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액자와 작지만 강렬한 그림 감상 브릿G 추천

대상작품: 맨발로 릴을 추면서 – (3) (작가: 장아미, 작품정보)
리뷰어: 달바라기, 1월 17일, 조회 81

(회사 강의 중 몰래 쓰는 중이에요.. 오탈자는 양해부탁드립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이 이야기는 액자식 구성입니다. 하지만 액자 내부가 등장하는 건 후반부의 후반부에요. 프레임이 이야기의 8할 가까이를 차지하고, 그 안에 담긴 그림은 액자 구석을 조그맣게 차지하고 있는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거대한 액자와 그 안에 담긴 작은 그림은 완벽한 균형을 이룹니다.

액자의 테두리에서 주인공 ‘나’가 낯선 땅에 이사와서 겪는 일들,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나중에 드러날 액자 속 그림과 언듯 별다른 연관이 없어보임에도, 작지만 인상적으로 다가올 그 그림을 밑에서 받춰주고 있어요.

왜일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정확한 답은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마도. ‘그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나’가 겪는 일들을 함께 공유하며 ‘나’의 무겁고 지친 감정에 우리도 젖어든 상태가 되고, 우리는 무디게 날선 ‘나’의 감정 끝에 함께 서서 ‘그 비극’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우리가 그 이야기를 접하기 전에 무엇을 느꼈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니까요.

이 작품에서 가장 무겁게 다가온 건 ‘과거의 비극’ 자체가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나’의 감정 상태였어요. ‘나’의 삶 속에서 ‘그 사건’을 알게 된 경험은 끝까지 그림자를 드리고 있을 것 같아요.

바로 이런 무거움을 남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커다란 액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득 떠오른 게 하나 있는데-.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지옥의 문’입니다.

대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턱을 괴고 앉아서 생각하는 남자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생각하는 사람’은 원래는 ‘지옥의 문’이라는 더 커다란 작품의 일부잖아요. ‘지옥의 문’에서 이 생각하는 남자는 위화감을 흘리고 있어요. 온갖 감정에 휩싸인 육체에 둘러싸여 있는 와중에, 이 남자는 문 위에 조그맣게 앉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으니까요.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이게 왜 그렇게 대단한 작품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나요? 전 그랬어요. 물론 조각 자체는 아름답지만, 작품에 공감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니까요.

하지만 ‘지옥의 문’을 알게 된 후로는 ‘생각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느낌도 달라졌어요. 그의 고뇌와 번민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거죠. ‘생각하는 사람’을 둘러싼 거대한 욕망의 프레임이 그 앞에서 생각에 잠긴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결정하게 해준 거에요.

이 작품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액자 ‘나’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액자 속 그림 ‘그녀의 이야기’가 그렇게 상호작용하며 독자가 이야기를 보는 방법을 정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읽고 또 생각하는 과정이 굉장히 신선한 작품이었습니다.

 

이것과는 별개로, 굉장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이 작품이 마음에 남은 이유를 써보고자 합니다.

스포일러 살짝 있습니다. 태그로 가릴 정도는 아니고..

이 작품 속에서 아래층 노인은 그렇게 드물지도 않는 ‘정신나간 노인’이죠. 많은 현대인들이 무시하고 피해다니고 그 존재를 지우고 싶어하는 대상이란 건, 아프지만 분명한 현실이에요.

하지만 ‘나’는 그 노인의 과거를 알게 돼요. 단순히 노망난 늙은이가 아닌거죠. 노인의 ‘과오’는 잠시 내려두더라도, 그에게도 젊고 매력적인 시절이 있었고, 절친이 있었으며, 극적인 사건도 있었던 거에요.

이게 과연 이 노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요?

서울에서도 도쿄에서도 많은 노숙인들을 볼 수 있어요. 저도 어릴 땐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나쳤지만, 언제부턴가 그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과거를 상상하게 됐어요.

그들에게도 엄마품에 안겨 잠들었던 시절, 아장아장 걸었던 시절, 친구들과 신나게 놀던 시절, 사랑하고 상처 받았던 시절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물론 전 그들의 진짜 과거를 몰라요.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삶 속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죠. 언뜻 가치 없는 삶처럼 보이지만, 우리 중 누구보다 더 따뜻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의 미래일지도 몰라요.

일본 도쿄의 어느 역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누군가의 비극을 전시한다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기에 조금 조심스러운 사진이지만, 제게 굉장히 많은 여운을 남긴 사진이라서 가져왔어요.

저 노숙인은 그 역에서 유명했던 거 같아요. 자주 봤거든요. 딱히 구걸을 하지는 않았고, 그저 추위와 더위를 피해, 그리고 잠자리를 위해 역을 찾아오고 있었어요.

사진은 그가 계단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이에요. 산 건지 받은 건지 알 수 없는 빵을 옆에 두고.

사진을 보며 저 사람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생각했어요. 꿈은 누구나 꾸는 거니까.

꿈 속에서 그는 조금 더 행복했을지 모를 과거를 노닐고 있을까, 아니면 지금과는 다른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까. 그가 부디 좋은 꿈을 꾸고있길 바라면서도,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느낄 현실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좋은 꿈을 꾸고 있을 때, 저 사람에게 진짜 현실은 어느 쪽일까.

호접지몽이 생각났어요. 그가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비가 그가 된 꿈을 꾸고 있는걸까.

저는 저 사람이 부디 행복한 현실을 살고 있다가 그저 차가운 계단바닥에 누워있는 꿈을 꾸고있는 것일 뿐이길 바라는, 가능할 리 없는 소원을 빌기도 했어요.

굉장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리긴 했지만, 이 작품 속 그 노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전 이 사진 속 노숙인을 떠올렸어요.

우린 우리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삶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죠. 누군가에겐 꿈 같은 현실이, 누군가에겐 꿈이길 바라는 현실일 수도 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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