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우리, 또 하나의 지구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파타 모르가나, 알거나 모르거나 (작가: 엄정진, 작품정보)
리뷰어: 달바라기, 17년 10월, 조회 71

원래 한참 전에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이제서야 쓰게 되네요. 작가님께도 쓰겠다고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생각의 흐름대로 적어나간 리뷰라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요즘 브릿G 리뷰의 질이 많아 올라서..^^;;

 

단문응원에도 썼지만, 전 이 작품을 보면서 ‘어나더 어스(Another Earth)’라는 영화를 떠올렸습니다. 처음 들어보신다고요? 그렇군요. 네, 한국엔 정식수입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 일본에 있을 때 봤어요.

소설 리뷰에 비슷한 소재의 다른 작품을 소개한다는 게 리뷰의 역할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작가님도 이 영화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 언급하고 가고자 합니다.

노파심에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말씀드리지만, 두 작품은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소재의 ‘이미지’가 비슷할 뿐이고 이를 다루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또 이 이미지 역시 여러 곳에서 사용된 적이 있고요.

로다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성이 있습니다. MIT에 합격한 17살의 수재이고, 이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죠. 로다는 기쁨에 들떠 음주운전을 하다가 하늘에서 반짝이는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교통사고를 내요. 상대방 차량에는 존이라는 남성과 임신한 아내, 그리고 어린 아들이 타고 있었어요. 하지만 살아남은 건 존 혼자입니다. 그렇게 한 가족을 파괴하고, 한 남자의 삶을 무너뜨린 로다는 유죄를 선고받고 징역을 살게됩니다. 그동안, 로다의 정신을 빼앗았던 밝은 별이 점점다가오고, 그게 또다른 지구라는 게 밝혀져요. 지구2라는 이름도 붙죠. 지구2는 원래 지구1과 완벽하게 같았는데 서로가 소통을 한 시점부터 조금씩 차이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양쪽에서 우주선으로 사람을 보내는 기획까지 진행돼요. 몇 년 뒤, 사회로 돌아온 로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속죄를 위해 존을 찾아갑니다.하지만 존은 로다를 알아보지 못했고, 존을 눈 앞에 둔 로다는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해, 자신을 청소서비스 직원이라고 속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돼요. 영화 역시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결말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죠. (전 지구1의 로다는 속죄에 실패했으며 존은 로다를 용서하지 못했고, 지구2의 두 사람은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지구2’는 맥거핀에 가까워요. 이 영화의 중요한 주제는 ‘속죄’이고, 이걸 이야기하기 위해 ‘지구2’를 끌어들이는 것뿐입니다. 물론 아주 매력적인 방법으로요. ‘파타 모르가나’와 차이점이라면, ‘지구2’는 정말 눈앞에 있는 물리적 실체이며, 당장이라도 우주선을 타고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영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파타 모르거나, 알거나 모르거나’의 이야기로 돌아오죠.

매우 흥미진진한 시작입니다. 하늘에 거대한 지구가 떴는데, 어째서인지 사람의 눈에만 보이고 카메라 같은 장비로는 보이지 않아요. 여러가지 사회현상을 일으키던 하늘 위의 신기루 지구 ‘파타 모르가나’는 10년 뒤에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이후, 인류는 그 10년 사이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를 맞이합니다. 파타 모르가나 세대는 그동안 인류가 인지조차하지 못했던 거대한 고독을 뛰어넘고 또 하나의 지구에 있는 자신과 소통을 해요. 이 세대는 인류사회를 크게 바꿔놓습니다. 하지만 이 세대가 세상을 떠나자, 인류는 또다시 변화에 직면해요.

그 변화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하나는 확실하죠. 인류는 이제 더 먼 곳, 이곳과는 다른 저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기술을 손에 넣고, 은하 반대편에 있는 또하나의 ‘우리’를 찾으러 갑니다. ‘파타 모르가나’는 인류에게 소통에 대한 의지를 심었어요. 그리고 그 소통의 대상이 완벽한 타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또다른 모습이기에, 마치 오랜 세월 떠나보냈던 가족을 만나고 싶은 감정처럼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것이 ‘당신’에게, ‘또 하나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임을 밝히고 끝이나요.

‘소통’에 대한 의지를 우주 규모로 이끌어 내면서, 나 자신 또한 들여다보게 되는 매우 매력적인 이야기였어요. ‘소통’에 대한 이야기야 많죠. 칼 세이건의 ‘콘택트’만 봐도 그렇고. 하지만 ‘콘택트’가 인류의 고독과 소통에 대해 하드SF적으로 접근한다면, 이 작품은 사변소설에 가까워요. 그래서 소파에 앉아 편한 마음으로 읽으면서도 머릿속에 우주를 그리고 자기 속마음을 그리게 되요. 다 읽고 나면, 마치 앞마당 산책 다녀온 느낌인데 기억 속엔 우주적 소통과 자아성찰이 남아있는 묘한 작품이죠.

위에서 언급한 ‘어나더 어스’와 비교하자면, ‘어나더 어스’는 개인의 속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일가족을 한 사람만 남기고 몰살시킨 여성에게 속죄가 가능한가를 다루죠. 반면, ‘파타 모르가나…’는 인류의 소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또한, ‘어나더 어스’의 지구2는 맥거핀에 가까운 반면, 파타 모르가나는 인류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할, 소통해야할 대상으로 다뤄져요.

작가님이 단문응원에서도 언급하신 ‘천공의 에스카플로네’는 저도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여기서도 하늘 위의 지구가 등장하죠. 대신 그저 판타지적 소재로만 활용될 뿐, 별다른 메시지는 없어요. 하지만 하늘 위의 지구라는 이미지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이렇게 다양한 작품 속에서 등장한다는 걸로 알 수 있겠죠. 아마 찾아보면 더 많지 않을까요?

잘 읽었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어나더 어스’도 보신 다음, 두 작품을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의 이미지만 유사할 뿐, 그걸 다루는 방법은 전혀 달라서 많은 생각거리와 이야기거리를 안겨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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