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기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 글을 발견한 건 꽤 이전의 일인데, 그 동안에는 글을 일부러 읽지 않았어요. 1부가 마무리된 다음에 읽어야겠다고 하고선 어째 2부 시작된 다음에야 읽기 시작했는데, 변명하자면 짧은 느낌이 들어서라고 해도 될까요.
색다르고 새로운 세계관의 이야기여요. 그리고 그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부차적인 설명이 항상 따라옵니다. 매 편,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중간에 꼭 그 세계에 관한 설명이 어떤 인물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요. 설명하는 사람은 보통 나중에 ‘무지개’라는 여행자가 된 아르고핀이며 가끔 ‘달무리’ 지크이지요. 그것이 싫다는 말은 아니어요. 다만 빈도가 조절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글의 분량이 적은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매 편 내용에 어떤 요소들을 다른 시기 다른 사람의 입으로 설명하는데 그게 흐름을 끊는다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소제목이나 챕터별로 구분되는 글이 아니다보니 어느 부분에 그런 것들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혹은 너무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아 일부러 이런 방법을 택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한 편 한 편 연재를 따라갈 때는 모르겠는데 쌓인 글을 읽으면서는 확실히 흐름을 끊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참 읽고 난 뒤에는 익숙해져요. 이미 익숙해진 서술 방식을 바꿀 수도 없겠지요. 그래서 우선은 고치기 도무지 어려운 요소인 부분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네요.
세계관 설명에 할애하는 부분을 빼면 글 내용이 짧다고 느껴지기도 했어요. 설명 파트가 긴 게 아닌데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과 크게 다른 이유가 아닌데, 흐름을 뚝 끊어버리기 때문이죠. 몰입해서 연결해 읽지 못하고 갑자기 긴 각주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것……. 모르겠네요. 1부가 끝난 뒤에는 그게 좀 더 이 글에 어울리는 서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흐름의 중단에 관해서는 고민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내용을 쭉 따라가면서 몇 가지를 메모했습니다.
일단은요, 이 글은 수상한 사람이 많아요. 수상쩍은 도둑 지크, 정체 모를 지하 여행자, 착한 척하지만 제일 나쁜 왕자, 그리고 왕국 전복을 위한 최종 보스 외무대신까지.
어, 그리고 읽다가 좋았다고 느꼈던 설정은 고대어 부분이었어요. 누가 읽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되는 글자라니! 게다가 마력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복구될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한 방법으로 보관되고 새겨지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설정 중에 중력도 마법이며 강력한 마법이다, 하는 이야기도 나왔었는데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세계를 탄탄하고 멋지게 만들어줬던 것 같아요. 마법의 범위가 넓고 다양하게 적용되는데 그게 사람에게만 해도 이렇게 다양한데 세계를 살아가는 각 존재와 요소들에게는 어떻겠나, 싶어서 조금 두근두근 했답니다. 상상력에 경의를 표해요.
음, 불의 칼을 들고 빈민가로 갔던 것이 왜? 싶었는데 이건 작중에 끼워주시는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어요. 만약 그걸 인물 혹은 전개 내용을 통해 설명해야 한다면 글이 길어지고 답답해지고 늘어질 것 같았고, 이 방식을 택한 작가님의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흐름……. 저는 안타깝고 복잡하고 어려워지고요. 아무튼, 안전 문제인가 싶던 것들이 돈 문제와 권력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사정이었다는 것이 독자에게 알려지면서 상황은 좀 더 정치적으로 흘러가게 되지요.
