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모든 글감, 소재를 그러모아 나열해본다면, 그 중에서 가장 흔하고 자주 보이는 키워드 중 하나는 가족일 것이다
당연하다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영향을 받게 마련인데 ‘가족’은 싫든 좋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태생에서부터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기 때문이다
죽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필두로 내세워 시작하는 글 <재와 이>는 가족, 죽음 두가지의 키워드를 버무려 자신을 소개한다
어째 어딘가 석연찮다 싶더라니, 이번이 아버지의 두번째 장례식이란다
무슨 소리일까,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천천히 읽어내려가는데 글이 어딘가 모르게 투박하다
번드르르하게 꾸며내는 말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시원하게 술술 읽히는 타입도 아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뚝뚝하고 다정치 못한 아버지를 보고 자란 자식의 속내를 그대로 옮겨담은 양 메마른 입술과 혀 끝이 그대로 느껴진다
여튼, 그렇게 세상에 별볼일없는 1인으로 남겨질 뻔했던 아버지는 장례식장에서 벌떡 일어나 제 1호 회색환자가 되었다
두번 죽었다는 말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처음이었으나 끝이 아니었다
‘회인’으로 이름붙인 개체들은 그 이후로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나’의 어머니 역시 그러한 존재였다
몇년 새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늘어난 회인들은 이제 사람들이 대놓고 꺼려하는 대상이 된다
‘나’와 어머니는 회인들을 격리시켜놓은 아파트에 살면서 하루하루를 죽은 듯 산 듯 이어가고 있다
‘나’의 생각이나 행동에선 아무런 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탁하다
무미건조한 고무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되새김질하는 마냥…
<재와 이>는 전반적으로 독자를 확 휘어잡는 힘이 부족하다는 게 아쉬웠다
소재에 이끌려 눌러앉기는 했으나 쑥 몰입이 되거나 흥미진진하게 흡인되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대사를 치는 부분에 있어 이상하게 자꾸만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할 배우는 괜찮게 뽑아 두었는데, 각본이 엉성해 배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만 같았으니
그럼에도 도입부와 결말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에너지는 충분히 와닿았다
살았으나 죽은 자의 이야기를 다룬, 어딘가 죽은 듯 회색빛이 감도는 글 <재와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