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죄를 지었습니까 의뢰

대상작품: 허수아비 (작가: 배명은,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7년 11월, 조회 168

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쓰는 리뷰인 까닭에 머릿속의 내용을 어떻게 끄집어내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우선은 내가 이 작품을 읽게 된 경위에 대해서부터 잠깐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작품이 브릿G에서 무료로 공개되어있을 때 나는 읽지 않았다.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으로 엮여 나올 때도 이 작품을 내가 읽게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선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릿G의 트위터 계정에서 진행되었던 이벤트를 통해 이 단편집을 받게 되었다. 단편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작품 <허수아비>는 단편집의 가장 첫머리에 수록되어있다.

작품을 다 읽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리뷰를 써야겠다고. 그렇지만 막상 브릿G에 들어오니 리뷰를 쓰는 것이 썩 내키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허수아비>는 종이책으로 출판된 작품이다. 그러한 작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어쩐지 겸연쩍기도 하고, 배명은 님께 누가 되는 리뷰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늘 리뷰를 쓸 때 언어를 신중하게 고르지 않는 편인데, 그러한 것도 이유에 한 몫을 했다.

그래서 나는 배명은 님께 ‘제게 리뷰 의뢰를 주셔요’라고 부탁드렸다. 리뷰 의뢰는 의뢰자가 공개와 비공개를 결정할 수 있다. 만약 이 리뷰가 작가분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영구히 공개되지 않을 터다. 그럼에도 혹시 몰라 이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나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 리뷰에서는 작가분과 브릿G, 더 나아가서는 황금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테니까.

 

 

1. 작위적인 전개(인 것 같은데 사실 정확히는 모르겠다)

나는 이 작품의 초반 전개가 상당히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느껴졌다’고 이야기한 까닭은, 내가 방송작가들의 삶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 B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이 작품의 초반 전개는 상당히 작위적이다.

몇 달 전 ‘문법’이라는 제목으로 용준치킨사우루스 님의 <숙희>를 리뷰했을 때, 나는 테러와 호러의 문법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거기서 나는 일반적인 호러/테러 영화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은 익숙하지 않은 공간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낯선 공간은 아직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기에 무엇이든 가능한 공간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온갖 의심이 싹튼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은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공간으로 이동한다. 그 이동 자체는 작위적이 아니었다.

내가 작위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작가가 주인공을 이 ‘낯선 공간’에 붙들어두려는 수법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한적한 국도변을 달린다. 그러다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차는 고장나버린다.

 

1) 범퍼만 찌그러졌다. 그런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상황이니 막 밟지는 않았을 것이다. 40~60km/h 정도로 서행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가로수를 들이받았는데 범퍼만 찌그러져있는 상황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심지어 신형도 아니고 구형 아반떼인데!! 정말 운이 좋아서 범퍼만 찌그러졌다고 하면, 이제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문제가 남는다. 범퍼만 찌그러지는 정도에 그치는 사고였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니, 나는 이 상황에서 굉장한 작위성을 느꼈다. “안에 타고 있는 주인공에게 신체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의 사고면서, 동시에 주인공을 이 낯선 공간에 붙들어놓고자 하는 것” 말이다.

 

2) 멍청한 조수와 카센터의 괴리

자동차가 고장났다. 와본 적도 없는 동네에서. 근처에는 민가도 드문드문하고 하여간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보통은 보험사에 연락해서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물론 작품 내에서 최 군은 가볍고 멍청한 부류의 캐릭터를 맡고 있으니 긴급 출동 서비스는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카센터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는 인물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근처 카센터에 전화를 하고자 하면 그냥 스마트폰을 꺼내 네이버 검색을 해도 될 일 아닌가? 남의 거주 공간에 무단침입하고 뻔뻔하게 지껄이는 최 군의 행태와, 그걸 가만히 따라가는 김 피디의 모습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비를 피하고자 했으면 차 안에 들어가있으면 그만이고, 하여간 주인공을 낯선 공간에 머무르게 하기에 장치했다고 하기에는 그 장치가 독자(적어도 나 한 사람)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것 같다.

 

3)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그리고 취재는 취재 대상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바로 취재는 미리 취재 대상에게 시간과 장소를 약속한다. 며칠날 내려갈 터이니 그때 시간을 비워주십시요, 같은 거.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최 군의 ‘그냥 여기서 찍고 말죠’하는 말에 넘어가버린다. 미리 약속을 잡아둔 취재 대상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다. 내일 아침까지 차를 고친다면 촉박하게나마 어쩌구저쩌구 하는 장면은 있다. 그렇지만 취재 대상을 변경하는 수순이 너무 과격하고도 뜬금없었다.

