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가 <아이스크림은 빨간색으로>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담담하게 현실을 그려내지만 어찌 보면 신파극과 같은.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에는 나와 유리라는 한 쌍의 남녀가 등장한다. 그들이 왜 그렇게 고달프게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고 하니, 양쪽 집안에서 둘의 사랑을 반대해서였다. 젊은 남녀가 서로만 의지하며 살아가기에는, 사랑만을 믿으며 살아내기에는, 현실은 겨울처럼 냉담하기만 하다.
‘나’는 인력사무소에서 건수가 있을 때만 일하고, 유리는 미용실에서 일했지만 새해 첫 날에 해고당한다. 현실은 이 두 사람에게 사랑의 위안을 안겨주기는커녕 참 모질게, 팍팍하게 군다. 돈이 없어 추운 겨울임에도 마음껏 난방도 못 켜고 전기장판도 사지 못한다. 유리가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도 ‘나’는 전기장판을 검색만 해보고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택배 상하차 일을 하다가 같은 조로 일하던 남자가 갑자기 달려드는 바람에 머리를 크게 다치고 만다. 치료비 때문에 다쳤다는 사실을 유리에게 들통이 나고 혼나기까지 한다. 유리는 화를 내지만 그를 완전히 내치지는 못한다. 풋사랑이지만, 최소한의 의리는 지키려는 듯이.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을 꼽으라면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째는 캐릭터성이고, 둘째는 묘사를 통해 드러나는 선명한 이미지이다. 캐릭터성은 사실 ‘나’보다는 유리에게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유리는 겨울에 잇몸에서 피가 나고 추위를 잘 타는, 체력이 약한 여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에 수박바를 고집하는 유별난 여자다. 어린애 같이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르는 한편, 어떻게든 미용실에 나가 돈을 벌려고 애쓰는 인물이다. 이 순진무구함과 어른스러움이 어우러져, 그녀는 꽤 신비로운 캐릭터로 비치게 된다. 두 번째로 흥미로운 점은 묘사이다. ‘나’의 시점을 통해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나’는 보이는 세상을 가감없이 묘사한다. 그가 보여주는 겨울의 차가움과 소박한 따뜻함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유리의 잇몸에서 흐르는 피와 수박바의 빨강이 걱정스러운 대비를 보여준다. 한겨울하면 새하얀 눈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추운 데다 칙칙하기만 하다. 또 진눈깨비가 막 내린 후의 길거리처럼 질척하기만 하다. 그의 눈을 통해 보이는 세상에 대한 묘사는 이처럼 하양과 빨강의 대비처럼 선명한 이미지로서 살아난다.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슬픈 감정에 매몰될 것 같은 신파적 감성이다. 흔히 신파극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슬프다고 울부짖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절망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처럼 현실을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신기하게도, 주인공이 현실을 대하는 태도가 담담함에도 불구하고 신파의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신파로 느껴지는 포인트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전형성이다. 한 쌍의 남녀가 있다. 그들은 가난하고,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아이스크림과 같은 소시민적인 행복을 추구한다. 이런 포인트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전형적인 부분이라 볼 수 있다. 또 다른 포인트는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이다. 유리는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 ‘나’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를 떠보지만, ‘나’는 유리에게 정말 그걸 원하는지 역으로 물어본다. 유리는 장난스럽게 초심 운운하며 ‘나’를 혼내지만, 결국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이스크림 심부름을 보낸다. 유리는 현재 상황에 절망을 느끼고 포기하려 하지만 애써 슬픔을 억누르고 ‘아이스크림’이라는 도피처로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 작은 소박함만이, 그녀의 연인이 사주는 아이스크림 하나가 그녀가 현실을 견디는 단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를 외면하고 도망가버리는 이런 부분이 전형적인 신파적 전개라고 느꼈다.
지금까지의 리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리의 캐릭터성과 묘사를 통해 드러나는 선명한 이미지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신파극과 같은 이야기의 전형성이나 위기를 극복하는 단계에서 보여지는 전형성이 아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