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감상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떤 소설을 리뷰하기로 마음먹으면 해당 소설을 다시 읽습니다. 그러면서 세세한 부분을 발견해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처음 읽으면서 든 생각을 강화되거나,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적어넣기도 합니다. ‘극히 드문 개들만이’는 두 번째 읽으면서 처음에 읽은 생각이 완전히 뒤집힌 사례입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보리가 수백, 수천 번의 하루를 반복하면서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해피 엔딩에 도달하는 내용이니까요. 바깥에서 보리를 관찰하고 알콩달콩하게 말을 오가는 주인공과 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푸근해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옴니션트를 넣었을까. 왜 ‘나’라는 관찰자와 옴니션트라는 시스템을 넣었을까. 루프물에서 루프는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나중에 복잡한 설명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원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불굴의 의지로 목적을 성취하는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이 소설은 본편 절반을 옴니션트 바깥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생각을 해봤지만 가장 그럴듯한 결론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였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지 고민을 하다 보니 소설 전체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의심이 들었던 건 ‘나’의 일상이었습니다. 한 세계의 창조주라고 하기에는 ‘나’는 너무 평범합니다. 특출난 소설을 적는 천재도 아니고, 야망이 넘치거나, 심지어 무난하게 악하지도 않습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서 패치조차 4년 6개월의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루프가 발생한 것도 10년도 넘은 컴퓨터 운영체제 버그 때문이고요. 루프는 그저 사고입니다. 루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주조차 누군가의 단편적인 흥미입니다.
다음으로는 보리가 5677일 동안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겁니다. 의미없는 세상에 던져져 고통 받고 죽을 뿐인 삶. 문득 불교가 떠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보리의 이름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나무에서 따온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리는 삶을 끝내는 것으로 깨달음을 완성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은 결론 같지는 않지만 인생이든 견생이든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깨달음도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루프는 여전했으니까요. 종교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윤회가 떠오릅니다. 무한한 우주에서, 무한히 환생하면서, 무의미한 삶을 반복합니다. 정말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허무함이 느껴집니다.
철학이나 종교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정도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를 쐐기라도 박는 것처럼 보리는 무의미한 우주에서 의미를 부여하기로 합니다. 주인인 배은실을 구하는 거로요. 옴니션트 바깥의 사정을 아는 것도 아니고 보리가 깨달은 바에 의하면 저 행동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희미한 희망만 있을 뿐이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저 지루한 삶에 고통이 더 쌓일 뿐입니다. 포기했다면, 집에만 있었다면, 지루하지만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끊임없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게 실망하고, 실패하고, 고통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해도요.
“어둠이 물러나 새아침이 밝았을 때 여전히 시간이 고여 있고 똑같은 하루를 재차 삼차 반복해야 한대도 상관없었다. 오늘 보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엄마를 구하겠노라고 맹세했다. 그러기 위한 삶이었다. 거짓된 목적일지라도 있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본다면 이 소설은 보리가 진정 허무한 우주 속에서 진정으로 해탈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될 거 같습니다. 허무함에 매몰되어 포기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요. 물론 그건 ‘나’에 의한 해탈이 아닌 보리가 허무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 깨달은 바에 의한 해탈이겠지요.
우주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우리는 우주에 내던져진 존재일 뿐이지만, 그렇기에 우리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야 한다. 철학 교양을 들으면서 들었던 소리입니다. 관련 전공자분들이나 철학을 공부하신 분이 읽는다면 저보다 흥미로운 관점으로 읽으실 수 있겠네요. 물론 그냥 읽어도 탄탄한 구성으로 몰입하기 좋은 글입니다.
PS. 다시 읽으면서 깨달은 건데, 보리의 나이가 상당히 많네요. 약 13년 + 약 16년(루프) + 약 45년(패치를 잊은 4년 6개월 X 10) + 약 3년 6개월. 거의 77세. 인간으로 따지면 300, 400살은 살았던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