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숑근을 볘여 누어 픗을 얼픗 드니 애 사이 날려 닐온 말이 그 내 모랴 샹계(上界)예 진션(眞仙)이라. 황뎡경(黃庭經) 일(一字) 엇디 그 닐거 두고 인간의 내려와셔 우리 오다. 져근덧 가디 마오. 이 술 잔 머거 보오. 븍듀셩 기우려 챵슈(滄海水) 부어 내여 저 먹고 날 머겨 서너 잔 거후로니 화풍(和風)이 습습(習習)야 냥(兩腋)을 추혀 드니 구만리댱공(九萬里長空)애 져기면 리로다 이 술 가져다가 (四海)예 고로 화 억만창(億萬蒼生)을 다 취(醉)케 근 후의 그제야 고텨 맛나 잔 쟛고야. 말 디쟈 학을 고 구공(九空)의 올나가니 공듕옥쇼(空中玉簫) 소 어제런가 그제런가.
[네이버 지식백과] 관동별곡 [關東別曲] – 사대부 가사의 정점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2006. 9. 18., 휴머니스트)
1.
글을 읽자마자 떠오른 조선의 시인 정철의 <관동별곡>입니다.
옛 글이라 해석이 어렵겠지만 다들 문학시간에 배우셨을테니 찬찬히 읽어보시면 뜻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을거예요.
“어느 날이었던가, 한 병이 두 병 되고, 두 병이 세병 되고 그러다 술병 모자라 동이에 든 술 연못에 뿌리게 해 국자로 퍼먹는 꼴까지 보고 나니” 라는 대목을 보고 떠올렸습니다.
“꿈에 신선이 나타나 ~ 잠깐만 가지 마오. 이 술 한 잔 먹어보오. 북두칠성을 술잔으로 삼아 기울여서 창해수를 술로 삼아 부어 내어 저 먹고 나에게 먹이거늘 서너잔 기울이니~ 높고 아득한 하늘에 웬만하면 날 것 같은 기분이로다.” 라는 해석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외우기로는 정철의 드높은 포부나 자부심 같은 걸로 외웠다지만 이런 식으로 작품을 읽다가 팝업창 처럼 떠오를 줄을 몰랐네요. 웬만하면 후원으로 슬쩍 밀어 드리고 리워드 리뷰에 대해선 입 다무는 뻔뻔함을 보이고 싶었지만 이 가사를 꼭 글에 붙여보고 싶은 욕심에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스승과 객은 연못을 통해 하계를 바라보고, 역사라는 건물에 심취해 풍류로구나!를 외치면서도 정철처럼 “이 술을 가져다가 온 세상에 고루 나우어 모든 백성을 취하게 만든 후에 그 때 다시 만나 또 한잔을 하자꾸나.” 라는 포부는 뒷전이고 시를 지을 뿐이니 신선이라기 보다 훨씬 인간답긴 합니다.
2.
그렇지만 너무 인간다웠죠! 술 마시고 지은 시가 마음에 안든다고 인세를 내려다보는 연못에 태우다니요. 뒷바라지 하는 제자가 객을 너무, 너무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술 마신 사람은 취하면 그만이지만 그 자리에서 취하지 않은 사람은 택시 태워 보내고 잘 들어갔는지 확인까지 해야한다고요..! 우리 제자도 속옷을 옷 위에 입는 히어로의 정석인 복장으로 인세를 구하러 갑니다. 지나친 사람이 있으면 수습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야 재미있긴 하겠지요. 하지만 다음엔 제자분이 혼자 엄청 취해서 스승과 객이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요
연못에 동이째 부어놓고 시를 지으며 마시는 모습은 신라시대의 포석정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제 안에 오래 잠들어있던 무언가를 팡팡 떠올리게 해주셨어요.
다섯 가지 소재를 다 넣어야 해서 사실 이 글에 ‘미치광이’가 들어갈 자리가 있으려나 했는데 적절하다 못해 통쾌하게 내질러 주셔서 웃음도 팡팡 터졌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