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와 일부를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리뷰를 보기 전에 소설을 먼저 읽어 주시면 좋습니다. 재미있고 부담없게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도서관 사서 에밀리 힐덴베르크는 우울합니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이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돈만 있다면, 그는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우울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2주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버린 꼴이었으니까. 그동안 까뮈의 글을 읽었다면 세 권은 족히 해치울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울한 점은 내일도 출근하여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복권에라도 당첨되지 않는 이상, 도서관 사서 에밀리 힐덴베르크의 우울은 끝나지 않는다.
에밀리는 왜 사서 일을 그만두고 싶어할까요. 그는 도서관의 유일한 사서입니다. 그때문에 일이 많긴 하지만 그게 일을 싫어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닌 듯 합니다. 혼자서도 무리 없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나오니까요. 에밀리는 사서가 늘어나기를 바라지만 그건 일을 줄여 좋아하는 까뮈의 책을 읽기 위함인 듯 합니다. 그러니 에밀리는 그냥 사서 일이 싫은 겁니다.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로 나눈다면, 에밀리는 사서 일을 할 수 있고 (그것도 꽤 뛰어난 듯 합니다), 해야 하지만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상태겠죠.
왜 사서 일이 싫을까요. 에밀리는 책을 좋아합니다. 까뮈의 책을 읽는 걸 좋아하죠. 사서 일을 잘 하니 책에 대한 지식도 많고, 애정도 많을 겁니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책을 찾아 주는 자신의 일을 즐기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는 ‘동물이 아닌 것에 관하여’라는 책은 그가 좋아하는 책인 모양입니다. 그 책을 찾는 마법사가 나타나면 귀찮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다니까요.
“책을 빌리러 왔잖아요. 난 책 빌리러 온 사람이 제일 싫어.”
“손님, 리얼루다가 그 책을 원해요? 존나 세상이 두 쪽 나도?”
“내기 지 때문에 무슨 개고생을 했는데! 기왕 왔으면 책이라도 받아가던가! 2주 동안 고생한 게, 으아아 열 받아!”
아마도, 에밀리가 싫은 건 책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인 듯 합니다. 사서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들이 좋은 책을 찾고, 진심으로 그 책을 원한다면 에밀리의 일에는 보람이 있겠죠. 하지만 하찮은 책만 찾고 그렇게 찾아 준 책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는다면 힘들게 책을 찾아주는 보람이 있을까요. 에밀리가 사서 일이 싫은 이유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너무나 소중한 책에 대한 사람들의 몰이해를 거듭해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느꼈습니다.
이것은 도서관 사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니 작가가 말하고자 한 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환상적인 도서관과 그 사서 업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작가는 ‘왜 일을 하고 있는 우리는 우울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대답은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제가 이 글을 읽으며 찾아낸 이유는 사실은 작가가 의도한 이유가 아니라 제가 억지로 찾아낸 제 자신의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여기서의 일이라는 건 돈을 벌기 위한 일이겠죠. 돈을 버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불특정 다수와의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일의 종류와 관계없이, 심지어 그 일이 자신이 아주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 과정은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일을 좋아할 수록 더 고통스러울 겁니다. 자신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그 일을 다른 사람들이 하찮게 대하는 걸 참아내야 하니까요. 좋아하는 건 직업이 아니라 취미로 하라는 이유가 그런 거겠죠.
브릿지에는 작가분들이 많으니 글쓰기를 예로 들어보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직업이 된다면,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글을 써야겠죠. 글을 사랑할 수록, 그 과정은 괴롭지 않을까요.
이것이 제가 찾아낸 에밀리가 우울한 이유입니다.
작가는 이 주제를 현실적인 직업을 토대로 그려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대신 작가는 환상적인 도서관과 사서, 지옥에서 올라온 괴물과의 액션 활극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그 내용들은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어디에 있는 문으로든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 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봉인된 마도서, 광대한 도서관을 헤매는 사서, 그곳을 넘나드는 괴물과의 칼과 마법을 이용한 싸움은 이 이야기가 단편으로 끝나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지루하고 우울했을지도 모를 사서 업무에 대한 긴 묘사를 읽는 대신, 신나고 재미있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읽게 해 준 작가에게 감사해야겠죠.
그러한 대체가 이 글의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럼 주제를 흐린 대신 읽는 재미를 확 끌어 올린 게 잘못된 선택이었냐고 말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실 저도 이 글이 올라오고 처음 읽었을 때는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하며 읽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서의 모험담이 즐거웠을 뿐, 왜 우울한지는 그냥 넘어갔죠. 리뷰 의뢰를 받고, 글을 여러번 곱씹어 읽다 보니 그제야 좀 더 깊은 의미들이 보였습니다.
이것을 작가의 우울함에까지 연결시키는 건 과도하겠죠. 리뷰를 쓰는 기분에 취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금은 왠지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담긴 글을 쓰기 위해 판타지 액션 활극을 섞어 넣는 작가의 모습에서 에밀리의 우울함이 보입니다.
작가님, 로또 맞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