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비행 개발이 막 시작되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때는 아직 우주에 대한 지식이 적어서 지구 외부에 나갔을 경우 어떤 일이 닥칠지 정확히 몰랐기에 사람 대신 동물을 캡슐이나 로켓에 태워 보냈습니다. 무턱대고 사람을 태워 보냈다가 행여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된다면 여론도 안 좋아지고 우주 비행에 지원할 사람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랬었죠. 당시 우주 비행을 두고 한창 치열하게 경쟁하던 미국과 소련 모두 그랬습니다. 미국은 침팬지를 태워 보냈고 소련은 개를 태워 보냈죠. 미국이 침팬지를 태워 보낸 것은 침팬지가 인간과 가장 닮은(물론 외모는 아니에요) 동물이라 침팬지를 통해 보다 정확하게 우주 비행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죠. 침팬지는 인간을 위한 일종의 리트머스 종이였던 것이죠.
그렇다면 소련이 개를 태워 보낸 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어떤 학자는 그때가 소련이 점차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체제가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으로 삶이 정상 궤도에 오르니 집집마다 개를 반려하게 되었고 그런 유행 속에서 늘 인간 곁에서 묵묵히 충성하는 개의 모습이 사회주의 노동자 영웅의 이미지가 되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미국은 모르모트를 우주로 날려보낸 반면에 소련은 자신이 추앙하는 이미지를 우주로 날려보낸 셈이죠.
이유가 어찌되었든 정작 탑승했던 침팬지나 개 모두 말로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침팬지들은 비행 후 1년 안에 죽거나 병과 스트레스로 원래 수명의 절반도 채 살지 못했고 소련의 개, 라이카는 다시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죠.
‘우주에서 돌아온 지옥견 라이카의 복수’는 바로 그 라이카가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그러나 여기의 라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스푸트닉의 연인’에 나오는 ‘라이카’처럼 낭만적인 이미지는 아니에요. 그건 이미 ‘지옥견’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겠지요. 네, 정말로 지옥견입니다. 라이카는 자신을 우주로 내다 버린 인류에 대한 복수심으로 똘똘 뭉쳐 모처럼 돌아온 고향인 지구를 그야말로 지옥으로 만들고 있으니까요. 라이카로 인해 인류는 종말의 위기에 내몰립니다.
아, 그런데 어째서 고작 개 한마리가 인류 전체를 위기로 몰아갈 수 있냐고요? 그게 가능합니다. 소설 속 라이카는 머나먼 우주까지 여행하다 외계 종족을 만나게 되었고, 우리가 잘 아는 둘리가 그랬듯이, 그들의 측은지심으로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을 라이카에게 심어준 것입니다. 그리하여 라이카는 자신이 우주로 떠난 뒤 정확히 100년이 되는 2057년 11월 3일, 지구로 돌아온 것입니다.
인류를 응징하기 위해.
꽤 재밌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소련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 퉁구스카 운석 추락 사건과 라이카를 매끄럽게 잘 엮었더군요.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에 소년 잡지에서 즐겨 읽었던 사건들을 오랜만에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감회가 참 새로웠습니다. 읽다가 과거의 그 시간 속으로 훌쩍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작가도 어쩌면 자신의 추억 속에 알알이 배여 있는 것들을 따다가 소설로 잘 조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더군요. 일단 라이카가 외계 종족에 의해 초능력을 얻는다는 설정만 해도 ‘둘리’가 있고 또 <스타트렉> 첫번째 극장판도 있으니까요.
<스타트랙>에선 라이카가 아니라 보이저 2호가 까마득한 시간 동안 꾸준히 항행하여 결국 초고도 문명의 외계인을 만나 엄청난 능력은 물론 자의식마저 지닌 존재로 업그레이드 하고 마치 ‘블레이드 러너’의 룻거 하우어처럼 자신을 창조한 이를 만나기 위해 지구로 다시 돌아왔었죠. 저는 이 영화를 아주 어릴 때, <주말의 명화>로 봤는데 설정과 마지막 장면 연출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영화의 내용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소재와 설정 그리고 전개에서 저도 모르게 아련한 추억의 내음을 물씬 맡게되니 흥미롭게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두운 결말로 나아가지 않고 따스한 결말로 잘 맺어줘서 말이죠. 생각해 보니 라이카가 정녕 원했던 것은 소설이 보여줬던 그대로일 것 같습니다. 실제 라이카는 늘 굶주림 속에서 도시의 빈민가를 떠돌아 다니던 개였죠. 더러운 떠돌이 개가 다 그렇듯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다운 사랑 한 번 제대로 못 받아봤을 것입니다. 때론 아이들이 던지는 돌맹이 세례도 당했을 것이구요. 우주 비행 훈련을 위해 끌려갔을 때가 라이카에겐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보는 사람의 사랑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얌전히 배운대로 행동하고 시키는 것은 뭐든 했는데 결국 우주로 버려졌으니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가슴에 얼마나 커다란 한으로 남았을까요? 그걸 생각하면 소설의 결말은 충분히 납득됩니다. 우리도 경험으로 잘 알듯이 배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사랑밖엔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특히 반려견이 있으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저는 고양이 집사입니다만 다를 건 없겠죠. 제2의 라이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의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되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