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a 작가님의 [루아님의 작품세계에 대한 리뷰]는 브릿G에 총 6화 연재된 110매짜리 단편소설입니다. 브릿G의 리뷰어인 ‘나’는 어느날 작가 루아님한테 리뷰 의뢰를 받고 글을 쓰다가 결국은 의뢰를 거절하게 됩니다. 그러자 루아님은 그간 올렸던 10여편의 단편을 다 지워버려요. 리뷰어는 쪽지를 몇 통 보내보지만 루아님의 답장은 없고요. 소통 창구가 다 막힌 리뷰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간 자신이 루아님 글을 읽고 썼던 리뷰를 연재하게 되는데…..프롤로그 내용입니다.
재미난 설정이죠. 낯선 사람의 의뢰 자체는 미스터리 소설의 익숙한 도입부같습니다만, 그냥 의뢰가 아니라 ‘브릿G의 리뷰 의뢰’이니까요. 이 설정에 매끄럽게 적응하려면 독자는 우선 브릿G에 리뷰와 리뷰 의뢰 시스템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브릿G 시스템을 적극 이용한 소설로 일종의 브릿G 특화 혹은 여기서만 가능한 소설이라고 얼핏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정도의 정보만 알고 완독했습니다만 그러고나니 제 자신에게 있는 중요한 문제를 하나 발견했어요. 그리고 이건 제가 적어 나갈 이 리뷰 안에서 쌓을 논리의 가장 큰 구멍이기도 하겠고요.
[루아님의 작품세계에 대한 리뷰]의 이야기 – 이것은 픽션인가 리뷰인가 – 에 독자가 위화감 없이 몰입하려면 브릿G 사이트의 특징을 아는 것 외에 하나가 더 필요합니다. 작가이자 리뷰어인 soha님에게 신뢰가 있어야 해요. 시스템을 안다고 해서 갓 가입한 작가가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브릿G에서 리뷰어로서 활동을 쌓은 작가만이 쓸 수 있습니다. 그래야 프롤로그의 리뷰 의뢰 상황이 이해가고 이 소설이 쌓아올린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줄다리기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야 더 완전하게 즐길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이 부분을 다 읽고 나서야 깨달았고 때문에 이 리뷰를 써도 되나 잠시 고민했습니다만, 이미 저는 이 부분을 모르고 다 읽은 상태였기에 이런 구멍난 리뷰를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금 이 구멍을 약간이라도 좁혀보고자 이전 리뷰와는 달리 ~습니다 체를 구사하고 있어요.)
저는 다 읽을 때까지 soha님 정보를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왜 그런가 따져보니 제가 리뷰어로 8월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글을 읽었는데 soha님 리뷰는 7월 30일 이후 한참을 올라오지 않았고 저와 soha님이 같은 작품을 놓고 쓴 리뷰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올라온 모든 소설들을 샅샅히 찾아 읽은 경우도 아니었고요. 10월에 올리신 리뷰를 읽고 soha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처음 읽는 리뷰인지라 어떤 인상을 가졌다기보다는 soha님이란 리뷰어가 계시다란 정보값만 입력한 상태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루아님의 작품세계에 대한 리뷰]를 처음부터 끝까지 픽션으로만 읽었습니다. 논픽션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즉 리뷰어인 ‘나’가 soha님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치 못했습니다.(이런 이유로 soha님이 만약 가능하시다면 브릿G를 전혀 모르는 독자에게 피드백을 한 번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이 소설의 해석에 꼭 필요한 피드백일 거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 제가 완전한 픽션으로 읽은 이유는 프롤로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루아님은 리뷰를 의뢰하면서 아주 간단한 메세지를 보내는데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말씀해주세요.”가 내용입니다. 프롤로그의 세 번째 단락에서 나옵니다. 아주 초반입니다. 만약에 “제 소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씀해주세요”라고 했다면 저의 느낌을 달랐을 겁니다. 하지만 루아님은 ‘저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고 했고 저는 이게 너무 기묘한 거예요. 바로 다음 문장인 “어려운 요구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리뷰의뢰를 받는 입장에서는 더 편합니다.”에서는 기묘함이 배로 높아졌고요. 이건 거의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수준의 뜬구름 잡는 요구인데 오히려 주인공인 리뷰어는 직접적이라며 더 편하다고 하는 겁니다. 이 순간 제 머릿속에서는,
이상한 수준의 정도
리뷰어>>>>>>>>>> 루아님