차라리 “제 때 못 내려갈 수도 있으니까 스패어로 여기서 하나 찍어놓고, 내일 봐서 내려가던지 스페어를 쓰던지 하죠.” 라고 했다면 조금이나마 더 납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2. 너무 자주 오락가락하는 날씨

왜 굳이 날씨가 오락가락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작품 내의 모든 묘사가 무언가를 의도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산동네는 날씨가 자주 오락가락하니까. 그렇지만 현실적인 소설과 현실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 초반의 날씨 상태는 아래와 같다.

주인공이 휴계소에 있을 때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고속도로에서는 비가 왕창 내려 누군가 사고가 났다. 국도로 빠지니까 비가 잦아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비가 거세진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빗줄기가 앞 창에 떨어진다.

왜 국도로 빠질 때 비가 잦아들었으며, 잦아든 비가 작품 내에서 몇 문단만에 거세지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왜 날씨를 그렇게 설정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휴계소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가 계속 왕창 내리면 안 되는 것인가? 도중에 잦아졌다가 다시 거세져야 할 필요가 있었던 걸까.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행동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때우고자 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3. 비문

비문은 참 많은 글쟁이의 원수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비문이 생기곤 한다. 나는 이 작품 속에도 몇 가지 비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심을 받는 것 중에 하나는 “국도는 고속도로보다 비교적 한산했다”라는 문장이다. ‘~보다’와 ‘비교적’은 같은 의미이다.

국도는 고속도로에 비해 한산했다

국도는 고속도로보다 한산했다.

고속도로와 놓고 보면 국도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비문을 수정한다면 아마 위와 같은 식의 문장이 되지 않을까.

 

또 하나 내가 비문이라고 생각한 문장은 “발걸음이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파르르 떨렸다”는 것이다. 발걸음은 발을 옮겨서 걷는 동작이다. 발걸음이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데까지는 문제가 없다. 옮겨 걷는 동작이 더는 수행될 수 없었다 뭐 그런 의미니까. 하지만 거기에 파르르 떨렸다는 수식은 이상하다. 만약에 “발걸음이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어딘가, 가령 다리가) 파르르 떨렸다”는 거였다면 이것은 비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옮겨 걷는 동작이 더는 수행될 수 없었다는 식의 묘사가 앞서있는 상태에서 파르르 떨렸다는 동작의 주어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독자는 자연히 발걸음이 파르르 떨렸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배명은 님이 발걸음과 다리를 동일한 개념으로 혼동하셨거나, 퇴고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하신 게 아니었을까.

 

+ 황금가지는?

사실 다른 건 몰라도 3번 비문 항목은 있으면 안 되는 항목이었다. 나는 출판 작품에서 비문을 잡아내는 것도 편집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밖에 오타도 몇 개 있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그런 걸 다 잡아내지 못한 걸까. 하여간 좀 아쉽다.

 

그렇다고 단점만 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날씨나 작위적인 내용 전개 모두 초반부에 국한된 이야기다. 그 부분을 넘어가면 작품은 서서히 호러의 맛을 내기 시작한다.

 

1. 소재

사실 소재가 참신했다. 씻김굿-혼건지기굿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그리고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소재를 가져다가 이런 작품을 써냈다는 자체가 좋았다. 심지어 이 ‘혼건지기굿’이 좋았던 까닭은 말도 못하게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실재로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검색하기 전까지 알 길이 없지만, 작품 내에서 혼건지기굿의 당위성을 모두 부여해두었기에 설령 혼건지기굿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굿이라고 할지라도 독자의 독서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2. 정보처리

사실 호러만큼 정보를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장르가 잘 없다. 호러는 독자가 아예 모르게 해서도, 다 알게 해서도 안 된다. 독자는 서서히 알아야 하며 끝에 가서야 모든 것을 이해할 힌트 하나 정도 받아볼 수 있다. 그리고 작품 내에서 독자에게 정보를 흘리는 그 테크닉이야말로 호러 장르를 쓰는 글쟁이의 능력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독자에게 정보를 흘리는 수준이 매우 높다. 시간 순서에 따른 장면 배치가 아니라, 그 시계열을 섞어버림으로서 앞에서 한 이야기가 뒤에서 이해되고, 뒤의 이야기가 앞에서 이미 흘려놓은 것이고. 그 중에서 가장 멋진 문장은 단연 이것이었다.

그 많은 이목에도 실족사인지, 자살인지 불문명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이 문장은 그 자체로 정말 무서운 문장이다. 문장 저 아래에 아득히 깔려있는 모호성이야말로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로 하여금 호러블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여러분, 결말을 보세요. 제 리뷰의 제목이 왜 저러한 지 알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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