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한 이유, 단순했다. ‘고딕소설’이라고 해서다. 이 장르를 나 역시 많이 읽지는 못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프랑켄슈타인>과 <카르밀라> 정도인데, 고딕소설을 읽을 때면 기묘한 긴장감과 해소되지 않는 질문, 궁금증을 쌓아가다가 맨 마지막에 해소되는 흐름이 생경하면서도 좋았다.
이 소설 <괴담은 괴담을 낳는다>는 그러한 고딕소설 특유의 문법을 정석대로 따라간다. 기묘한 인물이 등장하고, 서술자가 그 인물을 관찰하는 ‘시점’에서 전개된다는 부분도, 그 관찰하는 와중에 기묘한 일이 발생하고 ‘열릴 결말’로 끝나는 것까지 말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경우 문장이 잘 읽히는 편이라 결말까지 단숨에 읽기 좋았다.
젊은 나이에 성공하는 것에 집착하면서도 정작 글은 쓰지 않는 B라는 인물이 ‘기묘한 사건’에 휩싸이는 걸 바라보는 서술자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B가 ‘그 자체로 괴담’이 되는 순간을 그려낸 묘사나 그 ‘절정의 순간’으로 나아가는 때의 서술이 몰입감을 높였다는 데 있다. 스포를 막기 위해 자세히 쓰진 않았으니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도록.
다만 아쉬웠던 건, 두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B라는 인물이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문예창작과 출신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20대 초반에는 특히 ‘천재’와 ‘요절’에 다들 기묘하리만큼 미쳐 있었다. 특정인만이 그런 게 아니라 들끓는 분위기가 학교에 팽배했고, 오죽하면 우리 과에서는 ‘요절간지’라는 말까지 유행어처럼 돌았다. 폼 나는 천재들은 27, 28살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했으니 기깔 나는 작품을 써내고 죽어버리면 그것이 바로 간지라는 뜻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우린 모두 진심이었다. 심지어 나조차 28살 이후에 내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들끓었고, 글에 집착했고, 평가에 연연했으며, 미치도록 몰두해서 썼던 글조차 “또 쓰레길 양산했다”며 스스로 비하하고 술독에 빠져 살던 시기였다.
허니 적어도 나의 입장에선 B라는 인물이 단지 ‘젊은 날의 성공을 동경하면서 글은 쓰지 않고 망상만 하는 존재’라는 특징만으로는 특별하게, 궁금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질 만큼의 특이점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를 테면 앞서 예로 든 <카르밀라>에서는 어린 외모에 성숙한 눈빛을 지닌 소녀 카르밀라를 추적하는데 그 인물과 얽힌 ‘기묘한 사건’들이 연이어 그려지면서 호기심을 일으켰고, <프랑켄슈타인>의 경우에는 시체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괴물’ 존재 자체가 ‘기묘함’으로 다가온다.
B라는 인물만의 ‘특이점’이라면 아주 사소한 것이어도 좋다. 담배를 필 때면 꼭 첫 개피는 ‘ㄱ’자로 꺾어서 기숙사 뒤편 동산에 묻어두곤 했다던가… 이상한 의식을 하는데 그 나름의 신념이나 철학이 있는 것만 해도 좋을 것이다. “얘 대체 뭐지?”하는 궁금증을 독자에게도 유발하는 ‘특징’이 있다면 더 좋았을 거 같단 아쉬움에 짧게 써 보았다.
둘째, B가 스스로 ‘괴이한 선택’을 하면서 결국에 써낸 ‘작품’이 무엇인지 미지수로 남았다는 게 아쉬웠다. 자세히 쓰진 않았지만, B는 ‘괴담’ 하나에 몰두했고, 자신의 영혼을 재물로 바쳐서 ‘기깔 나는 작품’ 하나를 써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B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주인공은 알지 못한다는 결말로 끝나서 허무했다.
고딕소설의 특성상 결말부는 ‘후일담’처럼 서술되고, 열린 결말을 취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무언가 씨앗 하나 정도’를 남기거나, ‘어떠한 특이한 일이 있었다’라는 걸 보여주고 난 뒤에 열린 결말을 맺는다면 조금 더 흥미롭게 읽었을 것 같다. 전체적인 구조가 잘 짜여져 있고, 기묘한 괴담의 무드를 잘 만들어내서 단숨에 읽고 났던 터라 아쉬운 점이 크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인 만큼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허니, 지금 한번 스윽 읽어보도록. 당신의 감상 역시 궁금하다.