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소재가 단순명쾌합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타입이에요. 다양한 이야기가 정교히 얽힌 이야기도 충분히 매력적이죠. 하지면 호러에서만큼은 이런 타입이 더 끌립니다. 어디까지 주관적인 취향입니다. 호러에서만큼은 머리를 쓰기 싫거든요.
이렇게 쓰고 나니 스스로가 게으르다는 것을 새삼 깨달아서 잠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고 오겠습니다.
주인공은 충동적으로 문신을 결심합니다. 손목을 가늘게 감싸는 뱀 모양의 문신입니다. 어느 날 주인공은 자신의 손목에서 뱀이 자라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간단한 줄거리이지만 무언가의 숙주가 되었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유려한 문체로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매일 주인공의 몸을 갉아먹는 뱀처럼 말입니다.
이상을 알아채는 데에 3개월이나 걸린 것도, 심지어 동료의 눈으로 알아채는 것도 나름 현실적입니다. 또한 이는 ‘모르는 사이에 미지의 존재로부터 자신이 파먹치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아침에 이불을 들췄더니 그 날 밤 동침했을 거미와 눈 마주쳤을 때의 느낌이랄까요. 그렇습니다 경험담입니다.
중반까지의 완급조절이 훌륭합니다. 문득 깨달은 공포가 일상을 아주 천천히 조여옵니다. 뱀은 붉은 흔적을 남기며 심장을 향해 천천히 나아갑니다. 거대해지는 뱀, 스스로 심어버린 미지의 기생충 같은 존재의 묘사도 충분히 전율스럽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은 후반부입니다. 초중반부의 깔끔함에 감탄하며 보고 있었는데, 뒷심이 부족했는지 마무리가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배치된 요소들은 아주 좋습니다. 살을 파먹히는 간지러움, 피부를 뜯을 생각까지 하는 주인공, 심장에 자리잡아 꿈틀거리는 촉감까지. 결말을 기대하기에 아주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한 문단에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끝납니다. 마지막 문단이 압도적으로 길어 균형이 깨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약 열 세 문단에 걸쳐 조성했던 긴박감이 흔들리고 맙니다. 저는 숙주의 몸을 구속시킨 뱀이 어떻게 생겼는지, 파먹히는 주인공은 말미에 어떤 공포를 느꼈는지가 궁금합니다. 잘 정돈된 산책길을 한참 걸어가다가 갑자기 오토바이에 납치되어 출구에 도착해버린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걸어간 풍경과 스쳐간 풍경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다음에는 마지막까지 작가님의 체력이 받쳐 주길 바랍니다.
큰일이네요. 이 글을 쓰고 나니 필자도 문신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 말라면 하고 싶어진다는 인류의 유구한 본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