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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비를 내리는 소녀 (작가: 이준영, 작품정보)
리뷰어: Ello, 17년 10월, 조회 131

 

0.

낮잠

 

지금은 내가

사람이기를 멈추고

쉬는 시간이다

이시간 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온다

알 듯한 모르는 사람들과

모를 듯한 아는 사람들

그리고 전혀 모를 사람들

 

어떤 사람이 공연히 나를 사랑한다

그러면 막 향기가 난다, 향기가

사람이기를 멈춘 내가 장미꽃처럼 피어난다

톡, 톡, 톡톡톡, 톡, 톡

지금은 내가

사람이기를 멈추고 쉬는 시간

아는 이 모두를 저버린 시간

 

문득,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톡, 톡, 톡톡톡, 톡, 톡!

사람이기를 멈춘 내

영혼에 이빨이 돋는다

아는 이 모두가 나를 저버렸다!

 

톡, 톡, 톡톡톡, 톡, 톡,

모두 다 꿈이라고

절세가인 날씨의 바람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1.

같은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보는 건 색다른 기분입니다. 물론 기저에 깔린 성향이나 분위기가 저와 맞기 때문에 읽습니다만 아포칼립스에 대해 말하다가 동양풍 판타지로 돌아온 작품이라면 다른 분들에게도 색다른 기분을 선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세계를 창조하면서, 바로 곁에 붙여 둘 수 있는 세계가 아닌 아주 다른 세계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드리고 시작하고 싶습니다. 다른 단편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마치 아직 나는 취향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일단 많이 쓰고 본다의 전법을 구사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도 아주 많이 봐야 취향이 생기고, 책도 아주 많이 읽어야 취향이 생기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쨌거나 그만큼 다른 이야기를 쓰고 계셔서 독자는 즐겁습니다.

 

2.

<비를 내리는 소녀>는 어떤가요. 제 기준에서는 안전권에 있는 소설입니다. 이전 <파라미터O>를 읽었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주인공이 어떤 파국을 향해 걸어가던, 어떤 시련과 고난이 주어지건 아주 나락으로까진 떨어지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죽지 않는다. 찝찝한 결말이 아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뭔가 없다.”는 점에선 제겐 안전권이에요.

그렇지만 바꿔 말하면 자극적인 전개가 좋은 독자들에게는 조금 밋밋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기도 할겁니다. 소녀가 제물로 바쳐지는 인신공양이나 여우구슬을 턱하니 내주던 인심 좋아보이던 도깨비에게도 배신 당한 이야기, 처제가 형부에게 겁탈당할 뻔한 소재들은 전작에 비해 자극적이긴 합니다. 애독자로서 조금 놀라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가기 때문에 걱정이 덜 된다고 해야할까요. 아 저 사람은 죽겠구나, 얘는 이 상황에도 이렇게 살아나겠지? 싶은 마음이 들어요. 아직은 캐릭터들의 소개도 덜 되고, 인물 간의 관계도 얽히지 않은 단계라 이 말을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작가님의 글이 친절해서 저는 좋습니다. 집중하고 읽다보면 복선을 따라 짐작이 가능합니다만 예상치 못한 전개를 생각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건과 불친절함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 내용을 알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주인공의 행동이 예측가능하다는 정도니까요. 앞으로는 더 복잡하게 꼬아주셨으면..!

 

3.

이런 예측은 불가능합니다. 첫장면에서 “북에선 맥구르가 치고 내려오고 동쪽에서는 서라가 밀고 들어오는데 수도 어라골의 곳간은 텅 비었다.”고 나가시꾼이 말합니다. 그럼 이것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그렇지만 넋과 얼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또 여우구슬과 대화하고 얼빼기를 하는 구름이를 보고 있자면 이것은 개인이 신과 소통하는 이야기 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도깨비도 나오고 미르(용)도 나오고 산마노라(산신령)도 나오고 깡철이도 나옵니다. 그럼 이것은 미르와 깡철이와의 대결에 등이 터지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어쨌거나 “평범하게 흘러가던 구름의 인생을, 그 흐름으로부터 거칠게 낚아 올린 한마디”말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 문장 너무 좋아서 꼭 인용해보고 싶었어요.)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흐릿하고 아직은 소통의 창구가 막히지 않았을 때, 하늘의 뜻이 정당하고 올곧을 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구름이가 위와 아래로 구르고 북과 동으로 굴러서 이 땅을 구해낼 이야기 인 것도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려면 구름이를 도와줄 이, 구름이와 대적할 이에 대한 확실하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필요해 보입니다. 아실과 꿀빗자루, 단단여를 믿어 볼게요.

 

4.

순우리말을 주로 써보고자 노력하신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산마노라, 하늘나기 등의 이름이 참 예쁘게 다가왔어요. 나티란 단어도 예뻐보여서 큰일입니다. 이건 적이다, 이건 적이야…

그에 비해 피사체라는 단어나 합리화란 단어는 안어울려보여서 수정해주시면 어떨까 권해봅니다.

또 구름이 14살인 것에 비해 너무 조숙하다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보통은 아비가 가둬지고 마을 사람에 의해 제물로 바쳐진 14세의 소녀라면 분노보다 앞서는 감정이 두려움 아닐까요. 덜덜 떨며 아무 생각도 못할 것 같은데 분노하는 모습에서 구름의 ‘깡’을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구름이 선택됐나 싶기도 하고요. 그런 분노가 없었다면 여우구슬에게 아마 넋도 빼앗겼겠죠. 구름은 육체를 다치는 것보다 배신을 당하는 것에 훨씬 더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 답게 배신을 당했어도 금방 마음을 열기도 하고요. 아마 이런 일을 겪어가면서 캐릭터의 심지가 더 굳어져가겠죠?

점점 더 스케일이 커질테고 무엇에 관한 이야기가 될지도 뚜렷해져 갈 테니 저는 여기 앉아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실이 어떤 사람일지 많이 궁금합니다. 다음 편은 아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꿀빗자루와 다시 조우할 구름의 반응도 궁금하고요. 그러니 어서 다음 편을!!

“톡, 톡, 톡톡톡, 톡, 톡!” 하고 시원하게 비가 내릴 때까지 멈추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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