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건보다 ‘분위기’로 독자를 납득시키는 소설은 쓰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반했다. 그를 위해 목숨 걸고 이 일을 하기로 했다.’ 소설에서 이 문장만 보면 개연성 없지만, 영화에서 강동원/이영애의 그윽한 눈빛이 클로즈업되고bgm이 깔릴 때 저 문장이 나오면 ‘목숨 뿐 아니라 더한 것도 걸겠어!’의 심정이 되겠죠.
그럼에도 구구절절 사건과 묘사 보다는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여 독자를 설득시키려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장연설보다 눈물 한 방울이 더 호소력 있기도 하지요. <물 속의 여자>도 그런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물고기 질병 치료사’로 일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질병 치료사’라고 하지만 치료 보다는 예방,관리를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가족들의 죽음을 예방하지는 못합니다. 엄마는 일찍 죽었고, 언니는 아이를 낳다가 과다출혈로 죽지요. 아이 아빠는 임신만 시켜놓고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태어나 주인공이 자식처럼 기른 아이도 원인불명으로 죽습니다. 물고기는 아이 아빠를 엔젤 피시로,아이를 실버구라미로 비유하는 부분에서 나옵니다. 아이가 호흡하지 못하고 죽는 장면은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가 죽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언니가 죽을 때도 피냄새에서 물비린내가 연상되지요. 마지막 장면의 물고기가 (다른 곳도 아니고)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장면은 저는 정자-임신을 떠올렸는데 작가의 의도나 다른 분들의 감상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작품은 좋은 질문에서 나옵니다. ‘좋은’ 질문은 내용이 흥미롭고, 명확해야 합니다. 작가는 자기가 뭘 묻는 건지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왜 ‘굳이’ 물고기를 비유와 상징에 이용했는지 작가와 독자가 알아야 합니다.일대일로 대응해야 한다는 건 아니고요. 왜 다른 것이 아니라 물고기여야 했나, 물고기의 어떤 점이 유사한가, 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생동감 있는 인물은 아이의 생부입니다. 주인공이 언니의 아이를 자식처럼 기르고,그 아이가 죽자 상심하는 이유가 ‘(언니의 아이라서가 아니라)그 남자의 아이라서 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이 남자는 엔젤피쉬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호기심 많아서 다른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찢거나 어미들 간의 자리싸움이 격렬하다고 하는 엔젤피쉬의 특징이 남자의 어디와 닮은 걸까요? 호기심에‘나’에게 말을 붙이고 그러다가 언니나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기에는 이들 자매와 감정 교류가 충분하지 않습니다.남자는 격렬하게 자리싸움을 하지 않고 그냥 떠났습니다.
아이(인하)는 실버구라미에 비유되지만 은빛 이미지 말고, 무엇이 실버 구라미와 닮았을까요? 엔젤피쉬나 실버구라미는 어항 속의 관상어입니다. 물고기 질병 치료사가 수조 안을 세심하고 완벽하게 통제하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물고기는 건강하게 죽지 않고 살 겁니다. 주인공은 직업적으로는 유능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인간의 세계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그냥 주인공의 생계 차원인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보던 tv 프로그램도 물고기 내용은 아니지요.
주인공은 이웃집 부부싸움 소리에 그 집에 무단침입했다가 테트라 병에 걸린 물고기를 봅니다. 그 순간 주인공은 스스로를 포식자인 물고기에 비유하는데요. 자신에게서 ‘역겨운 비린내’를 느끼며 자신의 생명력이 가족들을 죽였다고 합니다.가족이 다 죽고 혼자 살아있다는 죄책감일까요? 그러기엔 바로‘얼마 뒤’에 죽은 아이가 테트라 무리가 되어 (실버구라미였던 아이가 알고 보니 사실은 네온테트라였던 걸까요?) 꿈에 나타나는데 ‘그 느낌이 너무 따뜻해 온 몸이 나른해 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후로는 점점 아이의 꿈을 꾸지 않고요.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웃의 부부싸움-치료 방법이 없는 병에 걸린 물고기-포식자 물고기-물고기 떼가 되어 꿈에 찾아온 아이-나른함 으로 이어지는 결말이 너무 갑작스럽고 장면이 휙휙 바뀝니다. 부부싸움과 그 집의 병 걸린 물고기가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죄책감에서 헤어나는데 계기일 것 같은데 그 부분이 그냥 지나갑니다.
연이은 죽음이 나오지만 물처럼 잔잔하고 고요한 작품입니다.소재는 흥미롭습니다. 소재와 인물이 촘촘한 그물처럼 엮이면 월척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월척’은 이로아나처럼 아름답고 귀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