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서 실연의 상처란 거의 중세식 고문을 당하거나 산채로 화형에 처해지는 것과 맞먹는 고통으로 여겨진다. 총 맞은 것 같다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느니, 전장에서 죽어가는 군인들과 시한부 인생을 사는 말기 암환자들에게 이런 노래가사를 들려주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그래, 헤어짐은 괴로운 일이고 자신만이 가진 이 고통을 어떻게 해서든 다른 이에게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는 건 알겠다. 그러나 표현이 너무 지나치다보면 종이에 베인 손가락을 쥐고 ‘손목이 통째로 잘려나갔다!’고 호들갑떠는 것처럼 오히려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저 곡이 처음 나왔을 무렵 ‘와. 총을 꽤 자주 맞아 보셨나 봐요?’라는 반응이 많았던 것으로 보면.
이 짧은 단편은 그러한 추상적인 실연의 아픔을 구체화시키는 도구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구체화된 실연의 상처는 바람을 피운 남자를 일격사 시킬 만큼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졌다. 실연상처구현장치의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 등장한 이 바람남은 이 장치에 의해 비명횡사한다. 여자는 그저 목 뒷덜미에 샤워할 때마다 불쾌하게 따끔거릴만한 생채기 하나만 남았을 뿐이다.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장치’라는 요소는 꽤 오래 전부터 유행하던 소재지만, 그것이 징벌적 요소로 쓰인 점은 새로웠다. 다만 그 징벌적 전개가 ‘바람의 대가 = 죽음’의 형태가 되어버렸다는 사실과 동시에, 샤워를 마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애인이 선물한 물건 중 금반지와 구두 등 팔아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챙긴 것이라는 사실과 맞물려 ‘정말로 그 사람을 죽일 만큼 슬프긴 한 건가?’라는 소소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물론 바람을 핀 건 애인 쪽이니 주인공은 무조건 피해자이긴 하지만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