왕족들의 나약함이 조금 이해 가지 않아서 글을 읽으면서 내내 갸웃거렸는데요. 결혼식에서조차 갑옷을 입고 공주들이 칼을 드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전투민족의 나라 느낌이 드는 한편, 정치 감각 하나도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는 사람들 모임 같기도 했어요. 저는 끝까지 외무대신이 문관일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는데 이 분도 무관 출신. 세 공주가 모두 황위다툼에 관심이 없던가 아니면 그냥 첫째가 할 것이라고 믿었던가……. 그게 아니면 이렇게 정치감각이 없는 것도 준비가 안 된 것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인제핀은 섭정을 하게 되면서 떨었고, 의지 되지 않는 남편이자 외무대신의 아들인 무드릭을 보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러 나와 더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는데요. 잘 준비된 왕 노릇 할 꼭두각시처럼 보였답니다. 설령 그녀가 전에 아르고핀을 암살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더라도요. 아니, 그 부분은 오히려 ‘암살을 알고도 막지 않았음.’ 이므로 자기가 다른 왕족을 없애고 왕위에 오를 길을 안전하게 닦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아무튼 저는 이 왕족들이 왕위에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는 데 손을 들어주고 말았습니다. 둘째요? 잠깐 불러서 왔다가 간 다른 나라 시집간 언니 정도의 이미지이며, 마찬가지로 그다지 왕족 느낌은……. 잘 모르겠습니다. 나라 규모가 작아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건지. 시키니까 하는 건지……. 일단 작중 왕위에 제일 집착하는 것이 외무대신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음, 중반까지 이 자식에게 뭔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냄새를 풍겨대던 지크는 뜻밖의 순정파로 밝혀졌고요. 작가님이 로맨스에 자신이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의아할 정도의 전개……. 그의 수상함은 공주 얼굴에 상처를 내는 대신 자결하는 데서 정점을 찍어버립니다. 죽다니요. 그 다음에 공주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죽어버립니까? 이 책임감 없는 놈 같으니! 이 부분에서 이 자식 사랑이다. 이걸 설명할 수 있는 건 사랑뿐이야! 라고 외치긴 했지만 모자란 사랑꾼이라는 의견을 슬그머니 꺼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더치가 귀하디 귀하다고 설명하던 별 박힌 청금석으로 만난지 얼마 안 된 지크를 살려내는 부분에서는 더치가 지크를 사랑하기라도 하나, 하는 떨리는 심경이 있었습니다만 다행히 그것이 그의 보물이 아니고 그의 아버지가 쫓던 보물이었다는 점에서 위험한 삼각관계의 형성은 막힌 것 같습니다. 일단 살아나기는 했는데, 그의 증언을 따르자면 지크는 의뢰를 하러 갔다가 공주와 눈이 마주쳐 첫눈에 반한 거 아니냐고요. 사랑에 빠진 거라니까요? 몸 담고 있던 직장까지 잃어가면서 공주의 목숨을 구하려 하는 순정파. 저는 이런 캐릭터들을 꽤 좋아합니다. 그래도 당장의 무례를 피하기 위해 나중의 재앙 앞에 아르고핀을 던져놓고 죽는 이상한 상황만 또 안 벌어지면 좋겠네요.
어, 인제핀과 그의 기사들이 너무 늦게 등장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라가 엄청 작지 않으면 이게 전개가 이렇게 후다닥 당겨질 수 있나? 생각이 들 정도였고요. 아니, 고 전에 잠시 나와서 빠르게 숲을 가로질렀다 쳐도 그렇게까지 빨리 아르고핀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니? 게다가 방금 나왔잖아? 하고 시간과 공간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구원자였으니까요. 그쪽 사정이 좀 더 자주 비춰졌다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이해가 되었을 텐데, 인제핀 부분의 설명이 모자란 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외무대신의 말에만 농락당하다가 갑자기 왕으로 휙 돌변할때 아버지의 죽음보다 앞선 계기가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아요. 단계적 발전은 중요하죠.
