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환생자의 이야기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차원 도깨비의 세 수수께끼 (작가: 유권조, 작품정보)
리뷰어: 노말시티, 18년 2월, 조회 127

이번에는 차원 도깨비가 어려운 문제를 냈군요. 저 역시 처음 보았을 때는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누군가가 지나가는 듯 들려주었던 자신의 옛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마치 꿈을 꾸는 듯,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듯 흘러가는 말들이었지만 이 문제를 보고 나니 이제야 아귀가 맞아 떨어집니다.

처음으로 들려 준 이야기는 아마도 그 사람이 기억하는 가장 옛 이야기일 겁니다. 그 사람도 그게 자신의 첫 인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으니까요. 세종 12년, 그러니까 1430년일 거에요. 그 사람은 권씨 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상대별곡을 쓴 권근이 할아버지였고 수양대군의 측근으로 이름을 날린 권람이 사촌 형이었습니다. 집안에 문재가 넘쳐나 그 사람도 어렸을 때부터 글읽기를 좋아했지요. 자고 일어나면 책을 붙들고 놓지를 않으니 집안 사람들은 모두 권람의 뒤를 이어 정승자리에 오를 거라며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서오경을 멀리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팔도의 기담과 멀리 명나라와 왜국의 야사를 수집하는데 몰두했지요. 과거 시험에도 관심이 없어 겨우 생원과에 합격한 뒤로는 아예 시험을 볼 생각도 않았습니다. 그는 권생원이라 불리며 종국에는 스스로 기담들을 지어내 동네 촌부들에게 이야기해 주길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그의 이야기 중 기록되어 남아 있는 건 없다네요.

두 번째 삶은 아마 임진왜란 때였을 겁니다. 세상에 발을 제대로 디뎌 보기도 전에 왜놈들의 칼에 맞아 죽었다더군요.

세 번째는 숙종 10년, 1684년이었습니다. 유씨 집안의 딸로 태어나 재색을 겸비한 것으로 소문이 파다했지요.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가 생활하다 숙종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었지요. 숙종의 마지막 후궁인 소의 유씨랍니다.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벌이는 당파 싸움으로 궁중은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후궁인 유씨도 그 풍파에 마음 편히 지낼 수가 없었지요. 결국 마음에 병을 얻어 스물 셋의 꽃다운 나이에 명을 다하고 맙니다.

유씨가 번잡한 마음을 달랬던 건 당시 유행했던 구운몽을 비롯한 언문 소설이었다고 합니다. 그 스스로도 몇 편의 소설을 썼다고 하나 역시 전해지지는 않는다네요.

그 뒤로도 몇 번의 삶을 살았으나 그다지 기억나는 내용은 없다고 합니다. 아마도 노비나 종으로 살아 서책을 손에 쥘 겨를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보니 그 사람의 기억은 모두 책과 이야기에 대한 것이니까요.

1790년, 그러니까 정조 14년에 그 사람은 여섯 번째 삶을 맞이합니다. 조씨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요. 할아버지가 수원 부사였던 조심태였다고 합니다. 대체로 선정을 베풀었지만 수원성을 축조할 때는 일꾼들에게 너무 혹독하게 굴어 원성을 사기도 했다네요.

뭐 그 사람이야 그런 것 상관없이 역시나 이번 생에서도 이야기를 듣고 또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에 빠져 있었답니다. 어릴 때부터 요재지이를 비롯한 청나라의 기담을 즐겨 읽다가 결국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청나라로 건너갔다고 하네요. 당시 청나라에 와 있던 서양 사람들의 배를 타고 먼 서쪽으로 떠난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은 가물가물 하답니다. 어쨌거나 그 사람의 말로는 자신의 생들을 통틀어 가장 즐거웠다고 하네요.

그 이후의 생들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구한말과 일제시대, 한국전쟁을 거치며 그 사람은 태어나는 족족 역사의 풍파에 시달리며 고된 삶을 살아야 했지요. 이야기에 빠져 사는 삶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드디어 20세기 말에 열한 번째로 환생하면서 그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에 푹 빠져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났습니다. 삶이 마냥 평온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들을 얼마든지 읽고, 또 마음껏 쓸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번 만큼은 그 사람이 쓴 이야기가 바람에 날려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손쉽게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었거든요.

자, 이제 문제의 답입니다. 숫자는 물론 그 사람이 열한 번째로 태어난 해이지만, 말하지는 않을게요. 문제를 잘 보시면 열한 번째 숫자는 누구일까요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 사람의 본명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 쓰는 이름이니까요. 그 사람은 자신의 생 중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던 첫 번째, 세 번째, 여섯 번째의 성을 따서 필명을 지었답니다. 이쯤 되니 이제 짐작을 하셨겠죠?

바로 유권조님입니다.

 

(*주의: 이 글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은 하나도 고증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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