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목만 보시고 본 작품을 읽으신 독자분들 중에는 ‘나 좀 낚인 듯…’ 이라며 한숨을 쉬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싶어 걱정도 됩니다만, 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 작품은 [하이틴 로맨스 좀비물]이었습니다. (‘하이틴’이라는 단어에서 제 연차를 드러낸 것 같아 흠칫했지만 그냥 적었습니다.)
작품 전체에서 흐르는 분위기를 보자면 ‘혐오의 일상화’ 혹은 ‘혐오의 트렌드화’라고 느껴졌습니다. 작품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십 수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근 미래인데, 좋아하는 반 친구에게 표현도 못 하고 있는 주인공은 평화롭던 수업 시간에 끔찍한 재난 상황을 마주 하게 됩니다. (참고로 주인공의 학교는 남고입니다)
당연한 수순처럼 이어지는 단체 패닉과 지겨워도 안 나오면 허전한 트롤 짓하는 바보들로 인해 주인공과 교내의 학생, 교사들은 큰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 와중에도 민첩하게 움직인 몇몇 학생들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불안한 미래를 준비합니다. 여기까지는 좀비 재난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라 무난하게 읽히며 제가 좋아하는 좀비물 특유의 블랙 코미디 또한 깨알 같은 즐거움을 줍니다.
문제는 고립된 학생들 사이에서 커플 매칭 앱에 가입한 사람들만 좀비가 된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참고로 이 앱은 한 쪽 성별만 가입 가능한 앱으로 보입니다) 주인공은 생존에 최선을 다 하면서 자신의 취향까지 숨겨야 하는 이중고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 와중에 맘에 두던 친구와의 관계 또한 묘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게 됩니다.
이 작품의 매력적인 요소를 두 가지 꼽자면 주인공과 작품 전체에 흐르는 유쾌한 분위기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요즘 웹 소설의 트렌드인 [복잡한 상황에서도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임기 응변과 행동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학교 건물에 고립된 상황에서 다수의 학생들은 이 사태의 원인을 성 소수자로 몰아가고 있으며, 건물 밖에는 사람을 물어 제끼는 괴물들이 넘쳐 나는 상황, 흔히 뇌 정지가 온다고 할 수도 있는 사면 초가의 처지가 됩니다.
다른 얘기를 덧붙이자면 우리가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보면서 ‘아니 좀비들 좀 나타난다고 현대인들이 저렇게 멍청한 행동만 작정한 듯 해댈 리가 있냐.’ 라고 생각하시는 독자 분들도 계실 것 같아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성인이 된 후에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었는데 수 십 분을 갇힌 것도 아니고 승강기 안으로 연기가 들어오거나 밖에서 비명과 괴물들의 포효가 들리지도 않았지만 제가 ‘갇혔다’ 라는 걸 인지하고 3분도 안 되어 든 생각은 ‘나 죽는 건가’ 였습니다.
10분도 안 돼서 관리 직원 분들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고 솔직히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제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이 작품의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닥친 재난 상황을 대하는 자세와 빠른 판단을 보면 제가 좋아하는 커피 전문점에서 체리 콕을 시켜서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키는 청량감에 짜릿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맘에 둔 친구에 대한 감정 또한 일방적인 호감이었기 때문에 후반에 고구마 전개로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런 우려를 깔끔하게 날려버리는 산뜻한 대처로 제게 체리 콕 한 잔을 더 들이키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은 ‘무릇 좀비물은 현실을 비틀어 꼬아주는 게 맛이다’ 라는 저만의 개똥 철학에 딱 들어맞는 유쾌한 문체로 지옥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게 해 주십니다. 이야기의 진행이 톡톡 튀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인 문장과 글 전체의 분위기가 시종일관 유쾌하다 보니 왠지 읽고 나서 시원한 청량감이 들 수 밖에 없더군요. 어차피 암울함 가득한 미래가 기다릴 뿐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웃을 거리를 찾는 것이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하는 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작품 전체를 흐르는 분위기가 남고의 로맨스이다 보니 혐오에 대한 글을 남기고 맺음을 할까 합니다.
최근의 분위기는 혐오 또한 트렌드가 되어 대중을 이끄는 흐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성 소수자는 그 뿌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역사가 깊은 인류의 취향입니다. 과거에는 종교라는 강력한 통제 시스템이 존재했기 때문에 다수의 혐오가 한 방향으로 뻗을 수 있었지만, 현대는 너무나 많은 종교와 사상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지요. 저도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확실히 지금은 어떤 종교의 교리로 소수자들을 억압의 고리로 묶을 수는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다수의 목소리’ 라는 물리적인 힘으로 소수를 밀어붙이는 경향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스피커가 되어 목소리를 내면 사람들이 복창을 하는 식이지요. 그런 사람들은 혐오의 트렌드를 이끌면서 더 큰 영향력을 얻고 그 힘에 기댄 다수는 그 거대한 흐름의 일부가 되었다는 포만감에 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또한 시대가 바뀌면서 생기는 하나의 흐름이겠지요. 아니면 소수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혐오 보다는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잘 살아보자’ 는 배려와 이타적 마인드가 필요한 세상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포칼립스 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게 살기 팍팍하고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살고 있으니까요.
주제는 조금 무겁지만 이야기는 경쾌하고 주인공은 너무 너무 좋습니다. 좀비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만한 작품이라 괜한 잡설까지 늘어놓으면서 추천을 드려 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