이야기가 막힘 없이 흘러간다는 건 아주 좋은데, 너무 굴곡이 없다는 건 단점일 수 있겠습니다. 작가님의 중단편에서 항상 해피엔딩으로 글이 끝나니까 어떤 상황을 맞닥뜨려도 잘 끝날 거야, 하는 안도감이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는데요. 연재물에서 너무 고저의 변화가 적다는 느낌? 혹은 위기가 너무 빨리 끝나버리던가요. 그런 갈등 상황을 못 견디고 빨리 끝내버리고 싶으신 걸까 생각하며 읽을 때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전쟁 같은……. 이게 아르고핀의 여행기인 건 알겠는데 1부에서 그녀가 여행을 떠나게 되는 좀 더 결정적이고 그럴듯한 계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이야기가 잘 해결되어서 성으로 돌아간다는 전개일 줄 알았는데 여행을 떠나버려서 좀 당황했거든요. 언니들이 너무 관대했어요. 그래도 공주인데……. 아니 상황이 어떻게 허락되고 아귀가 잘 맞아서 공주를 보호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디 속하지도 않은 자유 도둑인 지크와, 서쪽 나라 사람도 아닌 수상쩍은 덩치 아저씨 더치 두 사람한테 뭘 믿고 공주를 덜컥 맡겨버리느냔 말이에요? 도둑이랑 외국인인데요. 고작 둘? 돈만 쥐어 주고 그렇게 출발시켜도 되는 거예요? 걱정이 안 되는 거예요? 여태 여행이 너무 하고 싶어서 나라의 귀한 보물 들고 결혼식날 날라버린 막내를 그냥 일 잘 해결되었으니 되었다 하고 보내줄 수 있는 거예요? 왕위에 욕심이 없을 뿐 아니라 가족끼리의 끈끈한 정도 모자란 것인지 생각하며 혼란스럽게 1부 끝부분을 읽어야 했다는 걸 고백해야겠습니다.
음, 전쟁이 일어났던 상황 묘사가 부족한 탓인지 학교 단체 패싸움 정도의 규모로만 보여졌는데요. 이게 국가 크기가 크지 않아서 군대 규모도 작기 때문이라면 앞서 의문을 제기했던 인제핀과 그의 기사단은 어떻게 그렇게 빠른 구원군으로 등장할 수 있었는가? 가 해결되겠군요. 작가님이 공지에 올려놓으신 지도를 보기는 했는데, 지형이 있는 것이지 축척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전에 끌어온 갈등 상황에 비하면 마지막 전쟁 부분이 헛바람 빠지듯 끝나버려서 힘이 빠진 느낌도 있네요. 그래서 더 배신감이 심했는지도 몰라요. 왜 아르고핀이 가족과 갈등을 빚으며 결과적으로 어떻게 여행자가 되는지는 안 다뤄주는 거지. 가고 싶어요, 하는 여자아이를 그냥 떠나라고 응원해주는 것이 이 동네 풍조인가? 하는 의문들이 구름처럼 피어오르니까요. 싸움 도중에 이해관계가 같이 충돌했으면 좋았을 텐데, 반지라는 사기템으로 상황이 쉽게 해결된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없이 어떻게 아르고핀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겠어,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
1부를 마치고 2부에 들어서면서는 말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줄일까 해요. 너무 횡설수설한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 2부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요소는 역시 고래가 아닐까 생각해요. 앞서 고래빵 이야기때 ‘무지개’ 아르고핀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녀는 고래를 봤을 때 제일 먼저 고래빵을 떠올리더라고요! 저는 이런 소소한 디테일이 찰칵 맞아 들어갈 때의 그 감각을 너무 사랑해요. 작가님이 섬세하게 꾸려나가는 이야기를 즐겁게 따라가고 있어요. 다만 2부에서는 좀 더 확실히 위험하고! 좀 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 기대감을 전달할 뿐이어요.
헉, 이렇게까지 횡설수설해버릴 줄 몰랐습니다. 약간 흥에 취해 적어 내려간 리뷰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일전에 다른 분께서 이것을 의식의 흐름 리뷰라 명명해주셨습니다만 모자란 것을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음, 2부에서도 여전히 수상한 인물들이 튀어나와요! 수상함을 쫓아 앞으로 나가는 여정이고요. 아르고핀의 환상적인 여행들을 쫓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글을 읽는 분들께는 큰 후회가 없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특히나 모험기를 좋아하시면 정말로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마지막 편 읽고 나서 조금 화가 난 게 있는데요. 다음 편이 없더라고요. 무슨 말 할지 아시죠? 아마도 2부에서 아르고핀은 좀 더 엄청난 위험에 빠지고 더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성장할 거예요. 1부에서처럼 폭신한 쿠션 마련된 전개가 아니고요. 아프게 부딪히고 깨지면서 크는 것이 모험기의 묘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저의 기준과 바램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기대는 해볼 거여요. 갓 모험을 시작했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으니, 이제 준비해놓았던 쿠션들은 슬쩍 빠져도 될 것 같거든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성실한 연재를 기대하여요. 모험기에 굶주린 사람이라 더욱 반가운 글이었네요! 빨리 다른 보석들 이야기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