저는 리뷰 작성자이자 화자인 ‘리뷰어인 나’를 전혀 신뢰하지 못하겠다 판단했고,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무슨 내용이 이어져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리뷰어는 절대적인 증거라는 듯이 계속해서 루아님 소설을 인용하지만 그 취사선택에는 리뷰어의 가치판단이 들어가죠. 정말로 처음에 온 메세지가 저런 내용이었을까?도 믿을 수 없었고, 인용문조차도 정말로 원문에서 그대로 따온 것인지 믿을 수 없었어요. 화자가 독자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제 입장에서는 정보가 아닌 거예요. 프롤로그에서 이미 화자가 제게는 狂人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연히 루아님도 제게는 프롤로그부터 리뷰어가 만든 허구이고요. 그래서 저는 [루아님의 작품세계에 대한 리뷰]를 ‘아마 서술 트릭인갑다’ 잠정적으로 짐작, 다음 화를 읽어나갑니다.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내용 때문인지, 저는 이 소설이 브릿G 시스템으로 구조를 쌓긴 했지만 그건 설정이고 오히려 시점 실험이란 점이 가장 머리 아프고 또 재밌다고 느꼈어요. 프롤로그까지는 루아님과 리뷰어만 있습니다. 하지만 1화부터 리뷰어가 루아님의 소설을 인용하자 여기 또 다른 화자가 인용문으로 개입합니다. 바로 루아님 소설의 ‘나’입니다. 루아님은 또 하필 모든 소설을 1인칭으로 썼어요. 리뷰이기 때문에 리뷰어도 당연히 ‘나’이고요. 이 ‘나’는 회를 거쳐 점점 늘어나는데 주인공 리뷰어가 소설 한 편만 리뷰를 쓴 게 아니라 네 편이나 리뷰를 썼기 때문입니다! 리뷰어인 나, 루아님, 첫 번째 소설 주인공인 나, 두 번째 소설 주인공인 나, 세 번째 주인공인 나…..물론 리뷰어는 이 나를 루아님으로 해석하지만 저는 이미 리뷰어를 신뢰하지 않기에 이 해석을 믿을 수가 없었고, 그러니 소설 밖에서 이 ‘나’랑 저 ‘나’랑을 열심히 분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반에 서술트릭인갑다 라고 생각했고 특별히 다른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이상 머릿속은 이미 ‘나는 이 트릭에 속지 않겠다’라는 불타는 야망으로 꽉 차버린 것입니다.)
화자인 리뷰어는 프롤로그에서 혹 자신 때문에 단편을 삭제한 건 아닐까 싶은 죄책감으로, 대단히 겸손하고 간곡하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아와요, ~님” 류의 글의 연장선으로 보이고요. 루아님이 주인공이고 리뷰어는 단지 전달자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리뷰가 올라올수록 그 리뷰에는 점점 더 화자의 자의식이 강해집니다. 점점더 많은 ‘리뷰어인 나’가 등장해요.
1화
나는 한 가지 대담한 가설을 세워보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나’가 겪는 일들이 작가 자신이 겪은 일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가 작가의 분신이라면 이 소설은 작가가 스스로 자신이 예전에 왜 실패하였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작가가 이 사이트에 처음 업로드한 글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나’가 겪는 일들은 지나친 각색 없이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2화
나는 작가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끝난 글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작가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묘사할 수 있는 작가를 나는 존경한다.
3화
작가 또한 리뷰 의뢰를 하면서 이러한 뜻을 누군가가 알아차려주기를 바랬을 것이 틀림없다.
리뷰 의뢰를 통해 나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작가님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며, 리뷰를 통해 작가님께서 쓰신 소설들을 보완하고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러한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몹시 자랑스러웠다. 마땅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좋은 소설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주는 것만큼 리뷰어로서 보람찬 일은 없을 것이다.
소설의 절정인 3화 말미는 “왜 그러셨을까? 왜 그러서여만 했을까? 나는 대답이 듣고 싶다.”란 문장으로 끝납니다. 리뷰어는 이제 질문까지 던질 정도로 수면 위로 올라왔고 4화부터는 ‘우리’가 된 리뷰어가 등장하고요.
[루아님의 작품세계에 대한 리뷰]는 재미난 소설입니다.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있어요. 리뷰라는 글 형태 때문에 문장이 거칠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독서를 중단할 정도의 방해는 아니었고 또 한편으로는 ‘리뷰어인 나’의 문장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도 3화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상당하고요(그래서 5화가 너무 짧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다 읽고 나자 제일 놀란 건 이 소설이 110매짜리 단편이었다는 점이었어요. 장편을 읽은 느낌이었거든요.
[루아님의 작품세계에 대한 리뷰]는 두 번째 읽었을 때 더 재미난 소설이기도 합니다.
앞서 저는 이 소설을 초반에 서술 트릭 미스터리로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답은 뭘까요.
직접 읽어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