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하다. 평이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듯 하다가 가드를 내린 마음에 쿡 와 박히는 표현을 던지고, 귀여운 주장을 전개하는 듯 하다가 결코 얕지 않은 화두를 내놓는다. 80년대의 다양한 사회적 소재를 채용하여 과하지 않게 극에 녹여냈으며, 한 장면 한 장면이 친근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살짝 비딱한 십대 몽상가의 첫사랑은 작품 전체에 투명한 빛을 얹는 백미이자 극을 이끌어가는 원동력. ‘예쁘다’는 말은 상대를 내려다보는 표현 같다며 ‘아름답다’는 말을 택하는 소년이 어떻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 3편에 이르면 독자는 여태껏 따라온 모든 이야기가 철저히 계산된 직조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메타적으로도, 그리고 작품 내적으로도. 나이에 비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지나치게 잘 파악하고 있는 주인공에 대한 의문, 중간중간 독자의 마음을 내려앉게 하는 알 수 없는 긴장감, 곳곳에 노이즈처럼 흩뿌려진 힌트가 작품의 마지막에 한데 엉겨 치밀한 전체 그림을 드러낸다. 그 과정에 과함이나 부자연스러움이 없다. 다시 한 번 훌륭하다.
학생 화자의 톤이 갖는 장점-거리감 없음-을 문체 전반에 끌어 온 것도 좋은 전략이다. 덕분에 SF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파편적인 정보를 허술하게 묶어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과학 기술의 발전과 대중의 요구, 상업경제 논리를 절묘하게 버무려 낸 사회상 역시 뛰어난 개연성을 자랑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허구임을 눈치채기 힘든 매끄러운 무대를 만드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 무대를 배경으로 일인칭 주인공의 감정이 한 꺼풀, 한 꺼풀 쌓여 만들어지는 서사는 파괴적인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