신작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오버 더 초이스는 그 전에 발표 출간 되었던 오버 더 시리즈의 세 작품과 함께 올 여름 출간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18년의 여름을 기억할 것이다. 작품은 이제 겨우 세 편이 올라왔을 뿐이지만, 이것은 나 혼자만의 설레발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오버 더 초이스의 세 편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18년의 여름을 기억할 것이다.
그 해 여름에 오버 더 초이스가 세상에 나왔다고,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