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전기, 공회전하며 누적되는 열 비평

대상작품: 선풍기 키우기 (작가: 김성호,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9월 1일, 조회 15

<드픽 검색어 큐레이션: 영혼> 선정작입니다.

https://britg.kr/reviewer-novel-curation/196906

 

“영혼은 사람이 전기가 부여하는 것이다.”


2024년 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처서를 넘길 때까지 더위에서 벗어난 날이 드물었고, 심지어 올해는 태풍도 거의 없었습니다. 종다리와 산산이 다행히도 매우 적은 인명피해만을 국지적으로 일으키긴 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불행하게도 더위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을 정도죠.

이럴 때 우리는 실내에서 선풍기나 에어컨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일반 가정에서는 물론 에어컨을 쓰기도 하지만, 전기세 등의 이유로 선풍기에 많이 의존하게 되죠. 흔치는 않지만, 예전에 쓰던 선풍기를 바꾸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요즘 나오는 선풍기는 바람의 세기나 종류도 다양하고, 날개가 없는 선풍기가 나오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음성 인식으로 작동하는 등의 인공지능 선풍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더해서, 선풍기는 묘하게 애착이 가는 물건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폭염 때마다 캐리어를 찬양한들 에어컨에 애착을 가지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선풍기, 특히 좀 오래된 선풍기나 사연이 있는 선풍기는 더 애착이 갑니다. 뽈뽈 기어다니는 로봇청소기에 애착이 가듯, 탈탈 돌아가는 선풍기에도 비슷한 심리가 적용되는 걸까요? 게다가 금전과 공간의 여유가 된다면 중고로라도 방마다 하나씩 들여놓을 수 있는 게 선풍기이기도 하죠. 각자의 전용 선풍기를 가진다고 한다면 그에 따른 애착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아닌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요.

 

김성호 작가님의 <선풍기 키우기>는 동성애자인 주인공 서진이 짝사랑하던 재우가 판매하는 인공지능 선풍기를 구매하며 시작됩니다. 재우가 보내준 선풍기에 ‘재우’라는 이름을 붙이고, 먹이를 주고, 주기적으로 닦아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진은 ‘재우’에게 애착을 가집니다. 그가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문어발로 된 길을 내어주고, 일기도 씁니다. 그에 맞춰서 ‘재우’ 역시 서진에게 답을 합니다. 바람의 세기나 방향을 조절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재우’를 키운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 ‘재우’가 고장이 납니다. 마침, 재우가 전시회를 보러 오라고 연락을 한 참이었습니다. 서진은 ‘재우’를 용산 전자상가의 수리점에 맡깁니다. 거기서부터 일그러짐이 발생합니다. 전시회에서 만난 서진과 재우는 어딘가 어긋나고 있었고, ‘재우’는 날개가 하나 없어진 ‘가짜 재우’로 전락합니다. 서진은 ‘가짜 재우’에게 폐기 비용 몇천 원도 쓰고 싶지 않았기에 망치를 휘둘러 부숴버립니다.

‘가짜 재우’를 부수고 돌아오니, 재우가 있었습니다. 재우는 ‘재우’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서진과 ‘재우’의 사이를 살짝 짓눌러버렸습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에어컨 판매를 끼워 넣습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재우는 뒤이어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건네줍니다. 서진은 망치를 휘두르고, 다이어리에 적습니다. 7월 5일, 올해 여름 중 가장 더운 날.

 

동성애자의 짝사랑이라는 것은 본래 제대로 이뤄지기가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상대가 같은 동성애자, 내지는 연애가 성립될 수 있는 성소수자일 가능성부터 희박합니다. 게다가 설령 그런 부분의 코드가 맞았다고 하더라도, 취향이나 성향이 갈려서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단계에서 실패한다면 하다못해 같은 처지를 공유하는 친구로라도 남을지 모르지만, 보통은 첫 단추부터 맞지 않지요.

서진 역시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은 원래부터 이상하게 태어난, 엉뚱한 애로 여겨진다는 것을요. 재우를 남몰래 좋아하든, ‘재우’에 애착을 갖고 키우든,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요.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재우와 공통점을 만들어보거나, 그의 작품이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여기며 의미를 찾아보거나, 마음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그것을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상하게 태어났다고 자조하지만, 누구나 저마다의 이상한 부분을 갖고 태어나니까요.

하지만 ‘재우’가 재우를 질투하고, ‘재우’가 ‘가짜 재우’가 되면서 이야기가 급격하게 뒤틀립니다. 서진은 ‘재우’를 주고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처럼 여기는 재우의 말에 속이 끓어오릅니다. 자신이 ‘재우’에게 부여한 영혼을 재우가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청첩장을 내미는 순간에 폭발합니다. 그 시점에서 서진에게 재우는, 자신이 좋아하던 재우가 아닙니다. 가짜일 뿐이지요. 그래서 서진은 자신이 ‘가짜 재우’에게 한 것처럼, 망치를 휘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방향에서도 이야기를 해보죠. “‘재우’의 영혼은 전기에서 온다.”고 문장을 쓰면서, 서진은 뒤이어 사형수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기의자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재우’가 만들어진 폐공장과 관련해서도 계속해서 귀신과 도깨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진은 그러한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두려워하기도 하고, 귀신에 홀린 것은 그런 곳에서 물건을 받아 파는 재우가 아니라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독백합니다.

그렇다면 서진은 무엇에 홀린 것일까요? 영혼이 전기에서 오는 것이라면, 사랑 역시 전기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요. 결국 인간의 감정이란 뇌에서 주는 전기신호와 그로 인해 분비되는 온갖 신경전달물질 및 호르몬의 결과물입니다. 전기가 영혼을 주기도 하고 앗아가기도 한다면, 사랑 역시 전기에 의해 발생하고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서진이 재우의 다른 곳도 아닌 머리를 망치로 가격한 것도, 재우의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끊어버리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저버리고 가짜가 되어버린 사형수를 처형하는 전기의자가 되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전기를 일으켜 사람을 죽인 서진은 당연히 열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의자의 기본적인 원리는 사형수를 전기로 익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서진의 이러한 열감을 식혀줄 선풍기 ‘재우’는 없습니다. 재우가 새롭게 판 에어컨도 오지 않았고요. 자신의 열감과 저릿한 사랑을 받아들여 줄 재우도 머리가 뭉개졌습니다. 서진의 사랑은 이대로 과열될 것입니다. 7월 5일보다 7월 6일이 더 더울 것이고, 공회전으로 열이 누적된 모터는 터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스스로 쇼트를 일으키면서요.

그럼에도 저는 서진을 연민합니다. 동성애자로서, 혹은 누군가를 지독하게 짝사랑한 적이 있는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서 저는 서진을 동정합니다. 서진의 짝사랑이 잘못된 결말로 끝나버렸고, 그가 느낄 더위는 영영 해소되지 않을 것이고, 서진의 영혼에 구원이 올 일은 아마 없겠지만요.

다만 그런 서진이, 열감이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공회전하는 모터가, 기어이 터져서 화재를 일으킨다면 그것에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다치진 않았으면 합니다. 갈 곳을 잃은 전기와 열은, 달리 말하면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으니까요. 사랑과 증오 또한 마찬가지고요.

 

나의 영혼, 나의 전기, 나의 열, 나의 사랑은 공회전하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좋은 이야기 적어주신 김성호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